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지엠 '제2의 군산사태' 오나···부품사 '무급휴직·희망퇴직' 통보

이혜리 기자

말리부·트랙스 생산 라인

노조·사측 고용안정 논의

비정규직 등은 대안 없고

협력사 직원들은 더 심각

휴업 중인 한국지엠 부평2공장의 모습.

휴업 중인 한국지엠 부평2공장의 모습.

한국지엠이 부평2공장의 생산을 올해 중단하기로 하면서 노동자가 대규모로 구조조정된 2018년 군산공장 폐쇄 사태가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정규직 노조는 그나마 사측과 고용안정 대책을 논의하고 있지만, 사내하청업체 소속 비정규직과 사외하청업체인 부품사 노동자들에 대해선 마땅한 논의조차 없는 실정이다. 부평2공장에서는 말리부와 트랙스를 생산해왔다.

■부평2공장 중단, 노동자들은 어떻게

6일 경향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한국지엠은 정규직 노동자들로 구성된 노동조합인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와 가진 고용안정특별위원회에서 부평2공장을 오는 8월부터 생산 중단하거나, 5월1일부터 기존 2교대 체제를 1교대로 바꾸는 대신 연말까지 생산을 연장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한국지엠은 시장 수요 등을 감안해 부평2공장의 생산 중단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인데, 하루 2개 팀이 생산에 투입되던 구조에서 1개 팀만 투입되는 구조로 바꾸면 연말까지는 연장 가동을 하겠다는 것이다. 1교대로 바꿀 경우 생산에 투입되지 않는 1개 팀은 부평1공장이나 창원공장으로 전환배치하는 방안이 논의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노조는 총 고용량은 유지돼야 하고, 인위적·강제적인 전환 배치는 없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문제는 논의가 정규직에 집중돼있다는 것이다. 부평2공장에는 정규직 노동자 1400여명 외에 250여명의 사내하청업체 소속 비정규직 노동자도 있지만 비정규직 대책은 논의되지 않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로 구성된 금속노조 인천지부 한국지엠 부평비정규직지회 이영수 지회장은 “만약 1교대로 전환되거나 공장이 폐쇄되면 비정규직은 다 해고되는 상황”이라고 했다. 군산공장의 경우 2015년 2교대에서 1교대로 전환했고 2018년 공장이 폐쇄됐는데 사내하청 노동자 1100여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부평2공장에 부품을 납품하던 부품사 노동자들은 더 심각한 상황이다. 당장 부품사인 디지에프 오토모티브는 지난달 23일 노조(금속노조 인천지부 부평공단지회)에 한국지엠의 부평2공장 생산 중단 방침에 따른 공문을 보냈다. 노동자 10~20명만 다른 업무로 전환 배치하고 나머지는 퇴사자가 발생해 우선 배치가 될 때까지 무급 휴직 대기, 200만~300만원 취업준비금 받고 희망퇴직, 정년 도래자는 퇴직 등의 내용이다. 이 업체 노동자만 55명, 부평의 다른 한국지엠 부품사를 합치면 최소 400여명이 생산 중단 영향을 받을 것으로 추산된다. 부평공단지회는 경영 위기를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디지에프 사측 제시안에 반대하며 싸우겠다는 입장이다.

또 다른 부품사 SHCP에는 39명이 근무하고 있는데, 이곳은 과거 공장 매각에 따른 정리 해고에 대항해 노조가 투쟁을 하면서 향후 비슷한 사례가 발생할 경우 계열사로 고용 승계해야 한다는 합의서를 SHCP 사측과 썼다. 오제원 노조(SHCP 지회) 지회장은 “합의서가 있기는 하지만 올해 또 고비가 와서 긴장하고 있다”며 “SHCP는 부평2공장에만 납품하기 때문에 (생산 중단에 따라) 인원 전원이 해고될 수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노동자 관련 일러스트. 경향신문 자료사진

노동자 관련 일러스트. 경향신문 자료사진

■“부품사 노동자는 공단을 부유한다”

지난 1일 부평공단에서 만난 부품사 노동자들은 원청 물량에 따라 고용 불안정을 반복 경험하고 있다고 증언했다. 30대 노동자 A씨는 부평공단에서 일한 6년간 3번의 일자리 이동을 겪었다. 부평2공장 2차 사내하청업체의 파견업체 소속으로 불량품 검사 일을 하다가 갑자기 출근하지 말라는 통보를 받았다. 업체는 이유도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았다. 업체 규모가 작은 데다가 노조가 없는 곳이 많기 때문에 회사가 나가라고 하면 노동자들은 어쩔 도리가 없다. A씨는 그후 배선, 제품 보급 업무를 거쳐 지난해 부품사 디지에프에 들어왔는데 이번에 또 구조조정을 맞닥뜨리게 됐다.

나중에 보니 A씨가 했던 일은 어느 순간 정규직의 일로 바뀌어 있었다고 한다. 앞서 구조조정이 이뤄진 창원공장 등에서 하청업체에 아웃소싱한 일감을 다시 가져와 비정규직을 해고하는 대신 정규직 일자리를 보전하는 ‘인소싱’으로 논란이 됐다. 노동계에선 부평2공장에서도 이같은 상황이 발생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 A씨는 “이곳에서 노동자는 정직원 빼고는 사람이 아니다. 일회성 도구 같은 느낌”이라고 말했다.

