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후조리원에서도 노트북 열고 일했다

김지환 기자

‘육아휴직’에서도 배제된 비임금노동자

“아이가 ‘쉬는 엄마’를 본 적이 없어요”

한 콘텐츠 모더레이터가 자택에서 아이를 돌보며 일을 하고 있다. 양다영 PD

한 콘텐츠 모더레이터가 자택에서 아이를 돌보며 일을 하고 있다. 양다영 PD

정수기·비데 방문점검원, 음식 배달라이더, 대리운전 기사, 헬스장 트레이너, 기상캐스터, 학원강사…. 시민들이 일상에서 접하는 특수고용직·플랫폼 종사자(노무제공자)와 프리랜서 등 비임금노동자의 다른 이름들이다.

이들은 근로기준법상 노동자가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노동법 울타리 밖에 있다. 일한 대가를 받지 못해도 근로감독관에게 임금체불을 호소할 수 없다. ‘최저임금’을 받지 못해도 최저임금법 위반으로 사장을 고소할 수 없다. 1년 넘게 일해도 퇴직금을 받을 수 없고, 공휴일 및 대체공휴일 등 ‘빨간날’을 유급휴일로 보장받지 못한다. 일터에서 위험을 느껴도 산업안전보건법이 보장하는 작업중지권을 쓸 수 없고, 건강검진도 자비로 해결해야 한다.

비임금노동자는 사회보험에서도 사각지대에 있다. 비임금노동자 규모가 850만명에 육박할 정도로 노동시장 양극화가 뚜렷해지고 있지만 법·제도는 현실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다. 대표적인 문제가 비임금노동자는 보편적 권리여야 할 육아휴직을 쓸 수 없다는 점이다.

일하는 사람은 누구나 소득 감소와 경력단절에 대한 걱정 없이 아이를 낳고 돌볼 수 있어야 한다. 고용형태와 관계없이 육아휴직을 보장하는 것은 국제적 추세기도 하다. 2021년부터 노무제공자에게도 고용보험이 적용되면서 학습지 교사·대여제품 방문점검원·퀵서비스·대리운전 기사 등 19개 직종은 출산전후휴가급여를 받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육아휴직급여 보장은 아직 “검토” 단계다. 경향신문은 지난 1일 노동절 전후로 육아휴직을 쓸 수 없어 발을 동동 구른 경험이 있는 비임금노동자 5명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육아휴직 없는 출산휴가는 ‘반쪽짜리’

생활가전업체 코웨이 방문점검원(코디·코닥)으로 경북 지역에서 일하는 강지연씨(36·가명)는 2022년 12월 셋째 아이를 낳았다. 코웨이 방문점검원은 회사와 위·수탁 계약을 맺고 제품 점검·영업을 하는 특수고용직 노동자다. 대여제품 방문점검원도 고용보험 당연가입 대상이 되면서 강씨는 첫째·둘째 아이 때와 달리 90일의 출산휴가를 쓰고 고용보험에서 급여를 받았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육아휴직급여가 보장되지 않으니 출산휴가 뒤 생후 93일인 막내를 어린이집에 맡길 수밖에 없었다. “100일도 안 된 아이를 봐주는 어린이집이 주변에 없어 원장에게 빌다시피 했어요. 아이를 맡기고 오던 첫날 엄청 울었죠. 나라에서 부모급여를 준다고 하지만 신랑이 버는 돈과 부모급여로는 아이 셋 키우기가 힘들어요.”

노동절인 지난 1일 국회 본청 앞에서 열린 ‘가전제품 방문점검원 근로자성 쟁취 기자회견’에 참여한 한 노동자가 손팻말을 들고 있다. 정효진 기자

노동절인 지난 1일 국회 본청 앞에서 열린 ‘가전제품 방문점검원 근로자성 쟁취 기자회견’에 참여한 한 노동자가 손팻말을 들고 있다. 정효진 기자

출산휴가 뒤 복귀 시점을 회사와 조율하는 과정도 쉽지 않았다. 그는 아이가 적어도 생후 6개월이 된 뒤 복귀하고 싶었다. 하지만 회사는 영업이 중요하다며 가능하면 빨리 복귀해달라고 했다. “회사는 ‘그래도 많이 좋아지지 않았냐, 출산휴가가 어디 있었냐’고 이야기했어요. 특수고용직이 이 정도면 고마워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 깔린 거죠.”

