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명도 자르지 말고, 하청 차별 말라” 김진숙, 37년 만의 출근…그리고 퇴임

권기정 기자

“긴 싸움 오늘로 마친다” 감격

HJ중공업 농성장도 자진 철거

그 때 그 작업복 입고 갑니다  37년간 복직 투쟁을 벌였던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25일 부산  HJ중공업에서 열린 명예복직 및 퇴임행사에서소회를 밝히고 있다. 부산 | 강윤중 기자

그 때 그 작업복 입고 갑니다 37년간 복직 투쟁을 벌였던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25일 부산 HJ중공업에서 열린 명예복직 및 퇴임행사에서소회를 밝히고 있다. 부산 | 강윤중 기자

“단식을 해도, 애원을 해도 열리지 않던 문이 오늘에야 37년 만에 열렸습니다. 탄압과 분열의 상징인 한진중공업 작업복은 제가 입고 가겠습니다. 여러분은 미래로 가십시오.”

25일 오전 11시 부산 영도구 HJ중공업(옛 한진중공업) 단결의광장. ‘소금꽃나무 김진숙 복직행사’라고 쓴 단상으로 올라선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61)은 37년 만에 회사로 출근한 감격에 눈물을 쏟았다.

HJ중공업 전신인 한진중공업의 푸른색 작업복을 입고 안전모를 쓴 그는 “검은 보자기에 덮어 쓰인 채 어딘지도 모르고 끌려간 날로부터 37년, 어용노조 간부들과 관리자들 수십, 수백명에게 만신창이가 된 채 공장 도로 앞을 질질 끌려다니던 그 살 떨리던 날로부터 37년이 흘렀다”며 “그 북받치는 날들로부터 37년 만에 여러분 앞에 섰고, 저에게는 오늘 하루가 37년”이라고 말했다.

김 지도위원은 “여러분은 이제 미래로 가십시오. 더는 울지 않고 더는 죽지 않는 그리고 더는 갈라서지 않는 이 단결의 광장에 조합원들의 함성으로 꽉 차는 미래로 거침없이 당당히 가십시오”라고 말했다. 또“여러분의 힘으로 여기까지 왔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던 세월, 37년의 싸움을 오늘 저는 마친다”며 동지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했다.

새로운 경영진과 정치권에 건네는 당부의 말도 잊지 않았다.

그는 새로운 경영진에게 요구했다. “단 한 명도 자르지 마십시오. 하청노동자 차별하지 마십시오. 그래야 제 복직의 의미가 있습니다.” 정치권에도 당부했다. “(중대재해와 관련) 유족과 노동자의 말을 들으십시오. 그래야 차별이 없어집니다.”

1981년 용접공으로 입사한 김 지도위원은 1986년 노동조합 대의원에 당선된 뒤 노조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고초를 겪었다. 같은 해 회사는 강제적인 부서 이동을 명령했고, 이에 김 지도위원이 반발하자 결국 해고했다. 김 지도위원은 부당해고임을 주장하며 지난 37년간 복직 투쟁을 벌였다. 2011년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때에는 영도조선소 내 크레인 위에서 309일 동안 고공 농성을 벌이며 노동자를 지원하기도 했다. 김 지도위원이 해고된 기간 대한조선공사는 1989년 한진중공업으로, 다시 2021년에는 HJ중공업으로 이름을 바꿨다.

그는 2020년 만 60세 정년을 넘겼고, 법적으로 복직의 길이 막히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하지만 노사 양측이 지난 23일 전격적으로 합의하면서 김 지도위원의 명예 복직이 성사됐다.

이날 37년 만에 출근한 김 지도위원은 아침 일찍부터 자신이 예전에 일했던 곳을 둘러봤다. 안전모를 비롯해 옛 한진중공업 작업복을 챙겨 입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홍문기 HJ중공업 대표는 “기존의 해묵은 갈등은 털고 노사가 함께 재도약에 집중하자”면서 “김진숙님의 앞으로의 삶에 행운과 건강이 충만하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HJ중공업 노사는 이날 김 지도위원 복직을 계기로 해묵은 노사갈등을 털어내고 100년 기업을 향해 나아가기로 했다. 장기농성의 상징이었던 영도조선소 정문 앞 천막 농성장도 설치된 지 600여일 만인 이날 노사 합의로 철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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