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법조사처 “정부, 노조 재정장부·서류 들여다볼 근거 없다”

김지환 기자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가운데)이 지난 20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브리핑실에서 노조 회계에 대한 브리핑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가운데)이 지난 20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브리핑실에서 노조 회계에 대한 브리핑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노동조합이 노동조합법 27조에 따라 행정관청에 내야 하는 ‘결산결과와 운영상황’에 ‘재정에 관한 장부와 서류’가 포함된다고 볼 수 없다는 국회 입법조사처 의견이 나왔다. 이 의견대로라면 노동부가 노조에 재정장부와 서류 증빙자료 제출을 요구한 것은 법적 근거가 없다고 볼 수 있다. 향후 법원도 증빙자료 제출요구가 부당하다고 볼 경우 윤석열 정부는 노조 흠집내기를 위해 무리하게 노조의 자주적 운영에 개입했다는 비판에 직면할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의원이 21일 입법조사처로부터 받은 답변자료를 보면, 입법조사처는 “노조법 27조의 ‘결산결과와 운영상황’에 노조법 14조의 ‘재정장부와 서류’가 당연히 포함된다고 보긴 어렵다”고 밝혔다.

노조법 14조는 노조가 재정장부와 서류를 비치·보존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27조는 노조가 행정관청 요구 시 결산결과와 운영상황을 보고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노조법 시행규칙을 보면 재정장부와 서류는 예산서, 결산서, 총수입원장 및 총지출원장, 수입 또는 지출결의서, 수입관계장부 및 증빙서, 지출관계장부 및 증빙서, 자체회계감사 관계서류 등 7가지다.

앞서 노동부는 지난해 12월29일부터 올해 1월31일까지 한 달간 조합원 1000명 이상 단위노조 및 연합단체 334곳에 재정장부와 서류 비치 의무를 자율점검하라고 요청했다. 이후 노조법 27조에 근거해 자율점검결과서와 재정장부와 서류 증빙자료(표지 1쪽, 내지 1쪽)를 제출하도록 했다. 양대노총은 증빙자료로 표지는 제출하지만 내지까진 낼 순 없다는 방침을 정했다. 이에 노동부는 지난 16일 “207곳(63.3%)이 자료를 제대로 제출하지 않았다”며 과태료 부과 방침을 밝혔다.

쟁점은 노동부가 노조법 27조를 근거로 재정장부와 서류 증빙자료를 요구할 수 있는지다. 27조의 결산결과와 운영상황 범위에 14조의 재정장부와 서류가 포함되는지는 현행 노조법에 명확히 규정돼 있지 않다.

고용노동부가 노조에 재정장부와 서류 증빙자료 제출을 요구하며 제시한 예시.

고용노동부가 노조에 재정장부와 서류 증빙자료 제출을 요구하며 제시한 예시.

입법조사처는 결산결과, 운영상황에 재정장부와 서류가 포함되지 않는다고 본 근거로 노조 조합원의 등사(복사) 청구권을 부정한 판례 취지와 한국 정부가 2021년 비준한 국제노동기구(ILO) 협약 제87호(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에 관한 협약)를 들었다.

대법원은 2017년 노조법은 노조 회계를 외부에 공개하는 것을 전제하고 있지 않으므로 조합원 열람 권리에 재정장부와 서류 등사(복사) 청구권까지 포함되는 건 아니라고 판단했다. 외부 반출 시 제3자에게 재정장부와 서류가 유출될 우려가 있고, 이로 인해 노조의 자주적 운영이 저해될 우려가 있다는 취지다. 입법조사처는 “이 대법원 판례를 행정기관에 대한 보고에 유추적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ILO 결사의 자유에 관한 위원회는 정부는 회계에 관해 통상적인 사항의 제출을 노조에 요구하는 것은 가능하나 (정부) 간섭이 위험을 수반하는 경우에는 ILO 협약 제87조에 위반된다는 입장”이라고 짚었다.

입법조사처는 “행정관청은 노조의 자주·독립성을 침해하지 아니하는 범위에서 노조가 최소한의 민주성을 보장하고 있는지, 법률을 준수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결산결과와 운영상황’에 대한 보고를 받는 것이다. 이 때문에 (자료제출 요구) 대상은 그 취지에 부합하는 범위로 제한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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