대리점연합-택배노조 대담…“갈등 이대론 안 된다” 공감 속 해법에는 ‘평행선’

이혜리·고희진 기자

대리점연합-택배노조 대담

김종철 CJ대한통운 대리점연합 회장(왼쪽)과 진경호 전국택배노동조합 위원장(오른쪽)이 지난 15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에서 만나 ‘택배 갈등’ 관련해 대담을 하고 있다. 우철훈 선임기자

김종철 CJ대한통운 대리점연합 회장(왼쪽)과 진경호 전국택배노동조합 위원장(오른쪽)이 지난 15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에서 만나 ‘택배 갈등’ 관련해 대담을 하고 있다. 우철훈 선임기자

지난달 30일 경기 김포의 택배 대리점주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후 극단으로 치달은 택배 대리점주와 택배기사간 갈등은 이대로 계속돼야 할까. 갈등 해결의 접점을 찾기 위해 대리점주와 택배기사들의 대표자들이 만났다. 이들은 택배사를 상대하며 을의 지위에 있는 대리점주의 열악한 처지와, 과로사 배경이 된 택배기사의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점에 공감대를 이뤘다. 하지만 택배사인 CJ대한통운과 택배노조의 교섭 등 방법론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렸다.

지난 15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에서 김종철 CJ대한통운 대리점연합 회장과 진경호 전국택배노동조합 위원장이 만나 최근의 ‘택배 갈등’과 관련해 대담을 가졌다. 김포 대리점주 사망 후 공개 석상에서 두 사람이 만난 것은 처음이다. 대리점연합과 택배노조는 서로를 향해 강한 비판을 쏟아내며 충돌해왔다.

김 회장은 대리점주가 고객 영업과 택배기사 관리 등을 도맡으며 한국 택배산업을 이끌어왔지만, 택배사와 택배기사 사이에 끼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했다. 다만 택배기사와 직접 화물운송에 관한 계약을 맺은 당사자는 대리점주이기 때문에, 노동조건에 관한 교섭은 대리점 측과 택배노조가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김 회장은 그러면서 “대리점연합도 (택배기사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필요한 부분을 택배사에 강력히 요청하겠다”고 했다.

진 위원장은 택배사-대리점-택배기사로 이어지는 택배산업 구조로 인해 대리점주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서, 현실적으로 개별 대리점이 택배기사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할 수 있는 권한과 역량이 부족하다고 했다. 업계 1위 택배사인 CJ대한통운이 택배노조와의 직접 교섭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진 위원장은 “대리점을 패싱(통과)하려는 것이 아니라, 조합원들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생각해 만든 요구안에 대해 실제로 대리점이 해줄 수 있는 게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김포 대리점주의 유족은 괴롭힘 때문에 사망하게 됐다며 택배노조 조합원들을 지난 17일 경찰에 고소했다. 사건 진상은 수사를 통해 밝혀지게 됐다. 택배노조는 다음주 중 이번 사건에 대한 종합대책을 발표한다. 다른 조합원은 물론 대리점주와 비조합원에 대한 괴롭힘을 전면 금지하고, 정도가 심한 괴롭힘이 있을 경우 징계하는 규정을 내부 규약에 신설하는 내용이 종합대책의 골자다. 노조의 사회적 책임을 다 한다는 차원에서 노조의 조합비 일부를 사회적 약자에게 공헌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택배산업의 가장 상층부에 위치한 택배사 CJ대한통운에도 대담 참여를 요청했지만 CJ대한통운은 참여하기 어렵다는 의사를 전해왔다. 다음은 대담 전문.

지난 15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에서 진행된 대담에서 김종철 CJ대한통운 대리점연합 회장이 발언을 하고 있다. 우철훈 선임기자

지난 15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에서 진행된 대담에서 김종철 CJ대한통운 대리점연합 회장이 발언을 하고 있다. 우철훈 선임기자

대리점연합 김종철 회장
택배사 상대로는 우리도 ‘을’
노조가 다 나쁘다 생각 안 해
다만 쟁의 때 대리점주 타격
직접 계약 당사자 패싱 안 돼

-김포 대리점주 사망 이후 대리점연합과 택배노조가 서로 갑질의 주체라고 공격하는 등 갈등이 심각하게 드러났다. 그간 대응하며 어땠는지 궁금하다.

