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치 이하 유기용제 노출’ 측정에도 산재 인정…왜?

김지환 기자
‘기준치 이하 유기용제 노출’ 측정에도 산재 인정…왜?

굴착기 하부 프레임을 만드는 공장에서 용접·도장공정 관리 업무를 하면서 유기용제에 노출된 노동자가 ‘전신경화증’으로 업무상 질병 판결을 받았다. 해당 공장의 화학물질은 고용노동부 고시가 정하는 화학물질 노출기준에 미달했지만 재판부는 산재를 인정했다. 재판부는 작업환경 측정 보고서를 ‘사업장이 유해요인에 노출됐는지, 그 노출 유해요인에 대한 관리가 되는지를 살펴보는 기준’으로만 봤다.

서울고등법원 행정7부(재판장 김대웅)는 지난 14일 오모씨(발병 당시 38세)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요양불승인처분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법적·규범적 관점에서 전신경화증은 원고가 다수의 유기용제 등에 노출된 것이 원인이 돼 발생했거나 적어도 다른 불상의 발병 원인과 겹쳐서 유발 또는 촉진됐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밝혔다.

오씨는 2009년 7월 동일고무벨트의 의뢰를 받아 굴착기 하부 프레임을 만드는 기평하이텍에 생산관리자로 입사했다. 도장작업 현장을 관리하며 하루 2~3회 현장 근무를 했다. 2015년 8월부터는 현장에서 상주했다. 도장 설비를 분해하고 세척하는 일, 도장이 잘 안 된 부분을 붓으로 수정하는 일은 아예 전담했다.

오씨는 2017년 6월 전신경화증 판정을 받고 근로복지공단에 산재 승인을 신청했다. 전신경화증은 피부가 두꺼워지고 내부 장기의 이상을 동반하는 희소 질환으로, 유기용제 노출 시 발병 소지가 있다. 근로복지공단과 1심 법원은 오씨가 유기용제에 노출된 수준이 낮았기 때문에 전신경화증과 업무 간 관련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2심 법원은 1심 판결을 뒤집었다. 항소심 재판부는 “원고는 생산관리직으로 채용됐지만 사실상 사업장에서 작업자 업무를 하면서 1주 평균 69시간을 일하기도 했던 사실, 사업장에는 유기용제 등 유해요인이 발생했지만 원고에겐 생산관리자라는 이유로 보호장구가 지급되지 않은 사실 등을 보면 전신경화증과 원고 업무와의 관련성을 인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항소심 재판부는 또 유기용제 등 유해인자가 노동부 고시가 정하는 화학물질 노출기준 이하라는 회사의 작업환경 측정 보고서에 얽매이지 않았다. 항소심 재판부는 “산업안전보건법상 작업환경 측정 보고서는 측정된 구체적 수치의 크기와 그로 일한 질병의 이환(병에 걸림) 여부보다는 사업장이 유해요인에 노출돼 있는지와 그 노출 유해요인은 무엇이고, 이에 대한 관리는 되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기준의 역할을 한다”고 판단했다. 이어 “원고가 사용한 시너에 벤젠과 함께 다이클로로 메탄 또한 함유돼 있어 2개 이상의 화학물질에 혼합적으로 노출돼 그 유해성이 더 증가했을 가능성도 있다”며 “노출기준 이하의 예시 자료들은 측정이 이뤄진 당시의 작업환경을 나타낼 뿐이고, 원고가 일할 당시의 작업환경을 나타낼 순 없다”고 했다.

오씨를 대리한 법률사무소 지담 임자운 변호사는 “이번 판결을 계기로 ‘작업환경 측정 결과’를 앞세워 산재 불승인을 남발하는 근로복지공단 태도에 변화가 생기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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