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모든 사람’ 보호한다던 윤석열 정부, 화물연대엔 모르쇠…결국은 ‘특고’ 문제

이혜리 기자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이하 화물연대) 총파업 나흘째인 지난 10일 오후 광주 서구 기아차 생산 공장 앞에서 화물연대 조합원들이 총파업 승리 결의대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이하 화물연대) 총파업 나흘째인 지난 10일 오후 광주 서구 기아차 생산 공장 앞에서 화물연대 조합원들이 총파업 승리 결의대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이하 화물연대)가 안전운임 일몰제 폐지와 전차종·전품목 확대 적용을 요구하며 총파업을 벌인 지 12일로 6일째에 접어들었다. 화물연대와 국토교통부는 이날까지 네 차례에 걸쳐 협의를 했지만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총파업이 장기화되는 가운데 사태 본질은 노동법 사각지대에 있는 특수고용노동자에 대한 보호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화물연대와 국토부에 따르면, 양쪽은 전날 10시간 넘게 3차 교섭을 했지만 이견만 확인하고 별다른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화물연대는 안전운임제 일몰 시한이 다가오는 만큼 국토부가 명확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국토부는 입장 표명은 하지 않은 채 파업 철회를 요구하고 향후 대화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이날도 4차 교섭이 진행됐지만 합의 가능성은 높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태 본질은 화물연대 조합원 상당수가 특수고용노동자라는 데 있다. 헌법 제33조 1항은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해 자주적인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고 규정한다. 사용자와의 고용관계를 기반으로 하는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에게는 이 권리가 폭넓게 보장된다. 하지만 노동자와 유사하게 노무를 제공하면서도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에 해당되지 않는 특수고용노동자에게는 권리가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다. 안전운임제도 이 같은 지위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근로기준법상 노동자가 아니더라도 장시간 노동을 규제하고 적정한 소득을 보장해 안전사고를 막는 게 안전운임제 취지다.

하지만 정부는 ‘화물차주는 노동자가 아니라 자영업자’라면서 화물연대를 노동조합으로 인정하지 않고 ‘불법 집단행동에 엄정하게 대처하겠다’는 강경 대응 입장만 반복하고 있다. 그러면서 정부는 화물연대의 교섭 상대방이 아니고, 파업을 파업이 아니라 ‘집단운송거부’로 규정하기도 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9일 화물연대 파업에 대해 ‘노사문제는 노사 자율에 맡겨야 한다’고 했지만, 정작 특수고용노동자라는 화물노동자의 지위 속에서 화주단체들은 교섭 주체로 나서지 않는 실정이다. 화주단체가 화물연대와 교섭할 경우 노동법상 사용자 책임을 지는 부담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안전운임제가 교섭 쟁점으로 부각됐고 정부와 화물연대는 ‘정례협의회’를 통해 사실상 교섭을 해오기도 했다.

특수고용노동자의 ‘교섭 상대방 찾기’ 문제는 반복되고 있다. 특수고용노동자인 택배기사들로 구성된 택배노조는 노동조합법상 노동조합 지위를 정식으로 획득했는데도 불구하고 택배사와는 교섭을 하지 못하고 있다. 박은정 인제대 공공인재학부 교수는 “화물연대는 그동안 노조로서의 지위 획득이나 노사교섭보다는 노정교섭에 비중을 두고 활동해왔고 정부도 적극적으로 임해온 상황에서 안전운임제와 같은 성과를 거두며 유효하게 그 체제가 작동해왔다”며 “이번에 정부가 다른 노선을 취하면서 화물연대 방향성이 암초를 만났는데, 다시 말하면 정부 태도에 (문제 해결이) 달려있다”고 했다.

화물연대가 총파업에 돌입한 지난 8일 경기 이천시 하이트진로 이천공장 앞에 화물연대 소속 화물차들이 주차돼 있다. 한수빈 기자

화물연대가 총파업에 돌입한 지난 8일 경기 이천시 하이트진로 이천공장 앞에 화물연대 소속 화물차들이 주차돼 있다. 한수빈 기자

노동계에서는 정부 대응이 지난해 한국이 추가 비준한 국제노동기구(ILO) 협약 87호(결사의 자유와 단결권 보호), 98호(단결권과 단체교섭권 원칙) 위반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ILO 결사의 자유 위원회는 화물차주를 포함해 모든 노동자가 자신들의 권익 증진·방어를 위해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결사의 자유를 향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입장인데, 정부 태도가 이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민주노총은 ILO가 개입해달라는 서한을 ILO 사무국에 보냈다고 밝혔다.

민주노총 법률원 노동자권리연구소의 윤애림 박사는 “국내에서 화물연대 조합원들이 노동3권의 주체가 될 수 없다거나, 노동조합법상 근로자가 아니라고 법적 판단이 내려진 적이 없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화물연대가 노동3권의 주체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전제하고 대응하고 있는데 이는 ILO 결사의 자유 원칙에 위배된다고 보인다”고 했다. 노동계는 노동조합법 2조를 개정해 근로자 정의를 확대하는 방법으로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기본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정부·여당이 대선 때 기존 노동법 체계에서 벗어난 사각지대 노동자들을 보호하는 기반을 만들겠다고 공언한 것과 이번 총파업 대응이 상반된다는 비판도 있다. 국민의힘은 대선 공약에서 “다양한 고용형태를 포괄한 모든 노동자의 기본적 권리 보장을 법제화하겠다”며 ‘일하는 모든 사람의 보호를 위한 기본법’ 제정을 밝혔다. 국정과제에는 “특고·플랫폼의 산재보험 사각지대 해소”를 명시했다. 이 같은 취지에 따라 지난달 29일 특수고용노동자의 산재보험 전속성 요건을 폐지하는 내용의 산재보험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배달노동자·대리운전기사 등 플랫폼 노동 당사자들의 모임인 플랫폼노동희망찾기는 성명을 내고 “윤석열 정부는 1호 법안으로 산재보험법 개정을 통해 플랫폼노동자 요구를 수렴했다고 했으나, 정작 가장 중요한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기본권을 부정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며 “전속성 기준 폐지의 의미가 생명·안전을 중시하는 것이라 해놓고, 화물노동자의 생명·안전의 핵심 버팀목인 안전운임제 일몰 폐지를 방치한다는 것은 이율배반”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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