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그들의 노동이 사라진다면

조형국·이수민 기자
서울 중구의 한 사무실에서 청소 노동자가 화장실 쓰레기통을 비우고 있다. |이준헌 기자 heon@khan.kr

서울 중구의 한 사무실에서 청소 노동자가 화장실 쓰레기통을 비우고 있다. |이준헌 기자 heon@khan.kr

손가락을 ‘딱’ 부딪쳐 특정 집단을 사라지게 만들 수 있는 우주 빌런(악당)이 2022년 대한민국에 상륙했다고 가정해 보자. 이 빌런은 60세 이상 여성들을 잠시 데려가겠다고 마음먹었다. 많은 사람이 비탄에 빠졌을 때 어떤 이들은 ‘숫자’와 ‘손실’을 따졌다. 2021년 상반기 기준 임금근로자 2064만6569명 중 60세 이상 여성은 153만3410명. 노동력 7.4%의 증발을 두고 안도하는 이들도 있었다. 고령 여성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으니 최악의 상황은 아니라고. ‘세금으로 만든 노인 알바’ ‘혈세로 만든 허드렛일’처럼 노인 노동을 향한 혐오적 시선이 낙관에 일조했다. 딱! 그들이 증발하자, 대한민국은 마비됐다.

‘필수노동’에 종사하는 노동자 4분의 1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필수노동자 4명 중 1명은 60세 이상 여성

필수노동자 4명 중 1명은 60세 이상 여성 노동자다. 경향신문 데이터저널리즘팀 다이브가 통계청 지역별 고용조사 마이크로데이터(2021년 상반기)를 분석한 결과, 전체 필수노동자 336만7900명(임금근로자 기준) 중 60세 이상 여성은 87만4185명(26.0%)이었다. 50세 이상 여성을 포함하면 비중은 42.1%까지 치솟는다. 전체 임금근로자에서 희미했던 고령층 여성의 존재감은 ‘필수노동’이라는 돋보기를 대면 놀랍도록 뚜렷해졌다.

필수노동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등장한 개념이다. 재난 속에서 사회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노동을 뜻한다. 전염병이 세계를 휩쓴 뒤 국경이 봉쇄되고 평범한 일상이 중지되면서 세계 각국은 필수노동의 범위를 따졌다. 필수노동자 상당수는 재택근무 대상에 포함되지 못했고, 전염병 초기 무방비로 감염의 위험에 노출됐다가 백신 개발 이후에야 우선 접종 대상으로 지정됐다.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그들이 없으면 사회가 돌아가지 않기 때문이기도 했다.

어떤 직종이 필수노동인가. 한국에선 지난해 5월18일 ‘필수업무 지정 및 종사자 보호·지원에 관한 법률’이 제정됐다. 그러나 필수노동자를 ‘재난이 발생한 경우 국민의 생명과 신체의 보호 또는 사회 기능의 안정적 유지를 위한 필수적인 업무에 종사하는 사람’이라고만 규정할 뿐, 업종을 구체적으로 명시하진 않았다.

경향신문 데이터저널리즘팀 다이브는 한국표준직업분류를 참조해 ①가사 및 육아 도우미 ②간호사 ③돌봄 및 보건 서비스 종사자 ④배달원 ⑤보건의료 관련 종사자 ⑥사회복지 관련 종사자 ⑦자동차 운전원 ⑧청소원 및 환경미화원 등 8개 직업을 필수노동에 해당한다고 봤다. 직업 선정은 2020년 12월 정부가 발표한 ‘필수노동자 보호·지원 대책’, 서울노동권익센터와 성동구청의 연구자료 등을 참고했다(필수노동의 범위는 고용노동부 ‘필수업무 지정 및 종사자 지원위원회’ 심의 결과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 표준직업분류 소분류 통계를 활용하기 위해 통계청 지역별 고용조사 마이크로데이터를 활용했으며 연간 데이터는 2021년 최신 수치와 통일하기 위해 모두 상반기 자료를 활용했다. 분석 결과 필수노동자의 67.4%는 여성, 32.6%는 남성이었다. 배달원과 자동차 운전원을 제외한 모든 직업에서 여성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여성 비중이 가장 높은 직업은 가사 및 육아 도우미(98.2%)였고 간호사(94.7%), 돌봄 및 보건 서비스 종사자(93.8%), 보건의료 관련 종사자(91.4%) 순이었다. 고령층 여성의 비중은 특히 두드러졌다. 전체 필수노동자를 연령대별로 줄 세웠을 때 50대 여성(16.2%), 60대 여성(15.7%), 40대 여성(11.2%), 70대 이상 여성(10.2%) 순이었다.