50대 노동자 B씨는 4년 전 차량 단종으로 인한 정리해고에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회사로부터 가장 먼저 대상으로 지목을 받았다. B씨는 “아이를 키우다 제 나이대에 일하러 나오는 사람들이 많은데, (회사가) 제일 먼저 불러 정리해고 대상이라고 말하는 것을 보고 (차별적인) 사회구조는 변함없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노동자에겐 생계가 달린 문제인데 회사가 대안 마련을 위해 노력하는 게 아니라 바로 정리해고나 무임금 휴무로 처리하는 것에 분노한다”고 했다.

해고 당하는 일이 너무 익숙해 불안감조차 느껴지지 않을 정도라고 30대 노동자 C씨는 말했다. C씨는 “계약 해지가 됐으니 다른 데 가서 일을 알아봐야겠다는 것이 너무 당연하고 익숙하게 됐다. 실업이 일상이고, 해고가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런 맥락에서 이재영 부평공단지회 지회장은 공단 사람들을 가리켜 ‘부유하는 노동자’라고 표현했다. 이 지회장은 “한 곳에서 일하다가 물량이 없어서 해고되면 다른 곳으로 가는 식으로 공단을 떠도는 노동자가 많다”고 했다. A씨도 “인천은 지엠과 통하지 않는 공장이 거의 없을 정도로 지엠을 빼놓고 말하기가 힘들다”며 “새 일을 구해도 결국 지엠이고, 계속 그 주위를 맴돌게 돼있다”고 했다.

이 지회장은 노동자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다단계 하도급 구조가 근본적인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 지회장은 “부품사 노동자들이 한국지엠의 차량 단종만 되면 다 잘리는 원·하청 하도급 구조와 불공정 거래가 문제”라고 했다.

지난 1일 한국지엠 창원공장 앞에서 금속노조 경남지부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협의 과정에서 1차 사내하청업체 노동자들에게 해고 예고 통보를 한 사측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해고 예고 통보 모형을 발로 부수는 퍼포먼스를 하는 조합원들의 모습. 경남지부 제공

지난 1일 한국지엠 창원공장 앞에서 금속노조 경남지부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협의 과정에서 1차 사내하청업체 노동자들에게 해고 예고 통보를 한 사측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해고 예고 통보 모형을 발로 부수는 퍼포먼스를 하는 조합원들의 모습. 경남지부 제공

■불법 파견 비정규직 전환은 10%만

한국지엠에는 ‘불법 파견’ 문제도 있다. 파견법은 2년을 초과해 계속 파견노동자를 사용하는 경우 사용자가 파견노동자를 직접 고용하도록 규정한다. 법원에서는 한국지엠이 사내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해야 한다고 판결하고, 고용노동부는 직접 고용하라는 시정명령을 했다. 이에 따라 최근 한국지엠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특별 채용으로 정규직 전환하겠다며 노조(비정규직지회)와 특별협의를 하고 있다. 한국지엠이 특별 채용을 시작하겠다고 밝힌 시기가 바로 1교대 전환 시기인 오는 5월1일이다.

그러나 이 문제도 쉽지가 않다. 한국지엠은 지난달 24일 노조에 “부평공장과 창원공장에서 운영되고 있는 하도급 공정 중 ‘선별된 직접공정’에서 근무하는 하도급업체 재직 인원에 대한 특별 발탁 채용 절차를 진행한다”고 제시했다. 직접공정이 무엇인지에 대해 사측은 ‘컨베이어 벨트를 기준으로 조립·차체·도장 등 생산라인에 근무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여기에는 1차 사내하청업체 소속만 해당되는데, 이 인원은 250~260명으로, 노조가 추산한 정규직 전환 대상 2000여명의 10% 수준에 불과하다.

한국지엠은 지난달 31일 창원공장과 부평공장 1차 사내하청 업체 노동자 350여명에게 해고 예고 통지서를 보냈다. 특별 채용을 계획대로 진행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노조는 “해고 통보는 사측이 금속노조와의 교섭을 무시한 처사이며, 법원의 불법 파견 판결을 이행하지 않겠다는 항명”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노조는 1·2·3차 사내하청업체 노동자 모두 한국지엠의 생산공정 속에서 지휘·감독을 받으며 일하고 있다며 공장 내 모든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지엠 측은 부평2공장 생산 중단과 관련해 시장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전환 배치 필요성이 있어 노조와 논의중이라고 설명했다. 또 전체 고용 인원 규모는 크게 변동이 없을 것으로 예상되며, 투자와 생산량 계획 등을 보면 경영 상황이 더 좋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군산공장 사례와는 다르다는 것이다. 한국지엠은 비정규직 특별 채용에 대해서는 “금속노조와의 특별협의를 통해 특정 제조 공정의 사내하도급 직원들을 직접 채용하는 방안을 제시한 바 있다”며 “세부적인 채용조건을 확정하는대로 절차를 시행할 예정”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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