진경호(이하 진)=많이 힘들었다. 한 노조가 감당하기 벅찼다. (이번 사건을) 노조의 자정과 혁신의 계기로 삼아서 누가 봐도 정상적인 현장이 되도록 만들어야겠다고 마음을 다졌다. 그런데 보수언론이 상황을 과장·왜곡하는 것을 보고 반론을 하기 시작했다. 마침 (택배기사 처우 개선을 위한) 택배비 인상분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에 대한 CJ대한통운과 대리점연합의 합의안이 나왔다. CJ대한통운이 이익을 챙기는 내용이다. CJ대한통운이 고인의 죽음으로 펼쳐진 노조에 대한 공격을 통해 막대한 초과이윤을 가져가는 승자가 됐다고 결론낼 수밖에 없다.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개선할 것은 개선하되, 아닌 것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대처하겠다.

김종철(이하 김)=고인의 죽음에 대한 도의적 책임을 느끼고 안타까웠다. 장례절차에 대리점 사장님들이 조화를 보내주고 분노해주셨다. 그동안 대리점의 어려운 점을 여러차례 이야기했지만 한 번도 언론과 정부가 관심 가져주지 않았는데, 이번 사건을 계기로 언론과 정부, 정치인들도 저희의 이야기를 들어주셨다. 다른 한편으로는 고인의 사망 경위가 유서에 (노조의 집단 괴롭힘이라고) 분명하게 나타나있다. 당사자에 대한 노조의 사죄, 재발 방지에 대한 조치가 이뤄져야 하고, 여야를 떠나 정치적으로 고인의 사건을 이용하거나 제3자(택배사)를 끌어들여서 책임을 회피해서는 안 된다. 유족에게 또 다른 아픔을 줘서는 안 된다.

-이번에 갈등이 폭발한 것을 보면 대리점주와 택배기사 사이에 그동안 쌓인 게 많이 있었던 것 같다.

진=2013년 대한통운이 업계 1위였고, CJ가 3·4위권이었다. CJ가 대한통운을 인수했는데 이후 대리점제로 운영되게 된다. 대리점 2000개, 기사 수 2만명으로 대리점주 1명이 기사 10명 정도를 데리고 있다. 대리점제에서는 대리점주가 사용자가 된다. 그러면서 CJ는 책임에서 모두 빠져있다. 반면 대리점은 배송·집하에 대해 원청(택배사)이 주는 수수료를 받고 자체적인 수익구조가 없다. 이런 상황이 원청은 시장에서 사라지고 대리점과 택배노조가 충돌하게 하는 원인이 된다. 대리점은 원청에 대해서는 을이지만, 택배기사에게는 상대적으로 갑이다.

김=택배기사의 열악한 환경이 있었다. 관행이라고는 하나 불법적인 부분도 있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런데 노조가 생기고 고쳐나가는 과정에서 대리점과의 갈등이 3~4년간 계속됐다. 노조도 그렇지만, 원청도 ‘대리점 역할이 무엇이냐’고 한다. 택배산업은 대리점이 이만큼 만들어온 것이지 원청이나 택배기사가 한 게 아니다. 대리점이 영업과 CS(고객품질) 관리를 하고, 택배기사도 구했다. 저와 같이 20년 전에 택배를 시작한 분들이 다 망했다. 지금 남아있는 분들은 어려운 환경에서 택배산업을 끌고 온 사람들이다. 택배사업자는 돈을 갖고 플랫폼을 통해 제로섬 게임을 한 것이다. 이제와서 대리점이 필요없다고 하면 억울하다.

