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2월10일 밤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 하청노동자 김용균씨(당시 24세)가 홀로 야간작업을 하다 숨졌다. 이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의 사망 뒤 산업안전보건법 전부 개정안 논의가 급물살을 탔다. 사망사고가 발생한 지 17일 만에 ‘김용균법’이라고 불리는 산안법 전부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보호 대상이 확대되면서 특수고용직 노동자도 처음으로 산안법 체계 안으로 들어왔다.
2020년 1월 개정안 시행을 앞두고 노동계는 ‘김용균 없는 김용균법’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위험의 외주화를 막기 위한 원청의 도급 금지 작업에 김용균씨가 맡았던 업무, 2016년 스크린도어(지하철 안전문) 수리를 하다 숨진 ‘구의역 김군’이 맡았던 업무 등이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도급 금지 범위가 좁다는 데 초점이 맞춰지면서 특수고용직 노동자 보호 방안에 뚫린 구멍은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다. 개정안이 시행된 지 4년 가까이 지나도록 특수고용직 노동자는 안전보건 사각지대에 방치됐다.
220만명 이상으로 추정되는 특수고용직 노동자는 형식적으론 ‘개인사업자’다. 근로기준법상 노동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산재 보상과 예방 두 가지 모두에서 오랜 기간 배제돼 있었다. 2008년 시행된 산재보험법 개정안에 특수고용직 노동자가 처음 포함되면서 산재 보상 측면에선 일정한 진전이 있었다. 하지만 사업주의 안전보건 조치 의무를 정하고 있는 산안법 울타리 안으로는 여전히 들어오지 못했다. 산안법 전부 개정안이 시행된 2020년 1월에서야 특수고용직 노동자도 산안법 체계에서 명함을 내밀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이 명함은 ‘반쪽짜리’에 불과했다.
현행 산안법은 77·78조에서 특수고용직 노동자에 대한 사업주·플랫폼 업체의 안전보건 조치 의무를 규정한다.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인정되는 이들에겐 산안법 전체가 적용되는데 특수고용직 노동자에겐 77·78조만 적용한다. 특수고용직 노동자는 77·78조라는 ‘섬’에 고립된 셈이다.
모든 특수고용직 노동자가 77·78조 적용을 받는 것도 아니다. 대통령령으로 정한 14개 직종(보험모집인·건설기계 운전자·학습지 교사·골프장 캐디·택배기사·퀵서비스·대출모집인·신용카드 회원 모집인·대리운전기사·방문판매인·대여제품 방문점검원·가전제품 설치 및 수리기사·화물차주·소프트웨어 기술자)만 적용 대상이다. 14개 직종별 사업주의 안전보건 조치는 노동부령인 안전보건규칙 672·673조에 세부적으로 규정돼 있다. 직종에 따라 안전보건 조치가 다르다.
특수고용직 노동자에 대한 보호가 미흡한 탓에 한국사회 ‘산재 지도’가 재편됐다. 전통적으로 산재가 잦은 업종은 건설·제조업이었는데 지난해와 올해(1~8월 기준) 2년 연속 산재 승인건수 1위 업체는 배달의민족 물류서비스를 전담하는 ‘우아한청년들’이었다.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대리운전기사에게 일감을 주는 카카오모빌리티의 산재 승인건수도 빠르게 늘 것으로 예상된다.
구멍 뚫린 특수고용직 안전보건 규정
배달라이더 조동익씨(46)는 지난 10월 말 서울 B마트(배달의민족의 생필품 배달서비스) 서울 강남논현점에 배송물품을 받으러 갔다가 당황했다. 대형 키친타올·두루마리 휴지·대형 기저귀가 2개씩 담긴 배송물품 꾸러미의 지름이 1m12㎝에 달했다.
어쩔 수 없이 두 뭉텅이만 배달통에 넣었는데 여전히 부피가 커 뚜껑을 닫을 수 없었다. 나머지 한 뭉텅이는 오토바이 발판에 올려놓고 배달을 시작했다. 조씨는 “발판에 둔 뭉텅이가 운전 중 밖으로 떨어질까 봐 계속 발로 받쳐야 해서 위험했다”고 말했다.
