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도’ ‘1시간 내’ 대형마트 배송 속도 경쟁 치열한데…정작 속도 못내는 배송기사 보호 논의읽음

이혜리 기자
배달 관련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배달 관련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새벽배송, 자정 내 배송, 주문 후 1시간·2시간 내 배송. 최근 이마트·홈플러스·롯데마트 등 대형마트들이 잇따라 내놓은 상품 배송 서비스들이다. 코로나19 이후 유통업계 중심이 오프라인 점포에서 온라인 판매로 옮겨가면서 마트들이 배송 속도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반면 물건을 고객에게 전달하는 배송기사 보호에 대한 논의 속도는 더딘 실정이다. 노동계는 마트 배송기사가 택배기사와 비슷하다는 점에서 ‘택배노동자 과로사 방지법’으로 불리는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생물법)에 포함시켜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생물법을 담당하는 국토교통부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대책 마련은 늦어지고 있다.

23일 고용노동부 자료를 보면 물류센터에서 점포나 음식점, 고객에게 상품을 배송하는 기사 규모는 10만명으로 집계된다. 마트들은 근래 오프라인 점포는 없애거나 사실상 물류센터로 전환하고 온라인 판매에 집중하고 있다. 문제는 마트 배송기사가 특수고용 노동자라는 이유로 근로기준법 보호를 제대로 받지 못한다는 데 있다. 대형마트와 기사는 직접 근로계약을 맺지 않고 대형마트는 운송사와, 운송사는 기사와 운송에 관한 위탁 계약을 맺는 구조다.

택배기사의 경우에는 생물법의 적용을 받는다. 지난 1월 제정된 생물법은 운송 위탁 계약 6년 보장, 표준계약서 작성, 안전·보건 조치, 휴게시설 설치 등 택배기사 보호에 대한 규정을 담고 있다. 마트 배송기사 보호에 관해서는 법 규정이 없다. 업무적으로 택배와 유사하고, 물류와 유통의 경계가 사라지고 있는 상황을 감안해 생물법에 마트 배송기사도 포함시키자는 게 노동계 주장이다. 구체적으로 생물법을 개정해 생활물류서비스사업 범위에 현행 택배업·소화물배송대행업 외에 ‘유통산업 및 식품접객업에서 배송하는 사업’을 추가하자는 것이다. 이희종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정책실장은 “마트 배송기사가 하는 일이 택배노동자와 비슷하고 소비자 모두 그렇게 인식하고 있다”며 “택배 업무의 특성이나 (과로사 비판이라는) 여론에 힘입어 택배노동자 보호조치가 만들어졌다면 이 법 적용을 확대해서 비슷한 업종에 있는 노동자도 보호할 수 있는데 제대로 진행이 되지 않고 있다”고 했다. 마트노조 온라인배송지회는 지난해 5월 설립 이후 처음으로 지난 13일 파업을 하며 생물법 개정을 촉구했다.

국토부는 이같은 개정이 어렵다는 취지의 입장을 밝힌 것으로 확인됐다. 국토부는 임종성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낸 답변서에서 “대형마트 온라인 배송종사자 보호 필요성에 적극 공감한다”면서도 “유통사업자는 화물 운송을 의뢰하는 화주(유통업)로서 생활물류사업자가 아니기 때문에 유통배송종사자를 생활물류종사자로 규정하더라도 종사자 보호 규정을 강제할 근거가 없어 개정 실익이 없다”고 했다. 마트 배송기사는 물류 업무를 하기는 하지만 이들의 노동권 보호를 위해 규제 대상이 되는 대형마트는 유통사업자이기 때문에 생물법 대상이나 국토부 관할이 아니라는 취지다. 유통산업발전법(유통법)에 배송기사 보호 규정을 넣는 방안도 거론되지만, 유통법을 담당하는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노동계는 생물법에 넣자고 요구한 것으로 알고 있고 유통법에 넣자는 요구는 받은 적이 없다”며 “공식적으로 검토한 적이 없다”고 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유통산업 노동자 지원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만든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의 유통산업 태스크포스(TF)는 두 차례 공식 회의 이후 잠잠하다. 일자리위는 지난 8월 TF 발족 때까지만 해도 “향후 2개월 정도 집중 논의를 거쳐 대책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밝혔지만 현재까지 내놓은 게 없다. 일자리위 관계자는 “다음 회의 일정은 미정이고, 계속 내용을 검토 중”이라며 대책 발표가 늦어지는 이유에 대해선 밝히지 않았다. 다만 한국노총은 앞서 유통산업 노동자 지원 대책은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에서 논의해야 한다며 일자리위 TF를 반대했다. 경사노위에는 민주노총이 참여하지 않는다.

