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kg 장비 메고 전봇대 올라 고압 전선 만지던 노동자 12명, 집단 산재 신청

이혜리 기자

평균 56.6세·27년 경력···‘근골격계 질환’ 산재 신청

전기 노동자 정관모씨가 12일 서울 중구 근로복지공단 서울지역본부 앞에서 열린 ‘집단 산재 기자회견’에서 작업 중 다친 어깨를 취재진에 보여주고 있다. 성동훈 기자

전기 노동자 정관모씨가 12일 서울 중구 근로복지공단 서울지역본부 앞에서 열린 ‘집단 산재 기자회견’에서 작업 중 다친 어깨를 취재진에 보여주고 있다. 성동훈 기자

높은 전봇대를 오르내리며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고압 전선을 정비하는 전기 노동자들이 있다. 전봇대 맨 위에 고압 전선을 설치하려면 안전보호구나 로프 등 20~30㎏에 달하는 장비와 자재를 매고 전봇대에 발판 볼트를 1m 간격으로 채우면서 올라가야 한다. 허리, 어깨, 팔, 다리, 무릎 등 온 몸에 힘을 줄 수 밖에 없다. 전선을 당기거나 무거운 자재를 들어올려 설치할 때도 반복적으로 센 힘을 주게 된다. 주거지와 상업지구가 많아 전봇대와 전선이 복잡한 서울에서는 전기 노동자들의 어려움이 가중된다.

건설노조는 12일 서울 중구 근로복지공단 서울지역본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 지역에서 일하는 전기 노동자 12명이 집단으로 산재 신청을 한다고 밝혔다.

이번에 산재를 신청하는 이들은 길게는 1988년부터 35년, 짧게는 2006년부터 15년간 전기 업무를 한 노동자들이다. 평균 나이 56.6세, 평균 경력은 27년이다. 제각각 회전근개 파열, 유착성 피막염, 추간판 탈출증, 척추전방전위증 등 근골격계 질환을 앓고 있다. 10명은 회전근개 파열 복원술, 인공 디스크 치환술과 같은 시술이나 수술을 받은 이력이 있다.

이들이 이 질환으로 산재 신청을 하는 것은 처음이다. 전기 노동자가 전봇대에서 일을 하다 추락하거나 감전되는 등 ‘사고’가 발생한 경우에는 산재 신청과 승인이 이뤄지곤 하지만, 오랫동안 일을 하는 과정에서 몸에 서서히 영향을 주는 ‘근골격계 질환’이 발생한 경우 산재 신청을 하고 승인된 사례는 드물다.

전기 노동자는 높은 전봇대에 발판 볼트를 설치하면서 올라가고(왼쪽 사진), 높은 자재를 들어올려야 한다. 건설노조 제공

전기 노동자는 높은 전봇대에 발판 볼트를 설치하면서 올라가고(왼쪽 사진), 높은 자재를 들어올려야 한다. 건설노조 제공

전기 노동자가 불안정한 지지 상태에서 몸을 앞으로 숙인 자세로 작업을 하고 있다. 건설노조 제공

전기 노동자가 불안정한 지지 상태에서 몸을 앞으로 숙인 자세로 작업을 하고 있다. 건설노조 제공

건설노조는 “한국전력에서 2년 주기로 업무를 낙찰받는 업체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하청 노동자이기 때문에 산재보험은 꿈도 못 꿨다”며 “업체에 산재보험 이야기만 꺼내도 고용불안이 엄습해오는 게 현실”이라고 했다.

전기 노동자들이 전봇대에 설치하기 위해 매거나 들어올리는 자재들은 10㎏은 기본이고 40㎏까지 나가기도 한다. 땅으로 쳐진 전선을 양쪽 전봇대에 팽팽하게 설치할 때는 불안정한 지지대를 사용해가며 허리를 굽히거나 비튼 자세로 반복 작업을 해야 한다.

이번에 산재 신청을 정관모씨는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해 “2년 전부터 통증을 많이 느꼈고 근골격계 파열이라는 진단을 받았다”며 “두 달 전 수술을 했지만 업체에서는 ‘산재로 올릴 사안은 아니다’, ‘산재로 올라가면 다음 계약 때 불이익을 본다’는 식으로 차일피일 산재 신청을 미뤘다”고 말했다. 정씨는 “전기 노동자들은 많은 고통을 받으며 작업을 하지만 개인적으로 시술이나 수술을 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번에 산재로 인정된다면 노동자 권리를 찾는 것”이라고 했다.

건설노조는 “전기 노동자들은 2만2900볼트의 고압을 오가며 ‘자칫 죽을 수도 있다’는 공포감 속에 초긴장을 하며 일하고 있다”며 “전기 노동자의 근골격계 질환을 산재로 인정하고 한전은 작업환경 개선에 나서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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