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2월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숨진 채 발견된 캄보디아 출신 이주노동자 속헹씨에 대해 근로복지공단이 산재를 인정했다. 속헹씨 사망은 이주노동자의 열악한 주거환경이 사회문제로 불거지는 데 단초가 된 사건이다.
2일 경향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근로복지공단 서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최근 심의 끝에 속헹씨가 업무상 질병에 의해 사망했다고 인정했다. 속헹씨 유족은 지난해 12월 고인이 산재로 사망했다며 유족급여와 장의비 보상을 청구했다. 질병판정위원회 판단에 따라 근로복지공단 의정부지사는 캄보디아에 있는 유족의 해외계좌 개설 등 협조를 받아 조만간 유족급여와 장의비를 지급할 예정이다.
산재로 인정되려면 노동자 사망과 업무 사이에 인과관계가 존재해야 한다. 질병판정위원회는 속헹씨가 간경화를 앓고 있어 적극적인 치료가 필요했지만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치료가 제대로 되지 못했다고 판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주노동자는 아프더라도 언어·비용 등 문제로 국내 의료기관을 제대로 이용하기 어려운데, 위원회는 이같은 상황이 속헹씨 질병을 악화시켰다는 점을 감안한 것이다. 속헹씨는 한국 정부의 인력 수급 필요에 의해 이주노동자를 국내에 들여오는 고용허가제를 통해 한국에서 일했다.
앞서 속헹씨의 부검 결과 사인은 간경화로 인한 식도정맥류 파열로 나타났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등 법률가단체는 지난 1월 공단에 낸 의견서에서 “사용자가 기숙사 부실관리 등 근로자배려의무를 위반한 탓에 속헹씨는 맹추위를 견뎌야 하는 환경에 놓여졌다”며 “이 때문에 간질환이 자연적인 진행 속도 이상으로 급격하게 악화돼 사망에 이르렀다”고 주장했다.
속헹씨 사건 이후 시민사회단체들이 이주노동자의 열악한 주거환경을 문제제기했다. 이후 정부는 주거개선 대책을 발표했지만, 이주노동자의 돌연사 규모나 구조적 원인은 여전히 추적되지 못하고 있다. 고용허가제로 한국에 들어왔는데도 본국에 있는 유족과 연락이 닿지 않는 등의 이유로 사망 원인을 규명하고 책임 소재를 따지는 일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주노동자 기숙사 산재사망 대책위원회’의 최정규 변호사는 “이주노동자가 갑자기 사망했다면 과로사 등 산재라는 의심이 들지만 산재 신청을 하는 구조가 돼있지 않다는 점에서 속헹씨에 대한 산재 인정은 큰 의미가 있다”며 “이번 사례가 이주노동자 죽음의 원인 규명이 제대로 될 수 있는 시작점이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