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공정수당, 양극화 해소 마중물 될까

김지환 기자

“한참 덜 받는 걸 조금 개선한 수준”…비정규직 ‘입구 규제’ 없인 땜질 처방 불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1월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신경제 비전선포식에서 발표를 하고 있다. / 국회사진기자단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1월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신경제 비전선포식에서 발표를 하고 있다. / 국회사진기자단

올해 대선과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뒤 치러진 대선의 가장 큰 차이점 중 하나는 ‘노동 공약’이다. 5년 전 대선후보들은 양극화 해소라는 촛불 민심의 목소리에 호응하려고 전향적인 노동 공약을 제시했다.

대표적인 것이 ‘최저임금 1만원’이다. 문 대통령과 유승민(바른정당)·심상정(정의당) 후보가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을 달성하겠다고 했고, 홍준표(자유한국당)·안철수(국민의당) 후보는 대통령 임기(2022) 안에 1만원까지 올리겠다고 약속했다.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핵심 요인인 비정규직 문제를 두고도 다양한 해법이 나왔다. 문 대통령은 출산·육아·휴직에 따른 결원 등 예외적 경우에만 비정규직 노동자 사용을 허용하는 ‘사용사유 제한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했다. 사용자의 비정규직 사용을 ‘입구’부터 규제하려는 것으로, 노동계가 줄곧 요구해온 내용이었다. 당시 문 대통령뿐 아니라 유승민·심상정 후보도 사용사유 제한 제도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5년 전과 달리 이번엔 노동 공약이 핵심 이슈로 떠오르지 않고 있다. 대선 투표일이 한 달 반가량 앞으로 다가왔지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아직 종합적인 노동 정책을 발표하지 않고 있다. 이 후보가 거듭 언급하고 있는 ‘비정규직 공정수당’이 그나마 유일한 쟁점으로 떠오르는 상황이다.

■찬반 엇갈리는 정치권

경기도가 지난해부터 전국 최초로 도입한 비정규직 공정수당은 경기도와 공공기관이 직접고용한 기간제 노동자에게 근로계약 종료 시 일한 기간에 따라 기본급의 5~10%를 추가수당으로 지급하는 제도다.

이 후보는 지난 1월 9일 페이스북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불안정·저임금의 중복차별에 시달리고, 임금 격차로 인한 일자리 양극화는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며 “이 중복차별 구조를 공공 영역에서부터 시정하기 위해 경기도 공공부문 비정규직을 대상으로 근무 기간이 짧을수록 더 많은 수당을 지급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정규직 공정수당이 공공을 넘어 민간까지 확대될 수 있도록 국회, 기업, 노동자들과 함께 정책적 대안을 모색하겠다”는 계획도 제시했다.

심 후보도 1월 6일 1호 공약으로 ‘신노동법’을 발표하면서 비정규직 평등수당을 공약으로 발표했다. “기업이 일시적 업무가 아닌 고용에서 단기로 노동자를 고용하고 계약을 연장하지 않으면 비정규직 계약종료 수당을 지급하겠다”는 내용이다. 이 후보 공약과 비슷한 취지다.

국민의힘은 “이 후보는 대한민국을 ‘수당 공화국’으로 만들 셈인가”라며 비정규직 공정수당 공약을 비판했다. 국민의힘 선대본부 황규환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비정규직 차별을 개선하자는 데 반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며 “그러나 비정규직의 임금을 무조건 정규직과 맞춰주자는 발상은 비정규직 문제의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도 없을 뿐더러 너무나도 단편적인 접근”이라고 말했다.

정치권에선 찬반이 엇갈리지만 비정규직 공정수당이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격차가 고착화하는 현실을 조금이라도 바꾸기 위한 마중물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는 전문가들의 평가는 눈여겨볼 만하다. 문제는 비정규직 공정수당을 받을 수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범위가 좁은 데다 격차를 해소하기엔 수당 액수도 크지 않다는 점이다. 비정규직 사용의 입구 규제 없이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금전적 보상을 강화하는 방식의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경기연구원이 2020년 작성한 ‘경기도 공공부문 비정규직 고용 불안정성 보상 도입방안 연구’ 보고서를 보면, 2019년 현재 경기도 기간제 노동자들의 임금은 월평균 212만원이다. 공무원 평균보다 월 318만원이 낮고, 무기계약직 1호봉(가군)에 비해서도 월 36만원이 낮다. 기본급이 낮은 데다 명절휴가비·복지포인트 등 복리후생수당도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경기도는 기간제 노동자 기본급의 5~10%를 고용불안정의 보상 명목으로 지급했다. 6개월 기간제는 98만8000원, 1년 기간제는 129만1000원이었다. 월 기준으로 하면 각각 16만5000원, 10만8000원이다. 경기도는 “2021년 1월 첫 시행 후, 같은해 11월 말 기준으로 도 소속 기간제 노동자 734명, 공공기관 소속 기간제 노동자 912명 등 총 1646명에게 9억4000만원을 지급했다”고 밝혔다. 올해에는 총 2085명에게 25억400만원을 지급할 예정이다.