근골격계 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는 과중량도 문제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라이더유니온지부는 올해 지속적으로 B마트 배송물품의 과중량 문제를 제기했다. 이에 배달의민족은 처음부터 배송물품이 10㎏을 넘지 않게 포장을 하고, 만약 10㎏을 초과할 경우 배달라이더가 분리배차(10㎏ 초과 물품을 두 개로 나누는 것)를 요구할 수 있도록 했다. 정책 변경 뒤 예전보다 많이 줄긴 했지만 여전히 10㎏을 넘는 배송물품이 나온다. 조씨는 “분리배차 요구가 승인될 때까지 시간이 꽤 걸리기 때문에 10㎏이 넘어도 배달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산안법령상 배달의민족은 조씨와 같은 배달라이더의 오토바이 면허·안전모 보유 여부를 확인하고, 안전운행·산재예방에 필요한 사항을 정기적으로 고지해야 한다. ‘30분 배달제’ 같은 과속배달(배달시간 제한)도 금지해야 한다. 문제는 이 조치만으로는 배송물품 과부피·과중량에 따른 산재 위험을 예방할 수 없다는 점이다.
또 다른 특수고용직 노동자인 학습지 교사는 채점 등 반복 동작을 장시간 하고 교재·동화책·선물 등 무거운 짐을 들고 이동하기 때문에 근골격계 질환을 호소하는 사례가 많다. 하지만 학습지 교사에게 적용되는 안전보건규칙에 근골격계 질환 예방 조치는 포함돼 있지 않다. 직업환경의학전문의인 최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는 “특수고용직 노동자에게 적용되는 안전보건규칙 범위가 지나치게 제한적”이라며 “직종별로 다른 안전보건규칙의 근거도 모호하고 자의적”이라고 말했다.
‘고객 갑질’에 사실상 무방비
배달라이더 김모씨는 지난 3월27일 경기 용인시에서 배달 중 오피스텔 입구를 찾지 못해 고객 A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A씨는 갑자기 소리를 지르면서 “야! 너 다시 돌아가” “왜 전화해서 짜증나게 해” “내가 너보다 나이가 한참 많아. 당장 사과해” 등의 폭언과 욕설을 퍼부었다. 김씨는 배달의민족 라이더지원센터에 도움을 요청했다. 센터는 ‘입구를 다시 잘 찾아보라’고 할 뿐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다.
김씨 같은 특수고용직 노동자 중 상당수는 감정노동을 한다. 2017년 콜센터로 현장실습을 나간 한 특성화고 학생이 극단적 선택을 한 실화를 다룬 영화 <다음 소희>는 감정노동에 시달리는 일이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 누구의 월급에도 ‘욕값’은 들어 있지 않지만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은 고객 갑질에 사실상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 특수고용직 노동자 앞에 놓인 두 개의 장애물 때문이다.
첫 번째 장애물은 ‘주로 하나의 사업에 노무를 상시로 제공하고 보수를 받아 생활한다’는 전속성 기준이다. 산안법령은 감정노동을 하는 특수고용직 노동자가 사업주로부터 고객의 폭언 등에 대한 대응지침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복수의 앱에서 일감을 받아 일하는 배달라이더와 대리운전기사 등은 전속성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지난 7월부터 산재보험법에서 전속성 기준이 삭제됐지만 산안법에선 여전히 전속성 기준이 특수고용직 노동자의 발목을 잡는다.
특수고용직 노동자에게 ‘감정노동자보호법’이라고 불리는 산안법 41조가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은 두 번째 장애물이다. 전속성 기준이라는 첫 번째 장애물을 넘어도 고객의 폭언 등에 대한 대응지침만 받을 수 있을 뿐 산안법 41조라는 큰 우산 아래로 들어갈 수 없다. 산안법 41조는 고객 응대업무 매뉴얼 마련 의무뿐 아니라 고객이 폭언 등을 하지 않도록 요청하는 문구 게시 또는 음성 안내 의무도 사업주에게 부여하고 있다. 폭언 등으로 ‘노동자 건강에 문제가 발생하거나 발생할 가능성이 큰 경우’엔 사업주가 업무의 일시적 중단 또는 전환, 휴게시간 연장, 치료·상담 지원, 고소·손해배상 지원 등도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대리운전기사 B씨는 고객 갑질 시 사업주의 업무 중단 의무를 규정한 산안법 41조 적용을 받지 못하다 보니 억울한 일을 겪어야 했다. B씨는 지난 6월10일 경기 용인시에서 화성시까지 이동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애초 목적지에 거의 도착했을 때쯤 고객 C씨는 갑자기 “왜 여기로 왔냐”며 2~3㎞ 떨어진 곳으로 운전할 것을 요구했다. B씨가 “출발 전과 운행 중 두 번이나 확인한 목적지로 가고 있는데 목적지를 바꾸려면 (협의하거나) 말씀을 해주셔야 하지 않냐”고 물었다. 그러자 C씨는 욕설과 반말을 하며 차에서 내릴 것을 요구했다. B씨는 어쩔 수 없이 아파트 입구 인근 3차선 도로 가장자리에 차를 세우고 운행을 종료했다. C씨 민원을 접수한 플랫폼 업체는 B씨가 운행을 종료할 수밖에 없었던 사정은 고려하지 않고 주·정차 금지구역에 차를 세운 것만 문제삼아 B씨 앱 계정을 정지시켰다. 사실상 ‘해고’를 한 셈이다.
