④라이더가 늦어도 배달사고가 나도 전산이 먹통 돼도…모두를 대신하여, 죄송합니다읽음

김흥일·강은·이두리·반기웅 기자

배달의민족 콜센터 제3의 업무 ‘죄송’

코로나19 이후 온라인 쇼핑과 배송 서비스는 일상이 됐다. 전화나 애플리케이션(앱)을 이용한 비대면 주문이 늘자 콜센터 문의도 폭증했다. 공공 부문의 경우 백신 접종과 국민지원금 지급 등 상담 영역이 확장돼 콜센터 현장은 늘 인력난에 시달린다. 콜센터는 비대면 시대의 제일선이고, 콜센터 상담사는 첨병인 셈이다.

감염병이 일상이 된 시대에 노동환경도 변하고 있다. ‘닭장’에 비유되던 콜센터는 재택근무로 전환했다. 빗발치는 주문 상담에 콜센터 상담사의 노동강도는 이전보다 심해졌다. 노동 통제는 더 집요해졌다. 정교한 알고리즘에 따라 원격으로 실시간 감시한다. ‘악성’ 민원에 따른 정서적 고통은 홀로 감내해야 한다. 감정노동 현장에서 동료는 기댈 수 있는 언덕이다. 그러나 재택근무를 하는 노동자 곁에는 동료가 없다.

현장 업무 교육이 축소된 탓에 콜센터 상담사의 전문성은 떨어졌다. 헤드셋 건너 폭언을 들으며 업무를 익히는 노동자들은 속속 현장을 이탈한다. 그렇게 생긴 빈자리를 채용 공고에 걸린 ‘인센티브’를 보고 찾아온 새 노동자가 채운다.

코로나19로 정보기술(IT)·온라인 기반의 ‘혁신’ 기업들은 급속히 성장했다. 그 이면에는 콜센터 상담사들의 더 열악해진 노동환경이 있다. 콜센터 노동을 감독·관리해야 할 정부는 기업의 행태를 답습한다.

코로나19 2년째를 맞는 콜센터 노동 현장은 어떤 모습일까. 경향신문 기자들은 8월26일부터 9월10일까지 배달의민족, 쿠팡, 코로나19 상생국민지원금 콜센터에서 일했다. 콜센터 노동이라는 창을 통해 코로나 시대의 풍경을 담고자 했다. 그 생생한 체험기를 5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주>


[코로나 시대 콜센터, '을'며들다]④라이더가 늦어도 배달사고가 나도 전산이 먹통 돼도…모두를 대신하여, 죄송합니다

배달의민족 콜센터에선 모두가 모두에게 죄송하다. 오후 3시에 출근해 자정 무렵 퇴근할 때까지 “불편 끼쳐드려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업주와 고객, 라이더 등 배달의민족 애플리케이션(앱)에 연결된 이해당사자 전원에게 사과했다. 베테랑으로 불리는 동료 상담사 A씨도 일을 시작하고 2주가 될 때까지 ‘멘붕’이었다. 업무 스크립트가 입에 익는 데만 한 달 정도 걸렸다고 한다. 업무에 익숙해졌지만 A씨는 여전히 콜이 두렵다. ‘진상 콜’을 받으면 통화가 길어져 ‘장 콜’이 된다. 보통 하루에 60콜을 받았더라도 장 콜이 걸리면 40콜도 받지 못한다.

“이상한 콜에 걸릴까봐 맨날 쫄린다”는 A씨의 말은 엄살이 아니었다. 업주에게 걸려온 콜은 대부분 날이 서 있었다. ‘생업이 걸렸으니 이해해야지’ 싶다가도 콜을 받다 보면 ‘너무 심하잖아’라는 생각이 들었다.

배달 지연 건으로 전화한 쌀국숫집 사장은 연결되자마자 쉴 새 없이 불만을 쏟아냈다. “원인이 뭔지 대답을 해라” “일부러 우리 집만 안 오는 거냐” “우리 집 망하라고 일부러 그러는 거냐” “죄송하다는 말 말고 왜 그런지 말해라”라고 쏘아붙였다. 잠시 말이 끊긴 틈을 타 “업주님, 현재 라이더가 매장으로 가고 있습니다”라고 상황을 전했지만 소용없었다. 10분 뒤 라이더가 도착해 상황이 종료될 때까지 사과만 반복했다. 통화가 끝나자 A씨는 “늦는 이유를 말해도 똑같다. 그냥 말꼬리 잡고 계속 짜증낼 것”이라며 “‘무조건 죄송합니다’라고 하는 게 차라리 빨리 끝난다”고 조언했다.

