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는 왜 노동자 파업에 ‘재난 본부’까지 꾸렸을까

강은 기자    김원진 기자

화물연대 집단 운송거부 ‘사회 재난’ 규정

재난안전법상 재난은 화재·붕괴·폭발 등

정부, 파업 의미 왜곡 의도···기본권 침해

원희룡 국토교통부장관과 이상민 행정부장관의 시멘트 유통 현장 점검을 위한 방문이 예정된 1일 인천 중구 서해대로 삼표시멘트 인천사업소 앞에서 화물연대 노조원들이 정부를 규탄하고 있다. |김창길기자

원희룡 국토교통부장관과 이상민 행정부장관의 시멘트 유통 현장 점검을 위한 방문이 예정된 1일 인천 중구 서해대로 삼표시멘트 인천사업소 앞에서 화물연대 노조원들이 정부를 규탄하고 있다. |김창길기자

정부가 화물연대 파업을 ‘사회재난’으로 규정한 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를 가동하자 파업과 재난을 연결시키는 관점이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노동자 파업 상황에서 이례적으로 중대본을 꾸린 것 자체가 헌법이 보장한 노동권을 침해하고 파업의 의미를 왜곡하는 의도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지난달 28일 화물연대 집단 운송거부 행위를 ‘사회 재난’으로 규정했다. 이 장관은 정부서울청사에서 “지난 6월 집단운송 거부사태 등 과거 사례를 볼 때 하루에 약 3000억원 손실 발생이 전망된다”며 “재난안전법상 물류체계 마비는 사회재난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파업은 물류체계 마비를 불러오고 파업의 영향이 곧 재난이 된다는 뜻이다.

정부는 중대본 구성을 ‘육상화물운송분야 위기관리 표준매뉴얼’에 근거했다고 밝혔다. 해당 매뉴얼은 정부가 상황을 ‘심각’ 단계로 격상하면 중대본을 꾸릴 수 있게 규정했다. 중대본 설치에 앞서 정부는 상황을 ‘심각’으로 올려놨다.

노동권 짓누르는 ‘파업=재난’ 규정

행안부에 따르면 그간 중대본이 운영된 대표적인 사회재난 사례는 2012년 구미불산누출사고, 2014년 세월호 침몰사고, 2019년 고성·속초 산불과 헝가리 선박 침몰사고, 2020년 코로나19 확산, 2022년 경북·강원 산불 등이다. 중대본이 운영되기 시작한 2004년 이후 노동자 파업에 대응하는 중대본을 꾸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파업을 재난으로 연결짓는 시각은 이전부터 논란이 됐다. 쟁의행위를 국가가 개입해야 할 ‘비상 상황’으로 간주해 대응하면 결과적으로 노동권을 제한하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현행 법령에서도 파업은 재난이 아니라는 취지를 담고 있다.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재난안전법)상 사회재난의 정의는 ‘화재·붕괴·폭발·교통사고·화생방사고·환경오염사고 등으로 인해 발생하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규모 이상의 피해와 국가핵심기반의 마비’ 등이다.

특히 재난안전법 시행령 44조에는 “쟁의행위로 인한 국가핵심기반의 일시 정지는 (재난에서) 제외한다”고 적시돼 있다. 행안부는 2007년 이러한 내용을 담아 재난안전법령을 개정하며 “쟁의행위는 재난안전법에 의한 재난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한다”며 입법 취지를 밝혔다.

정부는 노동자 파업을 재난 상황으로 보고 이에 준하는 대응을 해왔다. 철도, 지하철, 발전, 화물 등 각종 노동자 파업 때마다 군 대체 인력을 투입했던 게 대표 사례다.

“파업은 사회재난 아니다” 과거 판결도

2016년 철도 파업 때는 국방부가 군 인력이 투입하자 한국철도공사(코레일) 소속 노동자들이 정부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진행했다. 법원은 2019년 국방부의 군 인력 투입에 정당한 근거가 없다고 판결했다. “필수유지업무를 준수한 파업을 국가 기반체계 마비 등 사회재난으로 볼 수 없다”는 게 법원 판단이었다. 다만 군 투입의 불법성은 인정되지 않아 손해배상까지 이뤄지진 않았다.

정부가 화물연대 운송거부 사태에 중대본을 꾸린 것은 ‘파업은 재난’이라는 관점을 강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철도노조 측 법률대리인 우지연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원)는 “과거에 ‘파업이 재난이라면서 왜 중대본도 가동하지 않았냐’며 정부의 모순을 지적하는 비판도 나왔는데, 이번에는 틈을 주지 않을 목적으로 중대본까지 꾸린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파업을 재난으로 규정하면 각종 비상조치가 쉽게 정당화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재난사회학 전문가 박상은 플랫폼C 활동가는 “재난 상황을 해소하기 위해 기본권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특정 조치에 들어가는 것은 굉장히 보수적인 대응 방식”이라며 “업무개시명령 등 조치를 정당화하기 위해 파업 상황을 ‘재난’으로 이름을 붙이는 것은 매우 우려스러운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말했다.

행안부 관계자는 “(쟁의행위를 재난에서 제외한) 시행령은 일시적 피해가 있더라도 노사 타결을 기다리겠다는 취지이지, 쟁의행위가 사회재난이 아니라는 의미는 아니다”라며 “화물연대의 운송거부는 정당한 쟁의행위(파업)가 아니기 때문에, 중대본 구성에 법적 문제가 없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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