다른 이들이 발로 밟고 딛고 걷는 곳을 청소 노동자는 손으로 닦고 쓸고 훔친다. 허리를 숙이거나 무릎을 굽혀야만 할 수 있는 일이다. 누군가를 돌보고 씻기면서 살아가게 하는 일도 이와 비슷하다. 누군가 반드시 해야하는 일이지만, 평소에는 잘 보이지 않는 것, ‘그림자 노동’으로 불려온 ‘필수노동’의 모습이다. |이준헌 기자 heon@khan.kr

다른 이들이 발로 밟고 딛고 걷는 곳을 청소 노동자는 손으로 닦고 쓸고 훔친다. 허리를 숙이거나 무릎을 굽혀야만 할 수 있는 일이다. 누군가를 돌보고 씻기면서 살아가게 하는 일도 이와 비슷하다. 누군가 반드시 해야하는 일이지만, 평소에는 잘 보이지 않는 것, ‘그림자 노동’으로 불려온 ‘필수노동’의 모습이다. |이준헌 기자 heon@khan.kr

필수노동의 키워드는 청소와 돌봄

고령층 여성은 더 빠른 속도로 필수노동에 유입되고 있다. 60대 이상 여성 임금근로자 중 필수노동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2017년 51.9%에서 지난해 57.0%로 증가했다. 임금을 받고 일하는 고령층 여성 10명 중 5명이 필수노동자인데, 곧 6명이 된다는 뜻이다. 필수노동 내의 6070 여성의 비중은 2017년 18.9%에서 지난해 26.0%로 늘었다. 저출생·고령화 속도를 감안하면 ‘필수노동 고령 여성화’가 더욱 가팔라질 수 있다.

이는 고령 여성의 노동시장 진출 확대와 무관치 않다. 일하는 고령층 여성의 규모는 이미 젊은 세대를 뛰어넘은 지 오래다.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를 보면 60세 이상 여성 취업자(203만4000명)는 2019년부터 20대 여성 취업자(191만7000명)를 넘어섰다. 1963년 통계 작성 이후 처음이었다. 70세 이상 여성 취업자(71만8000명) 역시 20~24세 여성 취업자(69만7000명)를 2020년에 넘었다.

‘가사 및 육아 도우미’는 필수노동 8개 직업 중 60대 여성의 비중이 가장 높았다. 전체 가사 및 육아 도우미의 56.3%(60대 46.5%, 70대 이상 9.8%)가 고령층 여성이었다. ‘청소원 및 환경미화원’도 60대 이상 여성 노동의 비중이 높은 직업이다. 전체 청소원 및 환경미화원의 54.6%(60대 25.7%, 70대 이상 28.9%)가 고령층 여성이었다. 특히 70대 이상 여성의 비중이 높았다. 70대 이상 여성 청소원 및 환경미화원은 29만4493명(28.9%)으로 전 연령대 남성 청소원 및 환경미화원 28만5885명(28.0%)보다 많았다. ‘돌봄 및 보건 서비스 종사자’ 역시 고령층 여성 비중이 38.0%로 6070 여성 의존도가 높은 직업군에 속했다. 간호사는 20대 여성(31.2%), 배달원은 40대 남성(24.9%), 사회복지 관련 종사자는 40대 여성(31.8%), 자동차 운전원은 50대 남성(36.4%)이 각 직업군을 대표하는 연령대였다.

불안정·저임금…보호받지 못한 고령 여성 노동

특히 청소원 및 환경미화원은 블랙홀처럼 고령층 여성들을 빨아들이고 있다. 50대 여성 임금근로자는 돌봄 및 보건 서비스 종사자(10.5%), 매장 판매 종사자(6.9%), 청소원 및 환경미화원(6.8%), 조리사(6.6%), 회계 및 경리 사무원(5.3%) 순으로 일하고 있었다. 반면 70대 여성은 청소원 및 환경미화원(57.7%), 기타 서비스 관련 단순 종사자(8.9%), 음식 관련 단순 종사자(7.4%), 돌봄 및 보건 서비스 종사자(6.2%), 농림·어업 관련 단순 종사자(4.4%) 순이었다. 남녀 모두 나이가 들수록 직업 선택의 폭이 좁아지는데, 여성의 일자리는 특히 ‘청소·돌봄’으로 좁아졌다.