신입은 더 죄송해야 했다. 한 업주는 연결되자마자 “아이씨”를 연발하며 반말 비슷하게 말끝을 뭉갰다. 다른 상담사에 비해 확인 작업이 더딘 듯 보이자 “신입이야? 하, 다른 상담사 바꿔봐”라며 반말이 튀어나왔다. 콜센터 규정상 다른 상담사에게 콜을 넘길 수 없다. 원칙대로 “죄송합니다. 다른 상담사를 바꿔드릴 수는 없습니다. 신입이지만 천천히 꼼꼼하게 해결해드리겠습니다”라고 했다. 업주는 혼잣말로 ‘아이씨 바빠 죽겠는데’라고 하더니 다른 상담사에게 연락하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음식 ‘오배달’ 환불 콜은 특히 다루기가 까다로웠다. 고객 불만을 접수하고, 업주에게 전화를 걸어 과실을 확인해야 한다. 동시에 라이더에게 채팅을 보내 귀책 여부도 따진다. 오배달 환불 처리는 신입에게 역부족이었다. 고객은 짜증을 냈고 업주는 업주대로 어떻게 처리해야 하느냐며 처리를 재촉했다. 동료 상담사들의 도움을 받았는데도 30분 넘게 걸렸다. 우여곡절 끝에 콜 처리를 한 뒤 자괴감에 고개를 숙였다. 동료 상담사 B씨는 “괜찮다. 신입이라 그렇다. 신입인 게 잘못인가. 어깨 펴라”라고 위로했다.

■전산이 먹통 돼도 “오류”라는 말은 금기

업주·고객에 무조건 죄송하다 사과
폭주하는 불만·항의, 상담사가 감당

비 오는 날은 배달 앱과 관련된 일을 하는 노동자들이 곤욕을 치른다. 배달 라이더가 속도를 내기가 힘들어 주문이 쌓이고 배달이 밀린다. 이런 날은 업주와 고객 양쪽에서 콜이 쇄도한다. 지난 9월7일 서울은 하루 종일 비가 내렸다. 설상가상으로 오후 9시 무렵부터 약 30분간 전산 프로그램이 먹통이 됐다. 배달 현황이 조회되지 않았고, 고객 주문도 막혔다. 오후 8시52분 93명이던 대기고객 콜은 9시20분이 되자 103명으로 늘어났다. 이때부터 콜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전산 오류가 난 상황에서도 상담사는 고객에게 ‘오류’라는 단어를 꺼내면 안 된다. 회사 지침에 따라 오류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 상황을 얼버무렸다. “비도 오고 그래서 배달이 밀려있는 상황입니다. 소중한 식사시간에 불편을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주문이 제대로 접수되지 않는 부분은 확인 중에 있습니다”를 반복하는 수밖에 없었다. 고객들이 왜 주문이 되지 않는지 물었지만 대답할 수 없었다. 줄줄이 주문이 취소되면서 업주들은 직격탄을 맞았다. 이렇게 되면 보상 콜이 폭주한다. 콜센터 곳곳에 상담사 헤드셋 너머로 큰 소리가 새어나왔다.

주문 취소 원인은 전산 오류였기 때문에 상담사들은 업주에게 ‘무조건’ 사과했다. 상세 보상 지침이 사측에서 내려오지 않았기 때문에 달리 할 말이 없었다. 업주의 거친 말을 들으면서도 ‘죄송하다’를 반복했다. 자영업자 커뮤니티에는 “배민 고객센터 40통째 전화하는데 연결이 안 된다”며 “환불받으려니 고객센터도 먹통”이라는 게시글이 올라왔다.

라이더 배차를 기다리던 끝에 한 업주는 직접 배달에 나섰다. 그는 ‘직접 배달을 했으니 배달비 보상이 되느냐’고 물었다. 배달의민족 측 라이더가 관여한 배달이 아니기 때문에 보상은 힘들다고 답했다. 그러자 시스템 문제로 취소된 주문 건에 대한 보상을 요구했다. 이번에도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업주는 “주문 취소로 고객에게 폭언을 들었다”며 “상담사 이름이 뭐냐”고 항의했다.

