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잡는 유독물질, 무허가 제조·유통까지

유선희 기자

관리·감독 얼마나 허술했기에

사람 잡는 유독물질, 무허가 제조·유통까지

지난달 두성산업 등 2곳서
세척공정 노동자 집단중독

공급업체는 관련 서류 조작
제조·판매와 사용 점검은
환경·노동부가 분리 감독

한 해 신고 화학물질 10만여건
성분 분석도 물리적 한계
불법 일어난 곳곳 사각지대

경남 김해시 자동차 부품 제조업체 대흥알앤티 사업장의 쇼트처리 공정에서 5년 동안 세척 일을 한 강지훈씨(30·가명)가 몸에 이상을 느낀 건 지난달 초였다. 구역질이 났고 두통이 심했다. 위장에 문제가 있는 줄 알고 내시경 검사를 받았다. 약을 먹었는데도 구역질이 계속되자 간 검사를 받았고, 보름쯤 뒤인 17일 입원했다. 그즈음 두성산업에서 집단 직업성 질병자가 발생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강씨는 대흥알앤티에서 급성 간중독 증상이 나타나 입원을 한 두번째 환자다. 현재는 퇴원해 약을 먹고 있다. 강씨는 지난 23일 통화에서“지금은 간 수치가 정상으로 돌아왔지만 언제 재발할지 모른다고 해 걱정이 크다. 온몸에 두드러기가 나서 고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2월 대흥알앤티와 두성산업에서는 세척공정에서 일해온 노동자들이 집단으로 트리클로로메탄에 중독된 사실이 알려졌다. 급성중독으로 두성산업에서 16명, 대흥알앤티에서 13명의 직업성 질병자가 발생했다. 조사결과 제조부터 판매까지 총체적인 불법이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두 기업에 세척제를 제조해 납품한 유성케미칼은 환경부로부터 트리클로로메탄을 제조할 수 있는 영업허가를 받지 않았다. 화학물질관리법에 따라 유독물질이나 제한물질 등 유해화학물질을 제조·판매하려면 환경부로부터 영업허가를 받아야 하지만, 아예 트리클로로메탄 제조에 대해 허가 신청조차 하지 않은 무허가 업체였다. 또 제품을 납품할 때 성분 정보를 표기하는 물질안전보건자료(MSDS)에 트리클로로메탄이 아닌 다른 물질을 표기해 기업에 제출했고, 고용노동부에는 제출도 하지 않아 과태료 처분이 내려졌다. 환경부는 유성케미칼을 경남도경찰청에 고발했다.

문제가 된 유독물질은 제조뿐만 아니라 판매에서도 불법이 있었다. 유성케미칼이 제조한 세척제는 도매상을 거쳐 두성산업과 대흥알앤티에 판매됐다. 그런데 이 도매상들도 판매허가를 받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어떻게 이 같은 독성 물질이 무허가 업체들에서 제조·유통되고 수십명이 질병에 걸릴 때까지 방치될 수 있었을까. 우선 유해화학물질의 제조·판매 허가와 규제는 환경부가, 사용에 대한 지도 점검은 노동부가 하는 등 업무 이원화가 사각지대를 만들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초 세척제 취급사업장에서는 세척제의 주요성분으로 디클로로메탄을 사용해왔다. 그런데 2019년 10월 환경부가 디클로로메탄을 유독물질로 분류하고 혼합물 함량기준을 0.1%로 강화하면서 기업은 대체 세척제를 찾아야 했다. 대체 세척제를 찾는 과정에서 안전성을 고려하지 않고 미규제 화학물질을 선택하는 사례가 있는 것으로 노동부는 파악하고 있다.

강은미 정의당 의원이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을 통해 확인한 자료에 따르면, 유성케미칼이 대흥알앤티에 제공한 MSDS에는 다이메틸카르보네이트 함유량이 70%라고 적혀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40%에 불과했고, 트리클로로메탄이 30% 정도 함유돼 있었다. 이 30%는 법정 허용기준치(10%)의 3배에 달한다. 이윤근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소장은 “이번 기회에 화학물질과 관련된 업무를 전체적으로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노동부와 환경부는 지난 28일부터 4주간 세척제 제조·수입·유통업계 전반에 대한 합동점검에 뒤늦게 착수했다. 화학물질과 관련해 환경부와 합동점검을 진행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성분분석이 별도로 이뤄지지 않은 것도 중대재해를 막지 못한 이유다. 환경부와 노동부는 유해화학물질 성분을 분석하지 않는다. 노동부에 따르면 지난 한 해 10만여건의 화학물질에 대한 명세서가 발급됐고, 이 중 MSDS에 제출된 게 5만3000여건이다. 공단 관계자는 “유럽연합과 미국은 ‘안전한 염소계 세척제는 없다’는 점을 인정하고, 물을 주성분으로 초음파 등을 통해 세척할 수 있는 시스템(수계 세척 시스템)으로 변경이 이뤄지고 있다”며 “한국도 근본적인 제도 개선을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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