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해도 야근·휴일근무···결국 유산하는 여성 노동자들

박채연 기자


Getty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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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하면 거래처분들이 욕을 하고 소리치고 불신에 가득 찬 말들을 해 그런 분들을 매일 설득해야 하는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있었고요. 임산부한테는 먼 거리를 이동하는 게 무리인데 미팅도 전 직원 모두 매일 나가게 하고, 최소 일주일에 한 번은 미팅을 나가게 강요했어요.” (영업직 A씨)

“(육아기 단축근무를) 중소기업은 거의 못 쓴다고 보면 돼요. 2시간 단축 근무를 요청하기도 어렵고 이야기 꺼내는 것 자체를 회사에서 별로 안 좋아하기도 하고요.” (사무직 B씨)

유산·사산을 경험한 여성 노동자 10명 중 7명은 노동 시간이나 업무량을 조절할 수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장시간 노동은 임신 유지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데, 현장에서는 임신기 근로시간 단축·업무 교체 등 모성보호 정책을 활용하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12일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발간한 ‘건강하고 안전한 노동환경 보장 연구: 유산·사산을 중심으로’를 보면, 유·사산을 경험한 여성 노동자의 하루 평균 노동시간은 8.47시간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2015년 이후 임금노동자로 일하는 중 유·사산을 경험한 여성 859명을 대상으로 설문을 시행했다.

유·사산을 경험한 여성 노동자들의 절반은 업무가 임신 유지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했다. ‘유·사산 당시의 업무가 임신 유지에 좋지 않은 영향을 주었는지’에 대해 ‘매우 그렇다’ 9.2%, ‘그렇다’가 42.3%로 전체의 51.5%가 업무가 임신 유지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봤다. ‘유·사산이 당시 일터에서 했던 업무와 연관성이 있었는가’라는 질문에는 ‘매우 그렇다’는 6.4%, ‘그렇다’는 36.6%로 43.0%가 업무 연관성이 있었다고 인지했다.

노동시간이 길수록 ‘업무가 임신 유지에 좋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는 응답이 올라갔다. ‘업무가 임신 유지에 좋지 않은 영향을 주었는지’ 묻는 말에 ‘매우 그렇다’고 응답한 이들의 노동시간은 9.38시간이었다. ‘그렇다’는 8.80시간, ‘그렇지 않다’는 8.12시간, ‘전혀 그렇지 않다’는 7.55시간이었다. ‘업무가 유·사산과 연관성이 있다’에 대해 ‘매우 그렇다’고 응답한 이들의 노동시간은 9.42시간이었다. ‘그렇다’ 8.79시간, ‘그렇지 않다’ 8.25시간, ‘전혀 그렇지 않다’ 7.78시간으로 나타났다.

법이 보장하는 모성보호제도를 사용하기도 어려웠다. 임신기 근로시간 단축제도가 시행 중이지만 응답자 72.1%가 유·사산 당시 ‘회사의 근로시간을 변경할 수 없었다’고 응답했다. 근로기준법은 임신기에 연장·야간·휴일근무를 제한하지만, ‘업무가 유·사산과 연관성이 있다’에 ‘매우 그렇다’고 답한 여성 노동자 중 50.9%는 연장 근무를 ‘자주’ 혹은 ‘항상’ 했다고 응답했다.

임신한 노동자가 맡은 업무량이 많거나 부담이 되면 쉬운 업무로 교체해주는 제도 역시 근로기준법이 보장하고 있다. 그러나 응답자의 69.3%가 유·사산 당시 ‘업무량을 조절할 수 없었다’고 했다.

임신노동자의 유·사산은 증가하는 추세다. 전체 유·사산 사례 중 직장가입자(임금노동자)의 비중은 2017년 43.1%, 2018년 44.1%, 2019년 45.6%, 2020년 47.4%, 2021년 49.3%로 늘었다. 하지만 유·사산이 산재로 인정되는 경우는 2010년~2022년 사이 10건으로 전체 산재신청 22건의 절반에 못 미쳤다.

연구를 맡은 김동식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여성의 임신과 출산의 업무관련성에 대한 논의는 지금까지 매우 부족했다”며 “유·사산 산재 인정기준을 마련할 때 장시간 서서 일하는 업무 등 인체공학적 요인, 감정노동 등 심리사회적 인자, 연장·야간·교대 근무 노출 정도와 업무 부담 등 다양한 노동환경적 특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어 “유·사산을 예방하기 위해 모성보호제도를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노동현장에서의 근로감독을 강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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