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탁업체 ‘비위’ 근거로 삭감
현장 종사자들 노력 ‘물거품’
여성가족부가 내년도 ‘청소년 노동권 보호’ 상담사업 예산을 전액 삭감한 것으로 확인됐다.
해당 사업을 위탁받아 수행하던 민간업체(사단법인 동서남북모바일커뮤니티)가 과거 사업비 횡령·부정수급을 한 것이 이유인데 문제가 된 사단법인과 현재 지자체에서 상담을 수행하는 센터는 별개다. 여가부가 사업 수행 사단법인을 제대로 관리·감독하지 않고, 지자체 이관도 제대로 지원하지 않았으면서 현장의 정상화 노력만 꺾었다는 비판이 나온다.
17일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소속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여가부로부터 받은 ‘청소년 근로 부당처우 상담 현황’을 보면, 여가부는 2018년부터 2023년 7월까지 총 26만9015건의 청소년 노동자 부당처우 관련 상담을 진행했다. 상담 영역은 임금체불·수당, 성희롱·폭언·폭행, 해고 등 부당노동행위, 청소년보호법 위반 등이다.
상담 건수를 보면 2018년 3만2815건, 2019년 5만9건, 2020년 7만1004건, 2021년 10만7908건으로 해마다 늘었다. 그러다 2022년 1901건으로 전년 대비 98.2% 급감했다. 2022년 상담 급감은 당시 해당 사업을 총괄하던 사단법인 ‘동서남북모바일커뮤니티’가 여가부의 사업비를 횡령·부정수급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사업은 2022년 10월 지자체로 넘어갔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 사단법인의 비위 사건은 청소년 노동자의 실질적인 권리구제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신 의원실이 받은 ‘청소년 노동자 상담 중재·연계 실적’을 보면, 해당 사업이 청소년 노동자와 고용주 간 문제를 ‘중재’한 실적은 2019년 652건, 2020년 757건에서 2021년 37건, 2022년 21건으로 급감했다. 노동관서에 연계한 실적도 2019년 131건, 2020년 75건에서 2021년 31건, 2022년 3건으로 대폭 줄었다.
해당사업이 지자체로 넘어간 뒤로 상담과 중재·연계 실적은 반등했다. 2022년 1901건에 그친 상담 실적은 2023년 7월 5378건으로 182.9% 증가했다. 같은 기간 중재 실적은 21건에서 67건으로 증가했다. 노동관서 연계 실적은 3건에서 4건이 됐다.
현장 종사자들의 노력으로 사업이 정상화되기 시작했지만 여가부는 내년도 사업 예산을 전액 삭감했다. 여가부는 고용노동부에 중복 사업이 있다는 이유를 들었지만, 노동부의 해당 사업 예산안은 여가부가 삭감한 만큼 증액되기는커녕 일부 감소한 것으로 드러났다.
여가부는 해당 사업 예산 삭감의 또 다른 근거로 ‘보조금 부정수급’을 들었다. 민간단체와의 협업 사업 예산을 전면 축소하는 현 정부 기조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이미 민간단체의 손을 떠나 지자체가 진행하는 사업인데, 뒤늦게 ‘보조금 부정수급’을 이유로 예산을 전액 삭감하는 것은 비합리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한 청소년 노동권 상담사업 관계자는 기자와 통화하면서 “이제 막 회복해가는 단계였는데 갑자기 사업이 사라져 막막하다”고 했다.
신 의원은 “여가부는 위탁 업체를 관리감독하고 사업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갈 책무가 있음에도, 대안 없이 청소년 정책 예산을 대폭 삭감하면서 주무부처로서의 책임을 저버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