지난 15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에서 진행된 대담에서 진경호 전국택배노동조합 위원장이 발언을 하고 있다. 우철훈 선임기자

지난 15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에서 진행된 대담에서 진경호 전국택배노동조합 위원장이 발언을 하고 있다. 우철훈 선임기자

택배노조 진경호 위원장
대리점제 폐지 말한 적 없고
원청만이 가능한 부분 있어
택배기사 현장 규약 개정 중
폭언·욕설 심하면 징계할 것

-택배사와 대리점의 관계에서 대리점이 을이라는 것에는 공감하나

김=그렇다. 채권도 원청이 책임지지 않고 대리점들이 다 안고 간다. 예전에는 택배비를 안주고 도망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거래처가 100만원을 거래하다 부도내고 가면 대리점은 100만원을 못받았지만 원청에는 100만원을 입금해야 한다. 택배기사에게도 수수료를 줘야 한다. 3중고를 겪는 것이다. 택배기사가 내일이라도 안 나오면 대리점이 다 책임지고 배송하고 있다. 원청은 책임지지 않는다. 조금 환경이 나아지니까 대리점에 역할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진=이 사태가 대리점과 기사들간의 갈등 구도로 부각되는 것을 경계한다. 대리점은 택배산업에서 이중적 지위를 갖고 있고, 수익구조가 별다른 게 없다는 근본적인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또 다량을 보내는 계약택배가 전체 택배의 80%가 넘는다. 온라인 홈쇼핑 등 대형 화주와의 계약은 대리점이 하는 게 아니다. 본사가 직접 해서 대리점에 분배한다. 그럼에도 택배노조는 대리점제를 폐지하자는 주장을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대리점주도 소상공인이고 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이번 사건을 계기로 노조가 자정과 혁신을 통해 다시는 노조에 의한 집단 괴롭힘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게 해야 한다면, 대리점도 양심적인 대리점주가 대다수이지만 일탈적 행동을 보이는 대리점주도 상당수 있기 때문에 자정의 계기로 삼았으면 좋겠다.

김=대리점주들도 노조가 다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노조가 대리점주 길들이기·몰아내기·없애기를 한다. 노조가 쟁의행위를 하면 제일 먼저 타격을 입는 것은 대리점주다. 기사 열 몇 명이 하던 일을 대리점주 혼자 해야 한다. 정상적인 노조활동은 적극적으로 지지하지만 불법은 안 된다.

진=CJ대한통운의 경우 노조 조직률이 13% 정도 되는데, 노조가 대리점주에게 같이 일을 못하겠다고 하는 곳이 (그중) 10%를 넘지 않는다. 노조가 만들어지는 현장은 거의 대리점주의 폭언이나 갑질이 일상적이었던 곳이다. 그래서 초기에 감정적으로 충돌하고 거친 언사가 나가기도 한다. 오히려 ‘노조 같이 합시다’라고 하면 상당수 기사들이 ‘우리는 소장이 잘해줘서, 관계가 좋아서 노조하기 힘들어요’라고 한다. 노조가 생기기 전에도 굉장히 심하게 기사들을 관리했던 곳에 대한 제한적 요구다. 그리고 쟁의권은 헌법상 권리다.

지난해 10월22일 박근희 CJ대한통운 대표이사가 서울 중구 태평로빌딩에서 잇따른 택배기사 사망에 대해 사과하고 있다. CJ대한통운은 택배기사들과 직접 화물운송에 관한 계약을 맺지 않았다며 노동조건 개선과 관련한 택배노조의 교섭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지난해 10월22일 박근희 CJ대한통운 대표이사가 서울 중구 태평로빌딩에서 잇따른 택배기사 사망에 대해 사과하고 있다. CJ대한통운은 택배기사들과 직접 화물운송에 관한 계약을 맺지 않았다며 노동조건 개선과 관련한 택배노조의 교섭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갈등 배경에는 택배노조가 교섭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점도 있다. 택배노조는 설립 이후 CJ대한통운과는 교섭을 못했고, 대리점과도 최근에서야 교섭을 진행했다. 교섭 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하나.

김=대리점주가 택배기사의 직접 계약 당사자다. 어쨌든 계약관계라는 게 있고, 이것을 건너뛰어선 안 된다. 필요한 게 있다면 대리점들이 논의해 택배사에 요청하면 된다. 택배사들도 택배기사의 안전사고와 장시간 노동 관련한 도의적 책임은 충분히 인지하고 있고, 대리점연합도 원청에 강력히 요청할 것이다. 그렇지만 ‘대리점이 한 게 뭐가 있느냐’라고 따지는 것은 교섭 상대방을 부정하는 것이다. 성실한 교섭을 통해 진행해야 한다. 택배노조가 필요할 때만 원청을 끌어들여서 저희와 교섭하지 않고 원청과 교섭한다고 하는 것은 맞지 않다.