청소원 및 환경미화원은 또 다른 의미의 블랙홀인데, 그것은 불안정·저임금의 수렁을 의미한다. 청소원 및 환경미화원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70대 이상 여성의 근로조건은 특히 열악하다. 70대 이상 여성 청소원 및 환경미화원 중 상용근로자(고용계약기간이 1년 이상인 사람 등) 비중은 3.6%, 임시근로자(고용기간이 1개월 이상, 1년 미만인 사람 등) 비중은 92.7%였다. 60세 이상 여성으로 범위를 확대하면 임시·일용근로자 비중은 77.6%가 된다. 전체 청소원 및 환경미화원은 주 평균 26시간 일했고 112만6000원을 받았는데 70대 이상 여성 청소원 및 환경미화원은 주 평균 14시간 일하고 월평균 47만7000원을 받았다. 그만큼 고용은 불안정하고 임금 수준이 열악하다는 뜻이다.

[젠더기획]어느날 그들의 노동이 사라진다면

누군가를, 어떤 곳을 보살피는 일에는 큰 스트레스가 동반된다. 고령층 여성의 필수노동을 모두 고강도 정신노동이자, 육체노동이라 일컫는 이유다. 아기를 업고 달래거나, 누워있는 환자를 일으켜 세우거나, 쓰레기를 줍고 통을 나르거나, 계단을 쓸고 닦으며 수차례 오르내리면서 그들의 관절은 젊었을 때보다 더 빠른 속도로 마모된다. 인격적 모욕, 성희롱, 의심과 하대가 비일비재하다는 건 굳이 연구용역이나 설문조사로 확인하지 않아도 익히 알려진 사실들이다.

이들의 노동은 충분히 보호받고 있을까. 산업재해를 인정하는 사업장은 극히 드물며, 신청 절차를 몰라 아예 신청 자체를 하지 않거나, 그냥 내 돈을 내고 병원을 찾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일에 지친 손목·허리·무릎·어깨의 아우성이 ‘근골격계 질환’으로 묶여 취급되면, 노동은 지워지고 세월만 남는다. 일하다 다치거나 아프더라도 ‘늙으면 다 그래’라는 자조와 편견 탓에 고령층 여성들의 필수노동은 충분히 보호받지 못한다.

요양병원에서 일하는 간병 노동자가 다리 수술을 받은 고령 환자의 걷기 연습을 돕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요양병원에서 일하는 간병 노동자가 다리 수술을 받은 고령 환자의 걷기 연습을 돕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어느 날 갑자기’ 그들의 노동이 사라진다면

어느 날 정말 60세 이상 여성들이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 다시 ‘숫자’로 보자. 가사 및 육아 도우미와 청소원 및 환경미화원의 절반이, 돌봄 및 보건 서비스 종사자 10명 중 4명이 사라지게 된다. 6만여명의 가사 및 육아 도우미가 출근하던 가정에서, 22만여명의 돌봄 및 보건 서비스 종사자가 일하던 요양병원과 복지시설에서, 55만여명의 청소원 및 환경미화원이 오가던 사무실과 길거리에서 분주히 움직이던 손과 발이 없어진다는 뜻이다.

필수노동의 공백으로 많은 시민이 마주하게 될 혼란은 숫자가 보여주는 ‘손실’만으로 추산하기 어렵다. 그러나 사회를 멈춰 세울 정도의 중요한 노동은 너무도 값싼 비용으로 유지돼왔다. 모두가 꺼리는 적은 임금, 열악한 근무환경, 불안정한 일자리, 감염 위험, 필수노동을 낮잡아 보는 편견을 고령층 여성들이 감수해온 덕에 이 사회가 유지됐다. ‘반찬값이라도 벌어야 하니까’ ‘자녀들한테 폐 끼치기 싫으니까’ ‘우리 집엔 내가 없으면 안 되니까’라는 마음으로, 마치 집을 꾸리고 지켜온 것처럼 고령층 여성은 이 사회를 꾸리고 지켜온 것이다.

코로나19 이후 필수노동자들의 처우는 조금 나아졌을까. 법은 만들어졌지만 달라진 건 없다. 필수업무 지정 및 종사자 보호·지원에 관한 법률이 시행된 지 두 달이 지났지만, 필수업무 범위조차 정해지지 않았다. 정치권을 중심으로 논의만 무성했던 ‘필수노동 보호방안’은 누구를, 무엇을, 어떻게 같은 기초적인 질문에서부터 막힌 상태다. ‘딱!’ 수십년 동안 묵묵히 궂은일을 도맡아온 여성들이 제대로 된 처우를 받기 위해서 우리에겐 얼마나 큰 충격이 필요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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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기획]어느날 그들의 노동이 사라진다면
■젠더기획 특별취재팀
장은교(젠더데스크) 이아름·심윤지(플랫) 조형국·이수민(데이터저널리즘팀 다이브) 이하늬(정책사회부) 이준헌(사진부) 최유진(뉴콘텐츠팀) 김윤숙(교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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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형국·이수민 기자 situati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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