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이름 넣기까지 6년”…하청노동자가 끌어낸 ‘노조할 권리’읽음

조해람 기자

‘원청이 실질적 사용자’ 판례 수두룩해도 현장에선 안 통해

하청노조, 요구안에 임금 인상 외 노조 전임자 인정 등 포함

전문가 “직접 계약 안 했어도 원청이 사용자…법에 명시를”

<b>희망버스 반기는 노조원들</b>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들을 응원하기 위해 희망버스에 탑승한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왼쪽)과 금속노조 조합원들이 지난 23일 경남 거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앞에서 열린 ‘희망버스’ 행사 도중 인사를 나누고 있다. 문재원 기자

희망버스 반기는 노조원들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들을 응원하기 위해 희망버스에 탑승한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왼쪽)과 금속노조 조합원들이 지난 23일 경남 거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앞에서 열린 ‘희망버스’ 행사 도중 인사를 나누고 있다. 문재원 기자

51일간 계속된 대우조선해양 파업은 하청노동자들의 열악한 처우와 함께 노동권 보장과 관련한 고질적 문제인 ‘노동조합 인정’ 문제도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전문가들은 하청노동자들의 처우를 실제로 결정하는 원청을 노조법상 사용자이자 교섭 대상으로 보도록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24일 노동계 등의 설명을 종합하면, 이번에 파업한 대우조선해양 하청노조(민주노총 전국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는 2017년 2월 출범했다. 조선업체가 몰린 경남 거제·통영·고성을 중심으로 했다. 노조는 이후 원청인 대우조선해양과 협력업체 측에 꾸준히 교섭을 요구해왔다.

그러나 대우조선해양과의 교섭은 쉽지 않았다. 하청노동자들이 근로계약서상 원청과 계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청노동자의 처우는 사실상 자신들과 연대하는 정규직 노조의 교섭에 달려 있었다.

원청, 하청회사는 하청노조의 노조활동을 방해하기도 했다. 2018년 3월 대우조선해양은 하청노조와 연대하며 관련 유인물을 배포한 정규직노조 조합원 김정열씨에게 정직 1개월 징계를 내렸다. 이번 파업에서도 사측은 회사에 우호적인 노동자들을 동원해 ‘맞불 집회’에 나섰다. 김형수 대우조선해양 하청노조 지회장은 파업을 마무리한 지난 22일 해단식에서 “지난해 노조 조끼를 입고 교섭장에 들어갔다는 이유로 회사는 교섭을 거부했다. 한발 물러나면서 이를 꽉 물고 꼭 합의서에 노동자들 이름을 새기겠다고 다짐했다”며 “오늘 드디어 초라하고 걸레 같은 합의서지만 노조 이름을 넣을 수 있게 됐다. 금속노조 이름 하나 합의서에 넣기 위해 6년을 싸웠다”고 했다.

조선업 불황과 저임금으로 인한 생활고가 노조 힘빼기에 ‘악용’된 정황도 드러났다. 지난 4월 도장업체들은 하청노동자들의 재계약 시기에 당시 임금보다 낮은 시급을 제안하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재계약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노조는 당시 도장업체들이 하청노동자들과 직접 계약 대신 ‘아웃소싱’ 소속으로 돌리려 했다고 본다. 4대 보험 등 책임을 피하고 노동자들의 결사·교섭을 막으려 했다는 것이다.

이번 파업에서도 원청은 파업 한 달이 넘어갈 때까지 하청노조와의 대화에 응하지 않았다. 이번 요구안에 임금 인상·고용승계와 더불어 노조 전임자 인정, 노조 사무실 설치 등이 들어간 것도 노조활동을 인정받기 위해서였다. 원청이 책임 있는 자세를 보였다면 파업이 이렇게 길어지지도, 제1독 점거로 인한 피해액이 이렇게 커지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원청이 하청노동자의 실질적인 ‘사용자’이자 교섭 상대라는 판례와 결정은 수두룩하다. 2010년 대법원은 현대중공업을 상대로 중앙노동위원회가 제기한 부당노동행위 구제 재심판정 취소 소송에서 원청을 ‘사용자’라고 봤다. 중앙노동위원회는 지난해 6월 택배노조 단체교섭 요구를 거부한 CJ대한통운에 대해 “노조법상 사용자에 해당한다”며 부당노동행위로 판정했다. 국제노동기구(ILO)도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원청과 단체교섭을 할 수 있도록 정부가 역할을 해야 하며, 원청과의 단체교섭 성사를 위한 목적의 사내하청 노동자의 파업은 불법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한국 정부에 수차례 권고했다.

노동·법률 학계 전문가들은 지난 23일 보도자료를 내고 “원청 사업주가 권한과 이윤은 누리면서도 사용자로서 책임은 힘도 없는 하청업체에 떠넘겨버리기 때문에 이와 같은 문제들이 계속 반복되고 있다”고 했다. 민주주의법학연구회 윤애림 박사는 “하청노동자들이 원청과 교섭할 수 있도록 법이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이 10여년 전부터 제기돼 왔지만 정치권은 나서지 않았다”며 “근로계약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원청을 사용자로 보도록 법에 명시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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