비슷한 콜이 반복됐다. 업주와 고객으로부터 번갈아가며 폭언을 들었다. 주문 취소 고객에게 양해를 구하려고 연락하니 “1시간째 기다리고 있다”며 대뜸 화부터 냈다. ‘환불은 어떻게 되는 거냐’는 질문에 “정확한 보상 내용은 추후 안내하겠다”고 에둘러 말했다. 답변이 무성의하다고 느꼈는지 화는 가라앉지 않았다. 상담사로서 그저 죄송할 따름이었다.

전산 오류에 대한 책임은 노동자들이 나눠서 짊어졌다. 배달의민족을 대신해 느슨한 계약 관계로 맺어진 간접고용 노동자(콜센터 상담사)와 플랫폼 노동자(라이더)가 방패막이가 된다. 배달 라이더는 성난 업주와 고객 사이를 오가며 위험한 배달을 한다. 콜센터 상담사는 시스템이 안정될 때까지 강도 높은 비난을 감당한다. “대책을 내놓으라”는 요구에 상담사가 할 수 있는 일은 사과하며 시간을 끄는 일 뿐이었다. 간혹 상대방의 분이 풀릴 때까지 사과해야 하는 악성 콜도 있었다. 즉시 보상을 요구하는 업주, 배달을 재촉하는 고객을 한꺼번에 감당해야 했다. 이날 밤 11시까지 대기 고객은 100명 안팎이 지속적으로 유지됐다.

■우아한형제들의 ‘방패막이’ 콜센터

운영사 “상담사 보호 프로그램 운영”
현실은 이용 대신 퇴사 선택이 다수

배달의민족 콜센터는 2021년 한국산업 서비스품질지수(KSQI) 콜센터 부문에서 우수콜센터에 선정됐다. 배달의민족 운영사 우아한형제들은 ‘배달 앱 업계에서 처음으로 배민 본사, 협력업체 콜센터에서 제공하는 고객 응대 서비스 만족도가 높다는 사실을 인정받았다’고 홍보했다. 우아한형제들 관계자는 “콜센터 상담사 복지에 신경을 쓰고 있다”며 “언어폭력으로부터 상담사를 보호하기 위해 자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아한형제들에서 자랑하는 콜센터 상담사 보호 프로그램은 ‘우아케어’이다. 업주나 고객이 상담사에게 성희롱을 하거나 욕설 등 폭언을 3차례 할 경우 우아케어 버튼을 누르면 상담 내용이 녹취된다. 통화도 상담사가 먼저 종료할 수 있다. 그러면 심리 안정을 위해 근무를 중단하고 현장에서 빠질 수 있다.

그러나 콜센터 현장에서 우아케어의 쓰임은 요원했다. 먼저 상담사가 당한 폭언이 우아케어 기준을 충족하는지 판단하기 어려웠다. “아이씨”와 같은 애매한 욕설, 거친 반말, 고성을 들었을 때 우아케어 버튼을 눌러도 되는지 자신할 수 없었다. 정도가 심한 욕설로 우아케어를 가동했다고 해도 사후 심리지원은 받기 힘들어 보였다. 하루는 콜센터 팀장에게 “업무 스트레스가 심하다. 도움받을 수 있는 지원 프로그램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팀장은 “딱히 프로그램 같은 건 마련돼 있지 않다”며 “콜을 옆에서 함께 듣는 역동석 근무를 하든지 휴식을 취하라”고 말했다.

콜 자체에 트라우마가 생기면 대책이 없다. 대부분 콜센터 노동자들은 강도 높은 내상을 입게 되면 우아케어 버튼 대신 퇴사를 택한다.

콜센터에서 만난 상담사 B씨도 퇴사를 앞두고 있었다. “왜 그만두냐”는 말에 B씨는 일과 학업을 병행하기 힘들어서라고 했지만 실제 이유는 따로 있었다. 곁에 있던 동료는 “B씨가 오처리해서 돈을 물어내게 됐다”며 “그 일로 콜 받는 일에 트라우마가 생긴 것 같다”고 했다. 콜센터 상담사들은 근로계약서를 쓰기 전에 ‘오처리할 경우 그에 대해 책임진다’는 서약서에 서명한다. 책임질 일을 겪은 노동자 대부분이 일터를 떠난다.

