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기업 산재, 질병 사망이 사고사의 3배 달해

유선희 기자

경향신문·우원식 의원실, 304곳 전수조사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에서 두번째)이 지난 5월20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맨 오른쪽)과 함께 경기 평택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둘러보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에서 두번째)이 지난 5월20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맨 오른쪽)과 함께 경기 평택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둘러보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5년간 1581건 산재로 신청
열악한 노동환경 개선 시급

A씨는 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던 2002년 7월 삼성디스플레이 천안공장에서 취업전제형 현장실습으로 일을 시작했다. 주로 LCD 공장의 컬러필터 공정(LCD에서 빨강, 파랑, 녹색 빛을 만들 수 있게 하는 공정)에서 일했다. 벤젠이나 포름알데히드 등 각종 화학물질에 노출될 위험이 있었다. 교대근무로 일하던 어느 날 극심한 피로감과 생리불순을 겪었고 결국 2008년 2월 퇴사했다. A씨는 2010년 1월 만성골수성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A씨는 2017년 산재 승인 처리됐다.

B씨는 1995년 12월 SK하이닉스 청주사업장에 입사해 약 10년간 장비엔지니어로 근무했다. 35세가 된 2005년 10월 악성림프종이 발견됐고 2006년 8월 자가이식 치료를 받았지만 5년 만에 재발했다.

B씨는 현재 항암치료를 병행하며 병마와 싸우고 있다. B씨는 2017년 산재 승인 처리됐다.

반도체 관련 사업장에서 A씨, B씨와 같은 사례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C씨는 A씨처럼 고등학교 3학년 때 삼성전자 온양사업장에서 근무를 시작해 일하다 퇴사 3년2개월 만에 ‘상세불명의 갑상선 장애’ 및 ‘비호지킨림프종’ 진단을 받았다. B씨와 같은 사업장에서 일한 D씨는 반도체 칩 테스트 공정 중 칩 수거분석 업무를 담당하다 뇌종양 판정을 받았다.

■ 반도체 사망 노동자 70% 질병 재해

지난 5월 출범한 윤석열 정부는 ‘반도체 초강대국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정부 출범 한 달도 안 된 지난 6월7일 “국가 안보 자산이자 산업의 핵심”으로 첨단 산업 인재 양성을 위한 특단의 대책을 교육부를 비롯한 전 부처에 주문했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반도체특별법’을 중대처리 10대 법안으로 밀고 있다.

그러나 정부와 여당은 반도체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노동환경에 대해선 말하지 않는다. ‘최첨단’ 사업장이라는 반도체 공장에서 적지 않은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고통받고 있지만 안전 문제는 아직 뒷전에 있다. 노동시간 제한까지 풀어가며 실적 올리기에 급급해한다.

경향신문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실과 함께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소속 304개 기업에서 최근 5년간(2017년~2022년 8월) 발생한 산업재해를 모두 살펴봤다. 근로복지공단을 통해 폐업으로 추정되는 1개사를 제외한 303개사의 산재 처리내역(승인+불승인)을 분석했다. 반도체 사업장은 결코 안전하지 않았다.

5년여 동안 304개 기업 중 132곳에서 1581건의 산재가 신청돼 처리까지 마쳤다. 유형별로 살펴보면 사고(재해)가 1076건(68.1%)으로 가장 많았고 이어 질병 311건(19.7%), 출퇴근 194건(12.3%) 순이었다.

암·희귀병 70%가 청년…노동자 건강과 맞바꾼 반도체 성장

2017년 175건이던 산재 신청 건수
2021년에는 356건…5년 새 두 배

반도체 기업 산재, 질병 사망이 사고사의 3배 달해

전체 산재 처리는 사고가 훨씬 많았지만 사망자 수로만 보면 질병이 사고를 앞질렀다. 사망자 중 질병이 70.1%를 차지했고 사고는 23.4%에 불과했다. 출퇴근은 6.5%였다. 같은 기간 반도체를 포함한 모든 업종의 산재 사망자를 보면 사고가 42.2%, 질병이 57.8%를 차지했다.

산재 피해자들을 연령별로 보면 청년층의 비율이 컸다. ‘2030’으로 불리는 19~39세가 931명, 40·50대(40~59세) 577명, 60·70대(60~80세) 73명 등이었다.

업종별로 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포함된 소자업체에서 산재 처리가 493건(31.2%)으로 가장 많았다. 뒤이어 재료업체 416건(26.3%), 장비업체 195건(12.3%), 설비업체 163건(10.3%), 설계업체 155건(9.8%), 부분품업체 81건(5.1%), 테스트·패키징업체 61건(3.9%) 등으로 나타났다.

산재가 발생하고 몇년이 지나 승인 여부가 결정되는 경우가 대다수이긴 하지만 추이를 살펴보기 위해 연도별로도 처리 현황을 정리했다. 2017년 175건이던 반도체 사업장 산재 처리는 2018년 233건, 2019년 279건, 2020년 279건, 2021년 356건 등으로 증가 추세를 보였다.