비정규직 공정수당, 양극화 해소 마중물 될까

■여전히 정규직보다 낮은 임금

다른 지방자치단체 중 비정규직 공정수당 도입을 준비하는 곳도 있다. 경상남도는 비정규직 임금 실태조사, 연구용역 등을 거친 뒤 2025년부터 기간제 노동자에게 추가수당을 지급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경기도는 비정규직 공정수당 제도를 준비하면서 프랑스, 스페인 등 해외 사례를 참고했다. 경기연구원의 보고서를 보면 프랑스는 기간제 노동자의 근로계약이 끝나면 사용자가 총임금의 10%에 이르는 계약종료 수당을 지급한다. 스페인에선 비정규직 노동자를 일정 기간 고용한 다음 정규직 전환을 하지 않고 근로계약을 종료하면 노동자에게 근속기간 1년당 12일의 급여에 해당하는 금액을 퇴직수당으로 지급하도록 하고 있다.

보고서는 또 수도권 시민 2000명을 상대로 ‘고용이 불안정한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얼마를 금전적으로 보상하는 것이 공정한지’를 물은 결과, 비정규직 급여의 8.6%라는 응답이 나왔다고 밝혔다. 경기도는 해외 사례, 설문조사 결과 등을 바탕으로 기간제 노동자 기본급의 5~10%를 공정수당 금액으로 설정했다.

이 후보는 페이스북에 “고용 안정성을 보장받지 못하는 비정규직이 정규직보다 더 많은 보수를 받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상식이지만, 현실은 정반대”라고 적었다. 월 10만원대의 비정규직 공정수당을 지급한다고 해도 정규직과 기간제 노동자의 임금 격차는 여전하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는 성명서를 내고 “공정수당은 비정규직이 더 받는 것이 아니라 한참 덜 받는 상태를 조금 개선하는 것에 불과하다”며 “고용불안 해소 명목으로 추가 보상하는 방안도 의미가 있지만 기본적 임금과 수당에서부터 차별 없이 지급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지적했다.

박제성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프랑스는 업종별 단체협약에 따라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적용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정규직이든 기간제 노동자이든 임금이 같다. 이런 전제 위에서 기간제 노동자가 계약종료 시 총임금의 10%를 더 받는 것”이라며 “이렇게 되면 사용자가 인건비 절감을 위해 기간제 노동자를 쓸 유인이 낮아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정규직 공정수당이 실질적 의미를 가지려면 동일노동, 동일임금이 전제돼야 하는데 한국에선 그렇지 못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이 종종 언급하는 호주의 임시직 추가수당(Casual Loading) 역시 경기도의 비정규직 공정수당과 세부 내용이 다르다. 호주 정부기관인 공정근로 옴부즈맨(Fair Work Ombudsman)은 홈페이지에 “통상적으로 21세 이상의 고용인은 최소 시간당 20.33달러, 유급휴가를 가지 않으면 시간당 25.41달러를 받아야 한다”고 소개하고 있다. ‘유급휴가를 가지 않으면’이 호출노동과 같은 임시직 노동자를 지칭하며 이들은 고용 불안정의 대가로 정규직 최저시급보다 약 25%를 더 받는다. 경기도의 비정규직 공정수당은 비정규직 노동자의 기본급이 추가수당 계산 시 기준선이지만 호주의 임시직 추가수당은 정규직 시급이 기준선이다.

한국과 달리 호주의 임시직 추가수당을 민간 부문까지 적용할 수 있는 건 산업별 단체협약(Award)에 기업이 이 수당을 지급해야 한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호주에 있는 법무법인 ‘H&H’의 홍경일 대표변호사는 “호주 노동법상 고용주는 단체협약을 지켜야 하고 이를 위반하면 법적인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임시직 추가수당 지급은 고용주의 법적인 의무라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비정규직 공정수당보다 적용 범위가 넓고 비정규직이 받는 임금도 더 많은 호주의 임시직 추가수당조차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개선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호주노총이 2018년 낸 보고서에 이 점이 잘 드러난다. 보고서 제목이 ‘임시직 추가수당의 신화’였다.

