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물연대 파업에서도 노동자 발목 잡는 사측의 손배소

유선희 기자
민주노총 화물연대 대전지역본부 소속 조합원들이 지난 24일 서울 강남구 하이트진로 빌딩 앞에서 집단해고 및 손해·가압류 등을 규탄하고 15년째 동결인 운임비 인상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민주노총 화물연대 대전지역본부 소속 조합원들이 지난 24일 서울 강남구 하이트진로 빌딩 앞에서 집단해고 및 손해·가압류 등을 규탄하고 15년째 동결인 운임비 인상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경기 이천공장에서 하이트진로 화물기사로 25년 동안 근무한 이진수씨(53)는 지난 6월17일 하이트진로 측으로부터 ‘5200여만원’에 달하는 손해배상 소장을 받았다. 화물연대 파업에 참여한 이후 날아든 소장이었다. 이씨를 포함해 11명이 연대책임을 지고 내야 할 총액은 5억7800여만원이다. 이와 함께 하이트진로 측은 업무방해금지가처분 신청서도 냈다.

화물연대 대전지역본부 하이트진로 화물기사들은 유가폭등에 따른 운송료 인상을 요구하기 위해 지난 3월 노동조합을 결성했다. 먼저 부분 파업을 시작했고 지난 6월2일부터 전면 파업에 나섰다. 같은 달 7일 시작된 화물연대 총파업보다 닷새 먼저 시작해 지금도 진행 중이다. 이들은 “15년간 그대로인 밑바닥 운임을 개선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함께 연대하는 이천·청주공장 하이트진로 화물기사들은 동종업계 수준과 비슷해지도록 운송료 30% 인상, 공병운임 인상 등을 요구하는 중이다.

지난 3월 부분 파업에 참여한 화물기사들은 사측이 파업 기사 대신 동원한 운송차량이 과적 등 불법을 저질렀다며 이를 막아섰다. 하이트진로는 이로 인해 막대한 피해가 발생했다며 손배소를 제기했다. 하이트진로는 전면 파업에 대한 손배소도 예고했다.

이씨는 25일 기자와 통화에서 “반 청춘을 바쳐 회사를 위해 일했는데 평생 만져보지도 못할 손배소 소장을 받아드니 기가 막히고 두렵기도 하다”며 “몇십년동안 최저 운임을 받으며 일했는데, 이를 개선해달라는 요구가 이렇게 큰 죄냐”고 말했다.

닭과 오리 등 가금류 가공 공장인 전북 부안의 참프레 사업장에서는 지난 22일부터 김명섭 화물연대 전북지역본부 본부장과 유기택 참프레지회장 등 2명이 30m 높이의 사일로(저장탑)에서 고공농성을 하고 있다. 운송료 15% 인상 등을 두고 사측과 교섭을 진행하다 사측이 손배소 제기를 예고하자 바로 고공농성을 시작했다. 참프레는 노동자들 파업으로 100억원의 피해를 봤다고 주장하고 있다.

전국에서 대우조선해양의 하청 노동자를 응원하기 위한 ‘희망버스’가 도착한 지난 23일 경남 거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앞에서 참석자들과 금속노조 조합원들이 본대회를 열고 있다. 문재원 기자

전국에서 대우조선해양의 하청 노동자를 응원하기 위한 ‘희망버스’가 도착한 지난 23일 경남 거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앞에서 참석자들과 금속노조 조합원들이 본대회를 열고 있다. 문재원 기자

지난달 화물연대 총파업이 마무리된 뒤에도 개별 사업장에서 파업을 이어가고 있는 노동자들은 “손배소가 노동자들의 쟁의행위를 압박하는 수단이 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지난 22일 임금협상 타결로 끝난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들의 파업에서도 가장 큰 쟁점은 사측의 ‘손배소 제기’ 문제였다. 사측과 물리적 충돌을 겪으면서 노동자들이 독(dock·선박건조공간) 점거에 나선것이 ‘불법’으로 규정됐고, 이것이 조합원들의 손배소 제기 문제로 이어졌기 때문이었다. 결국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들도 ‘손배소 등 민·형사상 면책은 추후논의한다’는 선에서 협상을 끝낼 수 밖에 없었다.

조경배 순천향대 법학과 교수는 “마땅한 쟁의행위를 형벌로 다루는 것이 문제”라면서 “파업 자체에 대해서는 손배소를 제기할 수는 없겠지만, 직접적인 손해에 대해 문제를 삼는 부분은 이번 기회에 정립이 필요하다”고 했다.

금속노조 법률원장 김유정 변호사는 “화물연대 특수고용노동자와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들의 상황은 다르지만, 실제 사용자나 원청이 뒤로 빠지면서 ‘불법’ 프레임이 덧씌워지는 것은 동일하다”면서 “정부가 앞장서 민형사상 책임을 독려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회사가 노조 파업에 대해 손배소를 계속 들고 나온다면 결국 노조활동 위축 방향으로 갈 가능성이 자명하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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