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한테 이직준비 말하라고?”···직장인들 ‘시끌시끌’

박채연 기자

경력 지원자에 부담되는 ‘레퍼런스 체크 받기’

‘평소에 잘하기’가 방법?···“평판 맹신은 금물”

스펙터가 지원자에게 보내는 문자 일부 캡쳐. A씨 제공

스펙터가 지원자에게 보내는 문자 일부 캡쳐. A씨 제공

“지원하신 포지션에 최종 면접합격을 축하드리며, 경력직 채용에 따라 아래와 같은 사항이 필요합니다.”

30대 여성 직장인 A씨는 지난해 여름 한 중소기업의 경력직 채용에 지원했다. 인터뷰 합격 소식을 담은 메일엔 경력증명서 등 필요 서류를 제출하라는 말과 함께, ‘스펙터’라는 대행업체를 통해 ‘레퍼런스 체크(평판 조회)’가 진행될 것이라는 안내가 있었다.

같은 날 A씨는 스펙터로부터 문자를 받았다. 인사권자 1인을 포함한 4인 이상의 ‘레퍼리(평판을 작성해줄 이전 혹은 현재 회사 동료 및 상사)’에게 자신에 대한 평판을 직접 받아와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A씨는 “(제가) 작성을 부탁한 사람 5명 중 4명이 불편하다고 했다”며 “죄송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연락했는데 더욱 죄송했다”고 했다.

가뜩이나 레퍼런스 체크가 좋은 경험도 아닌데··· 문항이 많고 최소 글자수가 있어서 부탁받는 이들이 사용하기 불편해 해요. 구직자들 사이에서도 불만이 많은 것 같아요.

- A씨

“가뜩이나 민감한데”···블라인드 들끓은 이유

‘레퍼런스 체크’는 회사에서 경력직 채용 시 지원자의 업무능력·대인관계 등을 이전이나 현재 직장 동료나 상사에게 확인하는 절차다. 회사 인사팀에서 직접 진행하기도 하고 대행업체에 맡기기도 한다.

직장인 플랫폼 ‘블라인드’에서는 최근 새로 등장한 대행업체 ‘스펙터’를 두고 다양한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스펙터는 경력 입사지원자들에게 개인정보활용 등 동의를 받고, 자신의 평판을 말해줄 레퍼리를 직접 찾아 평판을 부탁하도록 한다. 레퍼리들이 스펙터에 직접 등록한 평판은 의뢰를 요청한 회사에 넘어가 채용에 활용된다. 레퍼리들이 작성한 평판 중 ‘공개’ 항목은 입사지원자 본인도 볼 수 있지만, ‘비공개’ 항목은 지원자가 공개를 동의한 회사들만 볼 수 있다.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 캡쳐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 캡쳐

스펙터를 이용해본 구직자들은 특히 ‘한 명 이상의 인사권자’를 레퍼리에 포함해야 한다는 것에 부담을 느꼈다. 지난해 10월 한 대기업의 경력 채용에 지원했던 30대 남성 직장인 B씨는 “인사권자 한 명과 직장 동료 3명 모두 평판을 등록해야 제출되는 시스템”이라며 “인사권자에게 직접 평판 등록을 요청해야 해서 굉장히 부담스러웠다”고 말했다.

인사권자·동료들에게 평판을 요청하는 과정에서 이직을 시도한 사실이 알려졌는데, 정작 이직은 실패하는 ‘최악의 경우’를 직장인들은 걱정되는 상황으로 꼽았다. 스펙터 평판은 이전 직장 동료들에게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직장생활을 처음 하는 이들은 ‘전 직장 동료’가 없기 때문이다.

B씨는 “스펙터를 활용한 레퍼런스 체크 과정 뒤 탈락 통보를 받은 적도 있다”며 “만약 재직하던 직장이 첫 직장이라 ‘현 직장 동료들’에게만 평판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면 아찔했을 것이다. 이직한다는 소문도 다 나고 이직도 못하는 꼴”이라고 했다.

레퍼리들도 부담스럽긴 마찬가지다. 30대 여성 직장인 C씨는 전 직장 동료의 요청으로 스펙터에 그의 평판을 등록한 적이 있다. 그는 “깐깐한 정성적 인사평가 같았다”며 “옛 동료의 뒷정보를 무료로 제공하는 느낌”이라고 했다.