홈플러스는 서울 영등포점과 수원영통점에서 당일배송 마감 시간을 늘리고 배송 마감은 자정까지 늘린 ‘홈플러스 세븐오더’ 서비스를 시범 운영 중이라고 지난 3일 밝혔다. 사진은 홈플러스 세븐오더를 소개하는 모델. 홈플러스 제공·연합뉴스

홈플러스는 서울 영등포점과 수원영통점에서 당일배송 마감 시간을 늘리고 배송 마감은 자정까지 늘린 ‘홈플러스 세븐오더’ 서비스를 시범 운영 중이라고 지난 3일 밝혔다. 사진은 홈플러스 세븐오더를 소개하는 모델. 홈플러스 제공·연합뉴스

마트 배송기사의 장시간 노동과 센 노동강도는 지난 6월 민주노총 서비스연맹이 마트 배송기사 32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실태조사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조사 응답자의 59.6%가 한 달에 26일 이상 30일 미만 일했다고 답변했다. 하루 평균 31~40건을 배송하며, 노동시간은 하루 10~11시간 미만이 35.5%, 11~12시간이 33.3%, 12시간 이상이 15.1%였다.

응답자의 70.1%는 용차 비용이 부담스러워서 아파도 참고 일했다고 했다. 마트 배송기사들은 일을 쉬려면 대체 인력을 직접 구해야 한다. 특히 새벽배송은 오후 9~10시에 출근하는 야간 노동이다. 마트 배송은 내용물로 식품이 많기 때문에 빠른 배송이 요구된다고 한다. 노조 쪽에선 마트에서 만든 프로그램을 통해 주문 확인과 배송 지정이 이뤄지고, 조기·지연 배송 건수를 따져 기사의 업무 평가에 반영하며, 차량 점검을 마트에서 한다는 등의 이유로 마트가 실질적으로 지휘·감독을 한다고 보고 있다. 새벽배송을 하는 한 노동자는 일요일 배송이 생기면서 13일 연속으로 근무하는 기사들도 생겼다고 했다. 이 노동자는 “쉬는 날이었던 일요일에 갑자기 배송을 하게 되면 인센티브라도 적용돼야 하는데 그런 것도 없다”며 “물량은 늘어나지만 노동조건이 열악하니 사람들이 (일하러) 들어오지 않고, 기존 기사들의 노동강도는 더 세지고 있다”고 했다.

노동부는 지난 7월 이후 정부 정책에 따라 고용보험에 가입한 특수고용 노동자가 50만명을 넘었다고 홍보했지만, 마트 배송기사는 여전히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시행하는 ‘전국민 고용보험’ 정책의 적용은 현재까지 노동부가 지정한 12개 직종에만 해당되기 때문이다. 내년 1월부터 퀵서비스·대리운전기사로 확대하는 정도다. 산재보험의 경우에는 노동부가 지난 9월 물류센터나 점포에서 고객에게 상품을 배송하는 기사를 산재보험 적용 범위에 추가하는 내용의 산재보험법 시행령을 입법예고했다. 이에 따라 내년 7월부터 마트 배송기사에게 산재보험이 적용된다. 노동부 관계자는 “(마트 배송기사 등) 산재보험을 적용받는 직종에 대해 실태조사와 노·사, 전문가 논의를 통해 고용보험 적용 대상이 되는지를 추가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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