진=분류작업 문제와 노동시간, 고용 안정, 수수료 등 6개를 원청에 교섭 요청했다. 중앙노동위원회가 3개는 대리점이 관여할 수 없는 원청의 고유 권한이기 때문에 원청을 교섭기구로 인정한 것이고, 나머지는 대리점도 함께 논의하라고 했다. 대리점을 패싱(통과)하려는 것이 아니라, 조합원들은 절실히 필요하다고 생각해 만든 요구안에 대해 실제로 대리점이 해줄 수 있는 게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노조가 대리점에 원청이 할 수 있는 것을 해달라, 들어줄 때까지 파업한다고 하면 가능하겠나. 또 노조법상 타임오프(노조 전임자에 대한 근로시간 면제)를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의 문제도 있다. CJ대한통운은 조합원이 2700명인데, 이것을 하나의 사업장으로 보면 대략 1만5000시간까지 줄 수 있지만 개별 대리점으로 따지면 대리점이 180개가 넘기 때문에 거의 18만시간을 줘야 한다. (타임오프는) 법적 권리이지만, 그렇게 하면 현장은 아수라장이 된다. 대리점에게 요구하라는 주장이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 이유다.

-택배사가 갑인데 대리점이 택배사에 택배기사의 노동조건 등 개선을 요구할 수 있는 관계가 가능한가.

김=그런 관계는 충분히 만들어지고 있다. 대리점연합도 (택배사에) 이야기하려고 하고 사회적 분위기가 종사자의 안전, 장시간 노동, 위험 관련해서는 얼마든지 요청해 개선할 수 있는 쪽으로 가고 있다. 과거에는 거의 불가능할 정도의 갑을이었지만 지금은 많이 바뀌었다. 그래서 필요한 부분을 (원청에) 이야기할 것이다.

-택배업계 쟁점 관련해 택배사와 대리점, 택배기사 3자간 대화가 지속적으로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

진=이 자리에 원청이 빠져서 가슴 아프다. 택배산업 구조상 원청 교섭이 가장 기본적일 수밖에 없다. 원청과의 교섭이 정상적으로 진행되기 전까지 과도기적으로 대리점연합과의 교섭도 고민했지만 이번 사건에 대한 대리점연합 지도부 대응에 분노했고, 법적 구속력있는 사용자단체도 아니라고 보아 지금은 고려하고 있지 않다. 사회적 합의에서 택배기사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 인상하기로 한 택배비 170원을 어떻게 쓸 것인지 관련해 3자가 함께 논의하자는 것은 노조의 상식적이고 정상적인 요구다. 대리점연합은 원청하고 상대적 관계가 나아졌다고 하지만, 생사여탈권을 원청이 가진 상황에서 대리점연합은 원청의 교섭 맞상대가 될 수 없다.

김=개별 대리점은 노동법을 잘 알지 못하고 택배노조를 대응하는 게 부담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4년이 지났으면 상생하는 방법으로 가야하지 않나 생각한다. 불법적이거나 관행상 잘못된 것은 개선하고 있고, (심각한 비리 대리점주는) 제명 처리하고 원청에 계약 해지까지도 건의한다. 윤리강령을 만들어 안 지키는 대리점은 함께 갈 수 없다는 이야기도 나누고 있다. 택배노조에 부탁하고 싶은 것은 정상적인 노조 활동은 얼마든지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일부 무리한 요구나 지나칠 정도의 상황은 통제해줘야 하지 않나 싶다. 지난 3~4년간 현장에는 너무나 많은 불신이 쌓여있다. (대리점주와 택배기사들은) 현장에서 얼굴을 마주쳐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이런 부분이 빨리 해소되면 좋겠다.

진=택배노조는 이달 안에 이번 사건에 대해 종합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현장 활동에 대한 지침을 내릴 것이다. 폭언·욕설 등 괴롭히는 행위를 금지시키고, 정도가 심한 경우에는 징계하도록 규약을 개정할 것이다. 위원장 거취 문제도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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