고객의 하차 요구는 없었지만 폭언·폭행을 견디지 못한 대리운전기사가 자체적으로 운행을 종료하는 사례도 생각해볼 수 있다. 후자의 사례에도 특수고용직 노동자는 작업중지권을 보장한 산안법 52조 적용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업무 중단을 쉽게 결정하기 어렵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2021년 발행한 ‘산안법상 특수형태근로종사자의 판단기준과 보호내용의 적정성에 관한 연구’ 보고서는 “작업중지권은 신체·건강·생명이라는 절대적 보호법익 침해 예방에 필수적 조건”이라며 작업중지권을 특수고용직 노동자에게 확대 적용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특수고용직 노동자로부터 노무를 제공받는 사업주에겐 건강진단 실시 의무도 없다. 산안법 129조(일반건강진단), 130조(특수건강진단)가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는 특수고용직 노동자 건강진단 비용 지원사업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대다수는 사각지대에 있다. 고용노동부가 더불어민주당 윤건영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를 보면 대리운전기사 28만6000명(지난 7월 말 산재보험 가입자 기준) 중 비용 지원을 받은 이는 2021년 64명, 지난해 716명, 올해 1~11월 1350명에 불과했다.
업종·공급망 차원의 ‘위험성 평가’ 필요
노동부는 지난해 11월 말 노사가 스스로 위험요인을 발굴·개선하는 ‘위험성 평가’를 중심으로 자기규율 예방체계를 구축하도록 지원하는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을 제시했다. 노동부는 산안법령에 의한 규제 위주 행정으로 인해 기업이 타율적 규제에 길들면서 자체적으로 위험요인을 발굴·개선하는 역량이 부족해졌다고 봤다. 법령의 특성상 획일적·일반적 내용이 많아 개별 사업장의 특성·여건을 제대로 반영하기 어렵다는 점도 고려했다.
특수고용직 노동자는 위험성 평가(산안법 36조)에서도 ‘열외’다. 이 때문에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이 개별 사업장이나 업종·공급망 차원에서 사업주와 함께 위험성 평가를 할 수 있는 통로가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온전한 형태는 아니지만 조금씩 위험성 평가의 싹이 나타나고 있다.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이 결성한 노조는 산안법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단체교섭’에서 안전보건 대책을 요구해 성과를 내고 있다. 금속노조 LG케어솔루션지회가 지난해 체결한 단체협약을 보면, 방문점검원은 폭언·성희롱·폭력 등 고객 갑질이 있으면 바로 업무를 중단할 수 있고 이로 인한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 마스크·손목보호대 등 안전용품 지급, 고객의 반려견에게 물려 상해 발생 시 치료비 지원 등의 내용도 있다.
대리운전노조와 카카오모빌리티는 지난해 체결한 단체협약에 회사가 안전보건 위험요인 조사 등 노조의 안전보건활동을 보장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업무 위험요인 조사, 개선대책 마련을 위해 필요할 경우 외부 전문가가 참여할 수 있는 길도 열어뒀다. 노사와 전문가가 참여하는 ‘안전포럼’의 모태가 될 수 있는 내용이다.
배달라이더, 건설기계 운전자 등은 업종 또는 공급망 차원의 위험성 평가가 필요하다. 음식배달의 경우 배달의민족·요기요 등 주문중개앱, 음식점, 생각대로·바로고·부릉 등 배달대행앱, 지역배달대행업체, 배달라이더 등 이해관계자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건설기계 역시 건설 현장의 원·하청업체, 건설기계 운전자, 건설기계 대여업체 등이 맞물려 있는 구조다. 오민규 플랫폼노동희망찾기 집행책임자는 “기업 하나가 아니라 업종 혹은 공급망 전체로 접근하는 위험성 평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업종 혹은 공급망 전체의 이해관계자들이 위험성 평가를 통해 만든 자체규범을 노동부가 인증하는 방향으로 산안법령을 손질할 필요가 있다는 제안도 나온다. 강태선 서울사이버대 안전관리학과 교수는 “안전보건규칙에 지시적 규정이 지나치게 많으면 전시행정으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업종 혹은 공급망 전체의 이해관계자들이 자체규범을 논의할 여지를 주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