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면죄부” 비판에도 결국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국무회의 의결

이혜리·노정연 기자
지난 8월23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제대로 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시행령 제정 촉구’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김창길 기자

지난 8월23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제대로 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시행령 제정 촉구’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김창길 기자

중대재해처벌법의 세부사항이 담긴 시행령 제정안을 정부가 28일 국무회의에서 의결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안전·보건 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아 노동자가 사망하거나 다치게 한 사업주와 경영책임자를 보다 강하게 처벌하는 법이다. 노동계는 산업재해를 막기 위해 기업 책임을 명확히 하는 방향으로 시행령을 상당 부분 보완해야 한다고 주장해왔지만 최종 시행령에는 반영되지 않았다.

고용노동부는 이날 국무회의에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제정안을 심의·의결했다고 밝혔다. 시행령 제정안은 사업주·경영책임자가 갖는 안전·보건 확보의무의 구체적인 내용, 중대산업재해의 판단기준인 직업성 질병자의 범위, 중대시민재해의 공중이용시설 범위 등을 규정한다.

노동부는 “(지난 7월9일) 시행령 입법예고 후 제출된 약 300건의 의견을 검토해 제정안에 반영할 수 있는 부분을 최대한 반영했다”고 했다. 대표적으로 시행령 핵심인 사업주·경영책임자의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이행 의무 조항(제4조)의 추상적 표현을 구체화했다고 노동부는 설명했다.

사업장의 유해·위험요인을 확인·개선하는 절차를 마련하고 이행상황을 점검하라는 문구는 ‘반기 1회 이상 점검한 후 필요한 조치를 할 것’이라고 바뀌었다. 매년 안전·보건에 관한 인력, 시설·장비 등을 갖추기에 적정한 예산을 편성하라는 부분은 ‘재해 예방을 위해 필요한 예산’ ‘확인된 유해·위험요인의 개선을 위해 필요한 예산’과 같이 수정됐다.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충실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하라는 문구는 ‘해당 업무 수행에 필요한 권한과 예산을 주고, 업무를 충실하게 수행하는지 평가하는 기준을 마련하라’는 식으로 변경됐다. 노동부는 “현장에서 (규정 취지가) 축소 해석되지 않도록 명시하고, 안전보건관리책임자 등의 충실한 업무수행을 지원하는 방안을 구체화한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노동계가 지적해온 문제점들은 최종 시행령에 거의 반영되지 않았다. 노동계에서는 직업성 질병자 범위에서 과로사의 주된 원인인 뇌·심혈관계 질환, 직업성 암, 근골격계 질환 등이 빠졌고, 2인1조 작업 등 재해 예방에 필요한 적정 인력을 구체적으로 기재하지 않아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왔다. 또 안전보건 점검 업무를 외부 민간기관에 위탁할 수 있도록 해 경영책임자가 안전보건 관리상의 조치를 외주화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줬고, 공중이용시설 범위에서 건설이나 철거 현장을 빼는 등 지나치게 협소하게 규정한 것도 잘못됐다고 했다. 정부 시행령에 따르면 과로로 사망한 택배노동자나, 광주 철거현장 붕괴 참사 같은 재해를 일으킨 책임자들이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에서 빠져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민주노총은 이날 “노동부가 의견을 반영했다는 시행령 내용 대부분은 부분 수용, 모호한 수정에 불과하다”며 “노동자와 시민 요구를 외면한 문재인 정부를 강력하게 규탄한다”고 밝혔다. 한국노총도 “과연 정부가 중대재해를 줄이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다”며 “계속해서 중대재해처벌법과 시행령 개정을 요구하고 투쟁할 것”이라고 했다.

반면 경영계는 시행령 내용이 불명확한 것이 기업들에 지나친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규정의 불명확성 때문에 산업현장에서는 무엇을 지켜야 할지 알 수 없고, 향후 관계부처의 법 집행과정에서 많은 혼란과 부작용이 있을 것으로 우려된다”며 “산업계 우려사항이 충분히 검토·반영되지 않은 채 시행령이 국무회의를 통과해 매우 유감”이라고 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사업주에게 과도한 불안감을 조장하는 것은 오히려 재해 예방을 어렵게 만들 수 있다”며 “처벌 보다는 계도 중심으로 현장을 지도하면서 최소 1년 이상의 준비시간을 줘야 한다”고 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내년 1월27일 시행된다. 노동부는 “중대재해처벌법은 처벌이 아니라 중대재해를 예방하고자 하는 최소한의 안전 틀”이라며 “분야별 고시 제정과 가이드라인 마련, 권역별 교육, 현장지원단 구성·운영을 통한 컨설팅 지원 등을 통해 법 시행에 차질이 없도록 준비에 만전을 기할 계획”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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