강씨는 출산 3개월 만에 현장에 복귀했지만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은 쉽지 않았다. 아이가 어리다 보니 어린이집에 오래 맡겨둘 수 없어 오후 5시쯤 하원을 시킨다. 그런데 맞벌이 고객 중 오후 6시 이후 점검을 요청하는 이들이 종종 있다. 강씨는 “아이를 하원시키고 데리고 있다가 신랑이 오후 8시쯤 퇴근하면 그제야 점검을 하러 갈 때도 있다”고 말했다.

서울 은평구에서 코웨이 방문점검원으로 일하는 최미혜씨(44)도 지난해 1월 늦둥이 셋째를 출산했다. 90일 출산휴가 뒤 온종일 육아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 일터로 돌아가지 못했고, 지난해 6월 결국 계약해지(퇴사처리)가 됐다.

아이 셋을 키우면서 들어가는 돈이 많다 보니 최씨는 지난 1월 출산 1년 만에 ‘재입사’를 했다. 다만 첫째·둘째 아이 초등학교 하교를 챙겨야 해서 오후 시간대는 일하는 게 쉽지 않다. “저희 마음 같지 않게 퇴근 이후인 오후 6~7시쯤 와달라는 고객이 적지 않아요. 어쩔 수 없이 토요일에 부모님에게 애를 맡겨놓고 그날 점검을 가기도 해요. 제품 점검보다는 영업이 수수료가 높은데 저는 고객 만나는 횟수가 적다 보니 영업이 어려워요. 한 달 내내 일하는 건 아니지만 버는 돈이 100만 원도 안 돼요.”

“고용형태 다르단 이유로 육아휴직 배제”

남성 노무제공자들도 육아휴직을 쓰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건 마찬가지다. 배우자가 육아휴직을 사용하더라도 아이 키우기가 쉽지 않다. 육아휴직의 보편적 보장이 중요하다는 점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광주에서 2017년부터 배달라이더로 일하는 박창현씨(34)는 두 아이(31개월·12개월)의 아빠다. 박씨는 지난해 말 플랫폼 노동자인 배달라이더도 육아휴직을 쓸 수 있는지 알아봤다. 갑자기 닥친 경제적 어려움 때문이었다.

아내는 육아휴직을 쓰고 있어 회사에 다닐 때보다 소득이 줄었다. 아이들이 감기로 번갈아 입원하면서 일을 할 수 없게 된 박씨 소득도 바닥을 찍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주택자금대출 상환 시기도 찾아왔다. “지난해 말쯤 소득보다 지출이 많아지면서 마이너스가 되기 시작했어요. 안정적인 지원 통로를 찾다 보니 육아휴직 생각이 났던 거죠. 배달라이더도 고용보험료를 내니까요.”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고용노동부 담당자의 답변은 간단했다. “배달라이더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라서 해당 사항이 없습니다.” 박씨는 맥이 빠졌다. 그는 “플랫폼 노동자가 빠르게 늘고 있는 만큼 구체적인 대책이 필요하지 않나”라며 “어려움에 부닥쳤을 때 사회보험 혜택으로 소득 감소를 견딜 수 있어야 하는데 고용형태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배제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 배달 노동자가 잠시 멈춰 종이에 무언가를 적고 있다. 한수빈 기자

한 배달 노동자가 잠시 멈춰 종이에 무언가를 적고 있다. 한수빈 기자

경기 성남시에서 코웨이 방문점검원으로 일하는 김병조씨(43)는 2022년 6월 또래보다 늦은 나이에 아빠가 된 이후 특수고용직 차별을 절감했다.

처음엔 회사원인 아내가 출산휴가 뒤 육아휴직을 이어 쓰면서 아이 돌봄을 맡았다. 아내는 “더는 육아휴직을 연장해줄 수 없다”는 회사 압박 때문에 지난해 1월 다시 출근을 했다. 아내의 직장 복귀로 육아를 전담하게 된 김씨는 지난해 3월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일을 3분의 1로 줄여야 했다. 월 소득은 100만원대로 주저앉았다.

