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휴일 못 쉬는데, 갑질·해고도 마음대로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는 천민계급”읽음

이혜리 기자

근로기준법 적용되지 않는 5인 미만 사업장

당일 해고 통보·직장 내 괴롭힘 만연

노동조합·시민·민중·종교·학생단체·진보정당 등 81개 단체 대표들이 지난 9월14일 서울 중구 민주노총 회의실에서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 차별 폐지 공동행동 출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영민 기자

노동조합·시민·민중·종교·학생단체·진보정당 등 81개 단체 대표들이 지난 9월14일 서울 중구 민주노총 회의실에서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 차별 폐지 공동행동 출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영민 기자

11일은 한글날 대체공휴일이지만 5인 미만 사업장의 노동자들은 이날 쉬지 못했다. 개천절 대체공휴일이었던 지난 4일도 마찬가지다. 5인 미만 사업장은 공휴일법 적용 대상에서 배제돼있기 때문이다. 대체공휴일만의 문제가 아니다. 직장 내 괴롭힘과 부당 해고 금지, 연장·야간·휴일 근로 수당 등 근로기준법에 규정돼있는 여러 가지 노동자 보호 장치가 5인 미만 사업장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이런 노동자는 370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전체 노동자의 4분의 1 수준이다.

직장갑질119가 지난 5월부터 9월까지 4개월간 연구한 끝에 이날 ‘5인 미만 갑질 보고서’를 발표했다. 직장갑질119로 접수된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의 제보 71건을 분석했다. 직장 내 괴롭힘이 43.7%(31건)으로 가장 많았고, 임금은 42.3%(30건), 징계해고는 35.2%(25건)이었다.

제보 사례들을 보면 5인 미만 사업장에서는 갑작스러운 사용자의 해고 통보가 이뤄졌다. 해고에 정당한 이유가 있어야 하고, 해고할 때 예고해야 한다는 근로기준법 조항은 준수되지 않았다. 사용자의 과도한 업무 부여와 지나친 업무 지시, 4대 보험 미가입에 대해 항의하거나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한 노동자가 해고를 당했다. 한 노동자는 “평소 대표가 직원들에게 인격모독성 발언을 비롯해 갑질을 일삼아 정신적·육체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던 중 구두로 당일 해고 통보를 받았다”며 “상호간에 논의된 바 없이 강압적 분위기에서 대표가 고함을 치며 해고 통지를 했다”고 했다.

직장 내 괴롭힘도 제대로 구제되지 못하는 실정이다. 다른 노동자는 “사장이 폭언을 일삼았고, 살이 쪘다는 이유로 운동장을 돌게 만드는 등 사장에게 전화가 걸려오면 두려워 공포에 떨 정도였다”며 “노동청에 진정을 넣었으나 5인 미만 사업장이라고 해서 직장 내 괴롭힘은 다뤄지지도 못했다”고 했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실이 고용노동부를 통해 확보한 ‘직장 내 괴롭힘 사건 연도별 처리현황’을 보면 전체 신고 건수 중 5인 미만 사업장 등 근로기준법 적용 제외 건수의 비율이 지난해는 41.2%, 올해는 8월까지 37.7%였다. 직장 내 괴롭힘 신고의 상당수가 5인 미만 사업장에서 벌어진다고 추정할 수 있지만 감독 대상에는 포함되지 않는 것이다.

노동 관련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노동 관련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근로시간·연장근로·공휴일 규정·연차유급휴가 관련 근로기준법 조항도 5인 미만 사업장에 적용되지 않는다. 이에 따라 내년 5인 미만 사업장의 노동자는 5인 이상 사업장의 노동자보다 13~15일을 더 일하게 된다는 게 직장갑질119의 분석이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경제 위기는 5인 미만 사업장의 노동자들에게 더 큰 타격을 줄 수 있다. 근로기준법은 경영상 이유로 휴업을 하려면 평균임금의 70%를 지급해야 하지만 5인 미만 사업장은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한 노동자는 “코로나19 이후 장사가 잘 안 된다는 이유로 온갖 압박을 받았고 비상식적인 모욕 발언이 일상적이었다. 5인 미만이라는 이유로 무급 휴직, 직장 내 괴롭힘 등 온갖 갑질을 참아왔는데 너무 억울하다”고 했다.

직장갑질119는 해외에서는 국내와 같이 ‘노동자 수’를 기준으로 획일적으로 노동법의 적용을 배제하는 입법례는 찾아볼 수 없었다고 밝혔다. 예외적으로 노동자 수를 기준으로 개별법의 적용을 제한하는 경우는 있지만 이 때에도 입법·정책적 목표 달성을 위한 최소한의 조치로써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노동계는 5인 미만 사업장의 노동자도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근로기준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심준형 직장갑질119 노무사는 “5인 미만 사업장이라는 이유만으로 노동법 대부분의 조항을 적용하지 않는 근로기준법은 세계적 추세에 반하는 반인권법”이라며 “영세사업장의 조건을 고려하더라도 해고·직장갑질·휴일 등 기본적인 인권에 관한 조항은 시급히 근로기준법 시행령을 개정해 전체 노동자에게 적용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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