‘스펙터’ 홈페이지에서 안내하는 평판 작성. ‘스펙터’ 홈페이지 캡쳐

‘스펙터’ 홈페이지에서 안내하는 평판 작성. ‘스펙터’ 홈페이지 캡쳐

스펙터 측은 레퍼런스 체크가 ‘뒷조사’처럼 암암리에 이뤄지는 관행을 바꾸기 위해 서비스를 시작한 것이라는 입장이다. 윤경욱 스펙터 대표는 “여태껏 기업들은 ‘비지정 레퍼리’라며 지원자가 동의하지 않는 이들에게까지 레퍼런스 체크를 받기도 했다”며 “스펙터는 레퍼런스 체크가 불건전하게 진행되는 것을 개선하고자 만든 플랫폼”이라고 했다.

스펙터 측은 “인사권자를 포함하지 않더라도 등록된 평판들은 기업들에게 전달된다”며 “지원자의 불편함과 부담감을 최소화하기 위해 지난해 말부터 문자에서 평판 등록 개수를 언급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윤 대표는 “레퍼리들의 회원가입 절차를 없애는 등 사용 경험을 개선하기 위한 작업 중으로, 다음 달까지 대대적인 개편을 할 것”이라고 했다.

결국 평소에 잘해야? 그러기엔···

스펙터에 대한 직장인들의 반응은 레퍼런스 체크 문화에 대한 직장인들의 불만·부담이 크다는 방증이다. 여전히 레퍼런스 체크를 암암리에 진행하는 회사들 때문에 피해를 보는 구직자들도 있다. 레퍼리들에게도 미안한 마음을 지닌 채 부탁하게 된다. 이직할 때 레퍼런스 체크를 부탁해본 30대 남성 직장인 D씨는 “친했던 동료한테 부탁하긴 했지만, 서술형으로 내용을 작성해야 해 부탁하기 미안했다”고 말했다.

레퍼런스 체크가 채용에 필수적인 절차인지 의문을 표하는 이들도 있었다. A씨는 “지원자의 ‘진짜’ 모습을 보기 위해 레퍼런스 체크를 한다고 하지만, 일부 사람의 평가로 이전 회사에서의 내 모습이 결정되는 것”이라며 “이럴 거면 왜 면접을 수차례 몇 시간씩 보냐”고 반문했다.

전문가들도 레퍼런스 체크가 공정한 평가를 온전히 담보하기엔 어려운 지점이 많다고 봤다. 레퍼런스 체크는 주관적인데다, 지원자가 그 내용을 파악하거나 반박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이미소 노무사는 “업무·조직과 지원자의 적합성을 보기 위해 레퍼런스 체크를 한다지만, 동료와 상사의 평가라는 정성적 자료를 어떻게 참조하는지 전혀 알 수 없다”며 “지원자가 레퍼런스 체크 내용에 대해 항변할 수 있는 방어권이 없는 것이 문제”라고 했다.

박점규 직장갑질119 운영위원은 “당장 어떤 상사를 만나느냐가 업무 진행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느냐”라며 “직장 환경과 업무 조건에 따라 능력이 발휘되는 정도가 달라질 수 있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지원자가 레퍼런스 체크를 거부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미소 노무사는 “레퍼런스 체크 과정을 거쳐야 채용한다는데, 구직자가 어떻게 거부할 수 있겠냐”며 “동의하지 않는다는 사실부터 탈락이라는 결과로 이어지기 쉬울 것”이라고 했다.

취업·기업 관련 홈페이지들에서는 레퍼런스 체크에서 잘 살아남는 법을 소개해주기도 한다. 잡플래닛 캡쳐화면

취업·기업 관련 홈페이지들에서는 레퍼런스 체크에서 잘 살아남는 법을 소개해주기도 한다. 잡플래닛 캡쳐화면

결국 직장인이 평소에 평판을 ‘관리’하는 것이 방법으로 제시되지만, 그 때문에 직장 내 괴롭힘 같은 일에 문제 제기를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진아 직장갑질119 노무사는 “‘이 사람이 나를 나쁘게 평가하면 어떡하지’라며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하지 않기도 한다”며 “가해자들이 주로 상사나 관리자이기 때문에, ‘괜히 문제 제기해서 나에 대한 그들의 평가를 깎기보다는 그냥 퇴사하자’고 판단하는 것”이라고 했다.

레퍼런스 체크에 지나치게 의존하기보단 직무 적합성 등 지원자를 잘 평가하기 위한 방법을 회사가 개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이진아 노무사는 “레퍼런스 체크는 지원자를 평가하기 쉬운 방법이지만, 문제가 있다면 다른 방법을 모색해볼 필요가 있다”며 “직무 적합성 등을 적절히 파악할 수 있도록 채용 절차를 고도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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