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 6개월 사무직 아들은 왜, 지게차를 몰다 숨졌나

조해람 기자

물류센터서 사망한 20대…아버지 인터뷰

입사 6개월 사무직 아들은 왜, 지게차를 몰다 숨졌나

수차례 운행 증거에도
회사는 “지시 없었다”
보호장비 착용 안 한 채
야외 경사로서 전복돼
안전관리 소홀 드러나

지난 4월 초 강원 강릉시 경포호수에서 대형 벚꽃축제가 열렸다. 코로나19 때문에 4년 만에 열린 벚꽃축제에 모인 수많은 청년들은 서로 사진을 찍어주며 웃고 떠들었지만, 강릉에 사는 조모씨(60)는 아들의 유품인 모자를 눌러쓰고 그 곁을 지나쳤다. 지난 11일 강원 강릉의 노무법인 참터 영동지사 사무실에서 만난 조씨는 “자식 같은 젊은이들의 웃는 얼굴을 마주 보기가 힘들었다”고 했다.

조씨의 아들(29)은 벚꽃축제가 열리기 직전인 지난 3월27일 오후 1시38분쯤, 동원그룹 물류 계열사 동원로엑스의 경기 이천 물류센터에서 입식 지게차 전도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힘든 취업준비 기간을 거쳐 사무직 정직원으로 입사한 지 6개월 만이었다. 같은 센터에서 일하던 아들 친구의 연락을 받고 강릉에서 이천으로 달려가는 차 안에서 조씨는 ‘아들이 숨졌다’는 의사의 전화를 받았다.

아들은 센터에서 조금 떨어진 창고 앞 내리막길에서 사고를 당했다. 내리막길을 운행하던 지게차는 도로경계석을 들이받으며 넘어졌다. 지게차에 깔려 크게 다친 아들은 끝내 숨졌다.

아들의 갑작스러운 사망에 경황없이 장례를 치른 조씨는 아들이 어쩌다 사고를 당했는지 알고 싶었다. 회사는 사고 원인과 경위를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았다. 조씨는 회사에 찾아가 직접 자료를 구하고, 지게차와 안전관리에 관한 정보를 모았다. 사고 경위를 알아볼수록 조씨에겐 의문만 쌓였다.

사무직인 아들은 직접 지게차를 몰아선 안 됐다. 하역은 하청업체 담당 작업이었다. 아들도 동원로엑스 입사 전 이 하청업체에서 일하며 지게차를 몬 적이 있지만, 입사 후엔 사무관리와 전산관리, 고객 클레임 관리 등을 배정받았다. 당연히 지게차 관련 안전교육도 받지 않았다. 하지만 아들은 여러 차례 지게차를 몰았던 것으로 조사됐다.

신입인 아들이 누군가의 지시 없이 업무에도 없는 지게차 운행을 할 수는 없다고 조씨는 생각했다. 숨진 아들의 휴대전화에는 지게차 운행 전후 누군가에게 업무를 보고한 정황이 남아 있었다. 아들은 지난 2월4일 상사에게 ‘지게차를 타다가 박스가 파손됐다’고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조씨가 확인한 사고 당일 폐쇄회로(CC)TV 영상에는 사무실에 앉아 있다가 누군가의 전화를 받으며 나가는 아들의 모습이 찍혀 있었다.

사고 난 경사로엔 ‘지게차 운행금지’ 문구…업무 지시 여부에 사측은 “확인 안 돼”

지난 3월27일 지게차 전도 사고가 일어난 동원로엑스 경기 이천 물류센터의 경사로에서 차량들이 내려오고 있다. 유족 제공

지난 3월27일 지게차 전도 사고가 일어난 동원로엑스 경기 이천 물류센터의 경사로에서 차량들이 내려오고 있다. 유족 제공

아들은 1층에서 물품을 지게차에 싣기 전 휴대전화 카메라로 반송품을 촬영해 카카오톡 단체대화방에 올렸다. “(사진을 찍은 건) 누군가의 지시를 받고 보고하기 위한 것 아니겠느냐”고 조씨는 말했다.

사고 이후 회사 관계자들은 지게차 운행 지시 여부에 대한 조씨의 질문에 ‘업무가 아니다’라며 얼버무릴 뿐 명확한 답을 내놓지 않았다. 조씨는 “아들은 지난해 12월 탑차를 운전해 인근에 기름 배달을 나가기도 했다”며 “기름 배달 같은 잡다한 업무까지 시키면서 아들의 지게차 운행을 모른다는 건 거짓말”이라고 했다.

의문은 더 있었다. 아들이 탄 입식 지게차는 원래 경사로에서 사용하면 안 되는 제품이다. 입식 지게차는 바퀴가 작고 통상 브레이크 없이 가속페달을 밟거나 떼는 식으로 가속·정지를 조작한다. 이 때문에 전도 위험이 커 주로 평평한 실내에서 작업하게 돼 있다. 그러나 아들이 사고를 당한 곳은 내리막길이었다. 사고 당시 안전모나 안전화도 착용하지 않았다.

사고가 난 뒤에야 센터 측은 카카오톡 단체대화방에 ‘관리직원 지게차 운행 절대 금지’라는 공지를 내렸다. 사고가 난 내리막길에는 고용노동부 지시로 뒤늦게 ‘입식 지게차 운행 금지’라는 형광색 글귀와 과속방지턱이 설치됐다.

동원그룹 직원만 이용할 수 있는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는 “계열사 직원 사망 소식을 뉴스 보고 아는 게 말이 되느냐” “(사내) 게시판에 아무 말도 없고 쉬쉬하면 모를 줄 알았나” 등 공분이 이어졌다. 유족도 회사가 책임을 피하고 사고를 축소하려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청년세대 취업난이 계속되며 조씨 아들 또래의 많은 청년이 물류센터로 모여들고 있다. 2022년 국가인권위원회의 ‘생활물류센터 종사자 노동인권상황 실태조사’를 보면, 단일 품목을 다루는 물류센터 종사자의 72.0%가 30대 이하였다. 하지만 늘어난 규모에 비해 안전관리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으면서 청년들이 위험에 노출돼 있다. 2016~2020년 창고업·기타보관업에서는 총 732명의 재해자가 발생했다.

조씨의 아들도 2년 동안 5번의 자격증 시험을 치를 정도로 성실하게 취업을 준비했다. 대기업 취업 후 고된 직장생활에도 가족에게 힘든 내색을 하지 않았다. 열악한 기숙사에 사는 아들이 안쓰러웠던 조씨가 원룸을 얻어주겠다고 했을 때도 아들은 거절했다. 아들은 절약하며 돈을 모아 스스로 원룸을 계약했다. 사고 전날인 지난 3월26일이었다.

조씨의 지인들은 그를 성실하고 배려심 많은 사람으로 기억했다. 아들과 함께 일한 협력업체 직원은 조씨에게 “(아들이) 인사성도 바르고 일도 확실하게 처리해서 늘 고맙게 생각했다”며 “모두 안타까워 울었다”고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동원그룹 관계자는 “지게차 운행 업무를 하면 안 되는 분이고, (사고가 난 길은) 입식 지게차가 다닐 수 없는 길이었다”면서도 “조사 결과가 나와야 알겠지만 현재까지 (회사 자체적으로) 업무 지시는 확인된 바가 없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안전관리를 완벽하게 하지 못해 불미스러운 사고가 발생한 점에 깊이 반성하고, 유족과의 대화와 관계기관 조사에 성실히 임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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