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일터로 출근하던 그 시각, 아내는 영정사진을 들고 거리에 섰다

이혜리 기자
동국제강 포항공장에서 사망한 노동자의 아내 권금희씨(가운데)가 14일 오전 서울 중구 동국제강 본사 앞에서 남편의 영정사진을 들고 동국제강의 사과를 요구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시위에는 고인의 어머니 황월순씨(오른쪽)와 큰아버지 김병완씨(왼쪽)도 함께 했다. 문재원 기자

동국제강 포항공장에서 사망한 노동자의 아내 권금희씨(가운데)가 14일 오전 서울 중구 동국제강 본사 앞에서 남편의 영정사진을 들고 동국제강의 사과를 요구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시위에는 고인의 어머니 황월순씨(오른쪽)와 큰아버지 김병완씨(왼쪽)도 함께 했다. 문재원 기자

14일 오전 8시30분, 평소 같았으면 남편이 일터로 출근하던 그 시각에 권금희씨(40)는 남편의 영정사진을 들고 서울 중구 동국제강 본사 앞에 섰다. 지난달 21일 남편이 동국제강 포항공장에서 작업 도중 사고로 사망한 일에 대해 동국제강이 원청으로서 사과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내놓으라고 요구하는 시위다.

산업재해 피해 가족들이 단식과 농성을 한 끝에 중대재해처벌법이 만들어졌고 지난 1월27일 시행됐지만, 여전히 빈발하는 노동자 사망 사고에 유족들은 다시 거리로 나왔다. 시위에는 고인의 어머니, 큰아버지 등 가족들과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이 함께했다.

권씨 남편 이동우씨(38)는 천장 크레인의 브레이크 교체 작업을 하던 도중 설비에 끼여 숨졌다. 수리하는 중간에는 설비가 가동되면 안 되지만 갑자기 설비가 작동하고 안전벨트가 몸에 감기면서 사고가 난 것이다. 이씨는 동국제강으로부터 설비 수리 업무를 도급받은 하청업체 소속이었다. 권씨는 임신 14주째로, 생전에 이씨는 아이가 생겨 좋아하면서 ‘조심해서 아이를 잘 키우자’, ‘앞으로 열심히 살자’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하루아침에 남편을 잃고 한동안 슬픔에 젖었지만, 포항에서 서울까지 올라온 이유가 있었다. 권씨는 “사람 목숨이 우선이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게 억울하다”고 했다.

이씨 사망 이후 권씨에게 들려온 것은 이씨가 잘못했을 수 있다는 말들이었다. 사업장에서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안전관리를 해야할 책임은 회사에 있지만 흔히 회사는 노동자 실수로 몰아간다. 권씨의 말이다. “어떻게 (일하다) 사람이 죽었는데 그 사람이 잘못해서 죽은 것으로 넘어가려고 하는 것인지 이해가 안 됐어요. 하청업체 소속이지만 동국제강 공장에서 발생한 사고인데 원청에서는 나몰라라 했고요. 너무 억울하고, 이대로 가면 억울한 사람들이 계속 나오겠다 싶었어요.” 권씨는 나중에 사고 현장에 가보고 나서야 이씨가 얼마나 위험한 작업을 했는지 알았다고 했다. 노동자들은 수 십미터 높이의 크레인에 올라가 수리를 해야 했고, 바닥엔 고철이 깔려있었다.

유족은 동국제강 경영책임자인 장세욱 대표이사가 공개 사과하고 이번 사고의 구조적 원인을 조사해 재발 방지 대책을 수립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고용노동부와 검찰을 향해서는 법 위반 사항을 철저히 수사하고 엄정 처벌하라고 했다. 시민단체들은 동국제강이 안전관리자와 신호수 배치, 크레인의 전원 차단 여부 확인 등 도급인으로서의 안전조치에 미흡했다고 지적했다. 하청업체 산재 사망 사고에 대해 원청 책임을 강화하도록 산업안전보건법이 개정됐고, 중대재해법은 원청의 경영책임자까지 처벌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기업들은 중대재해법 때문에 힘들다고 호소한다. 이에 부응해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규제 완화를 시사했다. 권씨는 “행복했던 한 가정은 파괴되고 나라만 잘 살면 되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만약 안전관리자가 한 명이라도 옆에서 저희 신랑을 지켜봤다면 사망까지는 안 갔을 거예요. 사업주 입장에서, 나라의 이익을 위해 (규제를) 바꾼다는 것은 노동자에게는 ‘죽어도 괜찮다’는 말 밖엔 안 되는 것 아닌가요? 더 이상 노동자 사망이 없게 법을 강화해주세요. 내 신랑, 아들에게 생길 수 있는 일이니까 모두가 목소리를 내주면 좋겠어요. 돈보다 사람 목숨이 더 중요하잖아요.” 권씨는 동국제강이 잘못을 인정할 때까지 시위를 계속할 계획이다.

동국제강 측은 “사업장에서 사고가 발생해 유족분들에게 굉장히 송구하고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며 “수사를 받고 있기 때문에 개별적인 사안에 대해 설명하지 못하는 점을 양해해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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