보고서를 보면 호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임시직 노동자 비율(2016년 기준 25.1%)이 가장 높은 국가다. 보고서는 “임시직 노동자는 고용이 불안정하고 유급휴가·휴일을 누릴 수 없기 때문에 추가수당을 더 받는다고 알려져 있지만, 대부분의 임시직 노동자들은 같은 일을 하는 정규직 노동자에 비해 적은 임금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

홍경일 대표변호사는 “임시직 노동자의 시급 자체는 정규직보다 높지만 매주 정해진 노동시간을 보장받지 못하기 때문에 정규직에 비해 평균 임금은 낮은 편”이라며 “최근 임시직 노동자가 12개월 이상 일하면 고용주가 풀타임(전일제)이나 파트타임으로의 전환을 제안해야 한다는 법이 새로 (호주에) 생겼다”고 설명했다.


호주노총이 2018년 발표한 ‘임시직 추가수당의 신화’ 보고서 표지

호주노총이 2018년 발표한 ‘임시직 추가수당의 신화’ 보고서 표지

■한정적인 수당 적용 범위

현재로선 비정규직 공정수당의 혜택을 받을 수 가능성이 있는 이들은 공공부문이 ‘직접고용’한 기간제 노동자다. 사용자가 필요한 노동력을 직접 고용하지 않고 다른 기업이 고용한 노동자를 쓰는 ‘간접고용’ 비정규직은 적용 대상이 아니라는 얘기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18년 연구용역을 통해 실시한 ‘간접고용 노동자 노동인권 실태조사’를 보면 간접고용 노동자 수는 약 350만명이다. 규모는 2017년 기준 전체 임금노동자의 약 17.4%에 달한다.

자영업자로 분류해 노동관계법 밖에 있는 플랫폼 노동자들의 규모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고용노동부와 한국고용정보원이 발표한 ‘2021년 플랫폼 종사자 규모와 근무실태’ 결과를 보면 플랫폼 노동자는 약 66만명이었다. 이들 역시 비정규직 공정수당 적용 대상이 되기는 어렵다.

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은 “이미 한국사회에서 정규직·비정규직 간 격차보다 대기업·중소기업 간 격차가 더 벌어지기 시작했다. 특수고용직과 플랫폼 노동이 증가하며 기업들의 노동법 회피 전략이 발전하는 상황에서 노동 정책은 밑바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5인 미만 사업장에 근로기준법, 플랫폼 노동·특수고용직에 노동법을 전면 적용해 노동기본권을 보장해야 한다”며 “간접고용 비정규직에 원청 사용자 책임을 부여하는 바탕을 깔지 않고 만든 다른 정책들은 모래 위에 쌓은 성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짚었다.

■사라진 비정규직 입구 규제

이 후보는 지난해 12월 30일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토론회에서 ‘비정규직 정규직화’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격차 해소’에 무게중심을 두는 태도를 보였다. 그는 “과거처럼 특정 장소·시간에 모여서 일한 시간의 대가를 지급하는 방식의 보상에서 앞으로는 특히 코로나19 때문에 특정 장소·시간에 모이지 않고도 낸 성과에 보수를 지급하는 체계로 신속하게 바뀔 것 같다”며 “이렇게 되면 정규직이라는 의미가 더 없어질 수 있는 만큼 그런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만드는 것만이 정의인가. 그 생각도 교정할 필요 있다고 생각한다”며 “비정규직 일자리 노임 단가가 더 높은 방향으로 가면 정규직 전환 압박도 줄어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아직까지 비정규직 공정수당이 비정규직 입구 규제를 대체할 정도로 강력한 대안이라고 보긴 어렵다.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근로형태별 부가조사를 보면 2021년 8월 기준 비정규직은 806만6000명으로, 사상 처음 800만명을 돌파했다. 2017년 대선 당시 복수의 후보들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공약으로 제시한 비정규직 입구 규제의 필요성이 5년 사이 되레 더 커진 셈이다. 이정희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비정규직 공정수당 도입에 그치지 말고 단체협약 효력 확장, 비정규직 입구 규제 등 종합적인 그림을 내놔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비정규직 공정수당은 땜질에 그칠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최근 일자리 공약을 발표한 이 후보는 1월 안에 비정규직 공정수당뿐 아니라 다양한 정책 패키지를 담은 노동 공약을 발표할 예정이다. ‘사이다’와 ‘실용주의자’ 사이를 오가는 이 후보가 발표할 노동 공약 내용이 ‘노동이 사라진 대선’이라는 불명예에 어떤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을지 노사정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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