산업 전체를 보기 위해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의 ‘전자관 또는 반도체 소자제조업 산업재해 현황’ 자료를 통해서도 확인해보니 추이는 비슷했다. 공단의 현황자료(출퇴근 제외)에 따르면 2017년 355건, 2018년 389건, 2019년 433건, 2020년 414건, 2021년 487건의 산재가 집계됐다. 이 중 질병 재해자는 전체 산재 중 20%를 차지했다.

2030세대가 피해자의 58.9% 달해
백혈병 유병률도 평균치보다 높아
20대 초반 여성 생산직은 ‘4.24배’

■ 암·희귀질환 10명 중 7명은 ‘2030’

경향신문은 각종 화학물질에 노출돼 일하는 반도체 사업장의 환경을 고려해 질병 재해 311건을 더 상세하게 분류해봤다. 311건 중 근골격계 질환이 106건(34.1%)으로 가장 많았고, 직업성 암·희귀질환 질병이 80건(25.7%)으로 나타났다. 이어 우울장애 등 정신질환(자살 포함)이 49건(15.8%), 뇌출혈과 심근경색 등이 43건(13.8%)이었다. 기계소음으로 인한 난청 19건(6.1%), 눈 관련 질환 3건(1.0%) 등도 있었다.

직업성 암·희귀질환 질병을 다시 분류해보면 직업성 암이 62건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희귀질환 14건, 피부질환 3건, 기타 1건 등이었다. 직업성 암은 백혈병이 18건으로 최다였고 유방암 16건, 폐암 7건, 난소암 6건, 뇌종양 5건, 혈액암(악성림프종 등) 3건 등으로 나타났다. 갑상선암, 융모암, 자궁경부암, 외이도암, 악성중피종 등도 각 1건씩 있었다. 희귀질환으로는 자가면역질환으로 피부발진이나 관절염 등 증상이 나타나는 전신홍반성루프스가 7건이었고, 갑상선기능저하증과 류마티스관절염, 파킨슨병 등이 각 1건씩 나타났다.

직업성 암·희귀질환 질병 재해자 10명 중 7명은 ‘2030’ 청년이었다. 고등학교 때 현장실습으로 취업해 일하다 이른 나이에 암과 희귀질환 진단을 받는 경우도 있었다. 30대가 절반인 40명(50%)이었고 20대도 17명(21.3%)이나 됐다. 40대는 13명(16.3%), 50대는 7명(8.8%), 60대는 2명(2.5%), 70대는 1명(1.3%) 등이었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이 2019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소속 반도체 소자제조업 6개사 9개 사업장 전·현직 노동자 20만1057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역학조사를 보면, 반도체 사업장 청년 노동자들의 백혈병 유병률이 전체 노동자 평균보다 높았다. 당시 조사에서 반도체 여성 생산직 직원들의 백혈병 유병률은 전체 노동자 평균의 1.59배, 20대 초반(20~24세) 여성으로 좁히면 2.74배에 달했다. 유방암의 경우 반도체 후공정 업무(패키징)를 담당하는 여성 노동자에게서 유병률이 높게 나타났다. 전체 노동자의 1.29배에 달했으며, 20대 초반(20~24세)으로 좁히면 4.24배로 높아졌다.

남성 직원의 경우 생산직 직원의 백혈병 발생률이 전체 노동자의 1.24배였고, 장비엔지니어는 이보다 높은 1.51배였다. 특히 30대 초반(30~34세) 남성 생산직 직원의 백혈병 발병률은 전체 노동자 평균보다 3.94배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상수 반올림 활동가는 “반도체 사업장 직업병 현황을 보면 20~30대 젊은 노동자들에게서 많이 발생한다는 점이 두드러진다. 백혈병 같은 질병이 발생하기 어려운 어린 나이에 병에 걸리고 사망하는 경우가 많다보니, 통계적으로도 발병률이 뚜렷하게 높게 나타나고 있다”며 “특히 여성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입사하는 경우가 많아 더욱 어린 나이에 병들고 목숨을 잃은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직업성 암·희귀질환 질병이 가장 많이 발생한 기업은 삼성전자(41건)였고, 뒤이어 SK하이닉스(15건), 삼성SDI(8건), 온세미컨덕터코리아(5건), LG화학과 케이씨텍(각 3건) 등으로 나타났다. 케이씨씨와 유니셈, DB하이텍, 티씨케이, 니콘프레시전코리아 등에서도 각 1건씩 집계됐다. 케이씨텍은 질병 재해 3건이 모두 피부와 관련이 있었다.

전체 암·희귀질환 질병 중 산재로 승인(승인+일부 승인)된 것은 38건으로 절반에 못 미쳤다. 불승인(반려+불승인)은 42건이었다. 사망 재해자는 불승인율이 더 높았다. 암과 희귀질환 등으로 사망한 재해자의 산재 처리는 승인이 5건, 불승인(반려+불승인)이 10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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