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계 하투 주요 쟁점 된 ‘저성장·고물가’

유선희 기자
최저임금위원회의 노동자위원들이 지난 21일 오후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리는 5차 전원회의에 앞서 노동계의 내년도 최저임금 최초 요구안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최저임금위원회의 노동자위원들이 지난 21일 오후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리는 5차 전원회의에 앞서 노동계의 내년도 최저임금 최초 요구안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면서 최저임금 논의와 임금·단체협약 협상에서도 ‘저성장·고물가’가 최대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노동계는 물가가 오르면 실질임금이 줄고 특히 저소득 가구일수록 타격이 크다며 임금이 가구 생계비로 기능할 수 있도록 물가 상승분이 충분히 반영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경영계는 경제 불확실성을 이유로 난색을 표하고 있다. 사측과의 임단협 교섭이 결렬된 금속노조는 다음달 1일 쟁의 조정신청을 하고 찬반투표를 진행, 파업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정부가 전망한 올해 연간 소비자물가상승률은 4.7%, 경제성장률은 2.6%다. 물가상승률은 당초 2.2%에서 큰 폭으로 올렸고, 경제성장률은 3.1%에서 내린 것이다. 코로나19 국면에서 시중에 풀린 돈이 워낙 많은데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식량가격 급등 등으로 물가 상승세는 장기화될 것이란 전망이 이어지고 있다.

당장 내년도 최저임금 심의를 위한 전원회의에서 팽팽한 의견대립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21일 최저임금위원회 5차 전원회의에서 노동계는 “장바구니 물가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어 저임금 노동자들의 삶이 벼랑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최저임금 제도의 취지와 목적에 맞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경영계는 “최근 5년간 과도한 인상으로 중소기업, 소상공인들은 몸을 가눌 수 없다”고 맞섰다.

최저임금은 노동자 생계비와 유사 노동자 임금, 노동생산성 및 소득분배율에 맞춰 결정된다. 최저임금 인상률에는 물가상승률과 경제성장률, 취업자증가율이 반영된다. 지난해 확정된 올해 최저임금 인상률 5.1%도 물가상승률(1.8%)과 경제성장률(4%)이 더해지고, 취업자증가율(0.7%)이 제외된 값이다. 이렇게 책정된 최저임금은 9160원이었다. 노동계는 내년도 최저임금으로 시간당 1만890원을 제시했다. 인상률은 18.9%다.

한상진 민주노총 대변인은 “물가가 오르는 상황에서 임금으로써 가치를 가지려면 생활이 가능해야 하고 물가를 충실히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올해 노동계는 ‘비혼 단신 근로자’의 생계비가 아닌 ‘가구 생계비’가 고려돼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대다수 최저임금 노동자가 1인이 아닌 평균 2~3인의 가구 생계를 책임지고 있기 때문이다. 경영계는 아직 최저임금 제시안을 제출하지 않았는데, 제출이 되면 더욱 팽팽한 대립이 이어질 전망이다.

임·단협도 맞물려 있다. 금속노조는 일찍이 사측과 교섭을 진행했지만 결렬됐다. 윤장혁 금속노조 위원장은 전날 중앙교섭 결렬을 선언하면서 “사용자협의회가 10차 교섭까지 금속산업 최저임금을 제시하지 않았다”며 “코로나19 시기 시작한 위기가 계속되고 물가가 폭등하는 등 경제상황이 불안정하다. 회사 측도 쉽지 않겠지만 경제 불안정기에 고통 받는 사람들은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라고 지적했다. 금속노조는 다음달 1일 쟁의 조정신청을 하고, 4일부터 이틀간 찬반투표를 진행한다. 쟁의투표에서 찬성표가 과반이 넘으면 파업 수순을 밟는데, 노조 측은 파업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건설노조는 현재 사측과 임금 교섭 중이다. 올해 물가상승분을 반영해 임금 인상안 약 8%를 요구했다고 한다. 그러나 사측이 자재값 인상과 인건비 상승 등을 이유로 부정적인 입장이어서 향후 교섭이 순탄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경영계는 “고물가, 고환율, 고금리 등 3중고 속에서 생산, 투자, 소비가 감소하는 트리플 악재로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다. 노동계의 주장은 터무니 없다”며 “노동계는 상생을 위해서라도 경제상황과 기업의 사정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경제침체 속 물가 상승(스태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는 만큼 정부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최영기 한림대 객원교수는 “인플레이션 심리 확산으로 경제가 악순환에 빠지지 않으려면 노·사·정 간 신뢰구축이 중요하다”며 “정부는 실질임금에 반영되지 못하는 감소분에 대해 소득세를 감면해주는 방안 등을 고민해 볼 수 있고, 임·단협의 경우 정부가 직접 개입을 못하더라도 인플레가 촉발되지 않도록 노·사 양측이 협력해달라는 메시지를 낼 수 있다”고 조언했다. 정흥준 서울과기대 교수는 “최저임금을 적정수준으로 올리지 않으면 결국 내수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특히 최저임금 대상자가 아니면서 노조에 가입되지 않은 중소기업 노동자들의 실질임금 보전을 위한 별도 장치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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