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약 놓인 지하실…“그래도 주운 침대로 사람 자는 것처럼 쉰다”

글·사진 강한들 기자

시민단체와 서울 아파트 경비원 노동환경 살펴보니

서울 용산구 한 아파트 단지 내 경비노동자들이 지내는 휴게공간. 시멘트 벽이 노출된 곳에 침대 하나가 놓여 있다.

서울 용산구 한 아파트 단지 내 경비노동자들이 지내는 휴게공간. 시멘트 벽이 노출된 곳에 침대 하나가 놓여 있다.

주민들 수시로 민원 제기
수면시간 보장받지 못해

허리를 잔뜩 숙이고 경비초소 뒤 계단으로 내려간다. 지하 특유의 쿰쿰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백열전구 두 개로는 밝히지 못하는 잿빛 시멘트 벽 공간은 어두컴컴하다. 빛이 채 닿지 못한 바닥 곳곳엔 ‘쥐약’이 놓여 있다.

공간 한가운데는 주민이 버린 침대를 가져다가 전기장판과 이불을 올려뒀다. 다른 냉난방 시설은 없다. 서울 용산구 A아파트 경비노동자 B씨(69)의 휴게공간이다. B씨는 “교대자가 운 좋게 침대를 주워둬서 그래도 사람 자는 것처럼 쉰다”며 “그전에는 그냥 바닥에다 매트리스 하나 깔고 살았다”고 말했다.

아파트 경비원에게 발레주차(대리주차), 택배 가정배달 등의 업무를 금지한 국토교통부의 공동주택관리법 시행령 제69조2가 지난 21일부터 시행됐다. 이에 맞춰 고용노동부는 지난 25일 휴게시설, 근로형태, 근로조건 등을 구체화한 감시·단속적(감단) 근로자 승인 판단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현행 경비원처럼 24시간 맞교대 근무를 하면서 임금 수준을 월 180만~200만원으로 유지하려면 사용자가 관할 지방고용노동관서의 감단 승인을 받아야 한다. 근로기준법 적용을 피할 수 있는 예외조항이다. 노동부는 “냉난방 시설을 갖추고 유해물질, 소음에 노출되지 않는 별도의 휴게공간을 둬야 감단 승인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단, 충분한 공간·시설이 마련된 경우는 별도 장소가 아니어도 가능하다는 단서를 달았다.

하지만 용산시민연대 등 시민단체와 함께 지난 28일 서울시내 아파트 3곳의 현장을 동행 취재한 결과 아파트 경비원이 고질적으로 겪던 발레주차, 휴게실 열악 등의 문제는 여전했다.

서울 용산구 한 아파트 단지의 비좁은 경비노동자 초소 내부.

서울 용산구 한 아파트 단지의 비좁은 경비노동자 초소 내부.

초소 업무공간 좁아 ‘열악’
금지된 발레주차도 여전

경비원들 “법과 현실 달라”

C아파트에서 일하는 경비노동자 심모씨(64)에겐 초소가 곧 휴게공간이다. 심씨는 가로 2m, 세로 3m 정도 되는 초소 업무공간에서 의자를 한쪽으로 밀어놓고 간이침대를 펴서 휴게시간을 보낸다. 초소에 에어컨은 있지만 적절한 난방기구는 없어 심씨는 전기장판에 의존해 겨울을 난다. D아파트에서 일하는 박모씨(68)도 휴게시간이 되면 책상 아래에 말아둔 이불을 꺼낸다. 업무 책상의 40㎝ 정도 되는 공간 아래로 발을 넣어야 다리를 뻗을 수 있다.

이들에게 가장 힘든 부분은 업무공간과 휴게공간이 분리되지 않아 적절한 수면시간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심씨가 자는 공간인 초소는 아파트 입구에 위치해 주민들이 자주 오가는 곳이다.

시간을 가리지 않는 주민들의 민원도 휴게시간을 방해한다. 박씨는 “새벽 2~3시에도 위층에서 뛴다, 운동을 한다, 쿵쿵거린다며 주민들이 민원을 넣는다”고 말했다. 금지된 발레주차를 계속하고 있는 경우도 있었다. C아파트의 경우 주차공간이 부족해 새벽이 되면 통행로에도 차를 주차하는 주민이 있다. 이럴 때 주민들은 경비노동자에게 차 키를 맡기고 들어간다. 이렇게 쌓인 키가 초소당 5개에 달하기도 한다.

C아파트의 한 경비노동자는 한 달 전쯤, 발레주차를 하다가 수억원 규모의 사고를 냈다. 다행히 차주가 보험 처리를 해주기로 해 보상은 면했지만, 사고 위험은 여전하다.

국토부는 공동주택관리법 시행령 제69조2를 어길 경우 지자체장이 위반 사실에 대한 사실조사, 시정명령을 거쳐 미이행 시 1000만원 이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다고 정했다. 노동부는 업무, 근로형태, 휴게시설, 근로조건 등 승인 기준을 적은 가이드라인을 준수하지 못할 경우 감단 승인을 취소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럼에도 현장에서는 아직 시행령, 가이드라인 준수가 더디게 진행되고 있었다.

박주영 민주노총법률원 부원장은 “노조가 조직돼 있지 않거나, 노동자들이 법을 잘 모르는 경우, 계속 일하는 게 우선시되다보니 문제시되지 않았던 것”이라며 “개별 노동자들이 감단 승인 취소를 요청해 노동부가 현장조사 후 취소하는 사례는 드물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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