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회사 통한 정규직 전환…문 정부, ‘위험의 외주화’ 해결 못했다”

이혜리 기자

민주노총 의뢰 연구보고서

KTX. 한국철도 제공

KTX. 한국철도 제공

비정규직은 안전 업무 배제
엘리베이터에 사람이 갇혀도
자회사 역무원, 구조 못 도와

“화재 같은 경우는 상황조치를 빨리 해야 하니까 적극적으로 조치하라고 하는데, 가령 엘리베이터에 사람이 갇히면 우리보고 구하지 말라고 지시가 내려온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냥 119에 신고하라는 거예요.(…) 역무원들이 능력이 없느냐? 아닙니다. 교육을 다 받았고, 수시로 점검하고 있기 때문에 충분히 구할 수 있음에도 안전업무에서 배제하기 위한 목적이 아닌가 생각해요.” 코레일(한국철도공사)의 자회사인 코레일네트웍스 소속의 역무원 노동자의 말이다.

다른 역무원 노동자도 이렇게 말했다. “승강장에 사람이 떨어졌거나 사고가 발생했는데 업무지시는 내려가지 말라고 했어요. 우리는 승강장에 내려가는 업무가 아닌 것이죠. 그럼 알아서 판단을 해야 하는데 내가 내려갔다가 사고가 나고, 그 책임을 코레일이 묻는다고 하면 누구 하나 내려갈 수가 없다는 거예요.”

18일 경향신문이 확보한 ‘외주화된 노동에서 노동자·시민의 위험 연구’ 연구보고서에서 연구진은 문재인 정부가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정책을 펼쳤지만 직접고용보다는 자회사 설립을 통한 정규직 전환 위주로 이뤄지면서 위험은 여전히 외주화돼 있다고 분석했다. 정부가 ‘상시·지속적 업무’와 함께 ‘생명·안전 업무’의 노동자를 직접 고용한다는 원칙을 세웠는데, 생명·안전 업무가 무엇인지에 대해선 기관별 판단에 맡기면서 현장의 혼선이 이어지고 오히려 위험 해결이 지연되는 현상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번 연구는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의뢰로 전주희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연구원, 남준규·한지훈 노동건강연대 회원이 수행했다.

연구진은 에스컬레이터에서 넘어지는 사고, 선로 위의 장애물 제거, 생명이 위독한 고객의 응급조치 등 역무에서 발생하는 사고를 그간 역무원이 대응해왔지만 사측이 정규직 전환 대상으로 분류하지 않기 위해 안전 업무에서 배제하는 모습이 발견된다고 했다. 아울러 이같은 문제들이 정부가 정규직 전환 방식으로 인정한 코레일네트웍스와 같은 자회사에서도 벌어진다는 게 연구진 분석이다.

연구진은 원·하청 관계에서 나타나는 위험이 자회사 구조에서도 개선되지 않고 동일한 위험을 발생시킨다고 했다. 그 중 하나가 안전 업무 해결과 관련한 소통 단절이다. 한 역무원 노동자는 연구진과의 인터뷰에서 “어떻게 하라는 지시가 내려지지는 않는다. 다만 어떤 상황이 발생했다는 소식을 (네이버 밴드 등에) 그대로 올릴 뿐이고, 그럼 다들 ‘알아서’ 일을 하게 된다”고 했다. 명시적 지시가 아니라 간접적 지시를 한다는 의미다. 연구진은 “사고가 발생하면 역무원을 포함해 청소노동자, 시설관리 노동자 등 주변의 노동자들이 함께 사고 수습을 할 수 밖에 없지만 각각 분할, 외주화된 상황에서 협업은 금지돼있으며 오로지 현장 대리인을 통해 원청을 매개한 소통만이 가능하다”며 “철도 현장의 안전시스템은 왜곡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코레일네트웍스 소속 역무원은 코레일 소속 정규직 역무원과 사실상 같은 업무를 하지만 고용 형태와 임금 액수가 다르다.

이같은 문제는 철도공사 소속인 열차팀장과 자회사 코레일관광개발 소속인 KTX 승무원들간에서도 드러났다. 승무원은 열차팀장과 업무수행을 위해 직접 소통하는 대신 자회사로 연락해 열차팀장에게 업무내용을 전달하는 식이다. 열차팀장은 광역무전기가 지급돼 사고 발생 시 관제실 등과 수시로 소통할 수 있지만 승무원은 단거리 무전기가 지급돼 정보에서 소외되기도 한다. 700여명의 승객이 3시간을 기차에 갇혀있었던 2018년 KTX 오송역 인근 열차 단전사고 배경에도 승무원에 대한 정보 소외가 있었다는 지적이 나왔다.

코레일네트웍스와 코레일관광개발의 노동자들은 정부의 정규직 전환 정책 추진 시점에 이미 자회사였고, 생명·안전 업무가 아니라는 이유로 전환 대상에서 제외된 사례다. 노조 쪽에선 자회사도 외주화에 해당하고, 자회사들 업무가 생명·안전 업무에 해당한다며 코레일이 직접 고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회사와 대립했다.

연구진은 “무엇이 생명·안전 업무인가를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시민의 안전을 위한 고용정책·안전정책이 다시 재설정돼야 한다”며 위험의 외주화를 막는 중요한 방안은 직접 고용이라는 고용 형태의 변화라고 했다. 코레일 측은 “코레일네트웍스와 코레일관광개발 근로자는 해당 기관의 정규직 신분으로 정부의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정책과 관련이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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