배달의민족 등 음식 배달 서비스 플랫폼은 코로나19로 수혜를 입은 대표적인 업종이다. 우아한형제들의 지난해 연결기준 매출액은 1조995억원으로 전년 대비 94.4% 증가했다. 감염병 확산에 따른 비대면 서비스 특수에 더해 기술을 앞세워 시장점유율을 높이는 데 성공했지만 플랫폼을 떠받치고 있는 콜센터 노동자의 노동환경은 개선되지 않았다. 김관욱 덕성여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콜센터 노동을 바라보는 혁신 기업의 시각은 기존 기업들과 다르지 않다”며 “혁신 기업은 다를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지만 기대와 달리 기존 콜센터 산업 패턴을 답습하고 있다. 콜센터 노동자를 ‘곧 떠날 사람’으로 간주하고 노동환경, 처우개선에 투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현장에서 체감 어려운 감정노동자보호법

정부, 코로나 집단감염 후 개선 약속
‘크게 바뀐 것이 없다’는 응답이 64%

정부가 콜센터 노동환경 개선에 나서는 것도 아니다. 지난해 3월 서울 구로콜센터 집단감염 사태를 계기로 정부는 콜센터의 노동환경 개선을 약속했다. 같은 해 12월에는 필수노동자 대책을 발표하면서 콜센터 상담사들에 대한 긴급대책도 내놓았는데, 여기에는 휴가 및 휴게시간 보장과 산업안전·근로감독 실시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하지만 이후에도 콜센터 노동환경은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다. 지난해 7월 ‘국민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 노동실태 증언대회’에서 1000여명의 조합원 중 790여명이 참여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코로나19 이후 공단과 수탁업체가 상담사 업무 환경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크게 바뀐 것이 없다’는 응답이 64%였고, ‘일부 개선됐으나 미흡하다’는 응답이 24.2%였다. 그나마 건보공단 콜센터 노동자는 노동조합을 통해 열악한 환경을 알릴 수 있다. 배달의민족 콜센터처럼 하청업체 비정규직 상담사가 모여 있는 사업장은 목소리를 낼 창구가 막혀 있다.

법에 기댈 수도 없는 실정이다. 2018년 10월 고객응대 노동자 보호를 위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일명 감정노동자보호법)이 시행됐지만 노동자들은 법의 효능감을 느끼지 못한다. 산업안전보건법 제41조(고객의 폭언 등으로 인한 건강장해 예방조치)는 고객의 폭언, 폭행 등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유발하는 행위로 인한 고객응대 근로자의 건강장해를 예방하기 위해 사업주가 필요한 조치를 하도록 돼 있다.

경향신문 취재 결과 감정노동자보호법 위반 신고 건수는 2018년 4건, 2019년 14건, 2020년 12건, 2021년 6월까지 2건으로 법 시행 이후 총 32건에 불과했다. 이 중 위반으로 인정된 건은 총 22건, 과태료(평균 300만원)가 부과된 건은 4건에 그쳤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금융권 고객응대 근로자는 금융관련 법에서 별도로 보호하고 있다”며 “금융 업종을 제외한 다른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을 다루다 보니 (신고 건수가) 차이가 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와 기업이 방치한 콜센터에서 기댈 곳은 동료의 선의뿐이었다. 콜센터 노동자들은 서로가 서로를 위로하며 하루를 버틴다. 입사 전에는 사측이 매달 콜 실적을 평가해 등급과 순위를 매겨 동료들과의 경쟁을 부추긴다고 들었다. 그러나 배달의민족 콜센터에서 만난 동료들은 신입에게도 관대했다. 업무 처리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면 수첩에 ‘이 상황에서는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 등을 세세히 적어서 건네줬다. 난감한 민원이 생기면 통화 중 ‘음소거’를 하고 동료에게 도움을 구하기도 했다. 악성 민원을 처리하고 나면 “맞아요” “잘했어요” “굿굿”이라며 격려해줬다.

쏟아지는 콜에 지쳐 휴식 버튼을 누르고 있으면 “일 때문이라면 너무 걱정하고 주눅들 필요 없어요. 당연한 거고 잘하고 있으니까” “재밌죠? 하다보면 익숙해질 거예요. 긴장할 거 전혀 없어요” “한 달만 버텨봐요. 첫 월급은 받아야 하지 않겠어요”라는 위로를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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