일과 육아 병행은 쉽지 않았다. 지난해 여름 어린이집에서 데려온 아이를 아기띠로 업고 오후 6시 이후 와달라는 고객 집에 방문한 적도 있었다. “고객이 미안해하며 다음에 오라고 하더라고요. 애기 업고 하면 힘들다고 하면서요. 아이 데리고 방문했던 동료가 있다고 들었는데 제가 이렇게 될 줄은 몰랐네요.” 어린이집에 사정해 일을 마치고 뒤늦게 아이를 하원시킨 경우도 허다했다. 그는 “늦게 가면 아이가 삐쳐 있다. 한 살밖에 안 되는 녀석이 인상 쓰면서 나에게 안 오려고 한다”며 씁쓸하게 웃었다.

김씨는 아내와 상의 끝에 경기 군포시에 있는 처가로 지난 3월 들어갔다. 육아 때문에 일을 줄이다 보니 소득도 줄어 생활이 어려워진 게 결정적 이유였다. 은퇴한 장인이 ‘합가’ 이후 손자의 어린이집 등·하원을 맡고 있다.

김씨는 특수고용직 노동자라는 이유로 육아휴직급여를 받을 수 없는 걸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저도 일을 하는 사람인데 보호받지 못한다고 느껴져요. 수입이 많이 줄다 보니 지난 1년이라는 시간을 버티는 게 쉽지 않았어요.”

‘무늬만 프리랜서’ 벗어난 엄마…“늦었지만 육아휴직 써요”

전혜민씨(36·가명)는 한 정보기술(IT) 업체로부터 하도급을 받은 업체와 프리랜서 계약을 맺고 ‘콘텐츠 모더레이터’로 6년 넘게 일하고 있다. 콘텐츠 모더레이터는 재택근무를 하면서 인터넷 사이트의 유해·혐오 게시글이나 댓글을 모니터링해 삭제하는 업무를 한다.

전씨는 2022년 7월 첫아이를 낳았다. 코로나19 확진으로 열이 올라 출산예정일보다 한 달 일찍 출산했다. 그는 프리랜서였기 때문에 출산휴가도 육아휴직도 없었다. 출산 뒤 일주일간 격리를 마치고 산후조리원에 가자마자 노트북을 열고 일을 해야 했다. “관리자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동료들과 근무 일정을 조정해 더 쉴 수도 있었는데 여의치가 않았어요. 결국 일주일밖에 못 쉬었죠. 조리원 가서도 일을 계속해야 하니 아이가 분유를 먹게 돼 미안하고 속상했죠.”

[노동법 밖 노동자②]산후조리원에서도 노트북 열고 일했다

최근 전씨에게 큰 변화가 찾아왔다. 그는 올해 1월부터 프리랜서가 아닌 ‘정규직 노동자’로 일하고 있다. 회사는 2022년 말 콘텐츠 모더레이터가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라는 법원 판단이 나왔는데도 프리랜서 계약을 고수했다. 하지만 지난해 말 노동위원회에서 재차 노동자라는 판정이 나오자 회사는 노동자들을 직접고용하기로 했다.

‘무늬만 프리랜서’에서 벗어난 전씨는 올해 하반기 육아휴직 권리를 사용할 예정이다. “아이가 한 번도 쉬는 엄마를 본 적이 없어요. 엄마가 노트북 보고 있는 걸 싫어하더라고요. 뒤늦게나마 육아휴직을 쓸 수 있어서 다행이에요.”

콘텐츠 모더레이터 중 일부는 노동자성을 인정받았지만 방송사 등 여러 업종에서 여전히 무늬만 프리랜서로 남아 있는 이들이 적지 않다. 당연히 육아휴직을 쓸 수 있는 이들이지만 기업의 꼼수로 권리를 박탈당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예술인·특수고용직 노동자 등도 육아휴직급여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여야도 4·10 총선을 앞두고 특수고용직 노동자·자영업자 등이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공약했다. 전씨는 “총선 때 남발되는 공약으로 끝나지 않길 바란다”며 “유럽 일부 국가들처럼 육아휴직이 보편적 제도로 자리 잡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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