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것도 서러운데 “쉬려면 돈 내라”···다친 발로 택배차 운전합니다

박채연 기자

대체 인력 비용 요구하는 택배 현장

기사 용차비, 평균 하루 70만~80만원

“생계 걱정에 울며 겨자먹기로 일해”

‘택배 없는 날(택배 쉬는 날)’을 하루 앞둔 지난해 8월14일 서울 송파구 동남권물류단지에서 택배 분류에 쓰이는 레일이 멈춰 있다. 조태형 기자

‘택배 없는 날(택배 쉬는 날)’을 하루 앞둔 지난해 8월14일 서울 송파구 동남권물류단지에서 택배 분류에 쓰이는 레일이 멈춰 있다. 조태형 기자

‘아프면 쉴 권리’가 택배 노동자들에겐 여전히 그림의 떡인 것으로 나타났다. 택배 노동자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닌 특수형태근로종사자(특고)인 탓에 노동법의 도움을 받기 어렵다. 또 계약상 개인사업자로 분류돼있어 아파서 일을 하지 못해 발생한 손해도 오롯이 개인이 떠안는다. 수입이 줄어드는 것을 넘어 대체를 구하는 데 오히려 돈을 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20일 취재를 종합하면 충북 제천에서 일하는 쿠팡 퀵플레스 기사 A씨는 배송 일을 하며 발목을 자주 접질린 탓에 지난달 병원에서 자기공명영상(MRI) 촬영과 수술을 권유받았다. 하지만 A씨는 쉬는 동안 청구될 높은 ‘용차비(대체 인력 비용)’와 생계를 걱정해 아직까지 쉬지 못하고 있다.

하루 12시간 이상 평균 300~400개의 택배 물량을 처리하는 기사들의 용차비는 하루에 70만~80만원에 달한다. A씨는 “아기도 키우고 있어서 생활이 힘들어질까 봐 울며 겨자 먹기로 일하고 있다”고 했다.

A씨와 같은 대리점에서 일하는 기사 B씨는 지난달 말 배송 중 교통사고를 당해 입원했다. B씨에게 회사는 일하지 못한 기간에 대해 ‘택배 한 건당 2000원’이라는 용차비를 요구했다.

같은 대리점 기사 C씨는 지난달 무릎 염증으로 4주 휴식을 권고받아 대리점에 근무 조정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C씨는 고용노동부를 찾아가 ‘최대 작업시간이 일 12시간, 주 60시간을 초과하지 않도록 노력한다’는 계약서 내용을 들이밀었다. 돌아온 답은 ‘노동자가 아닌 개인사업자 신분이라 민사소송을 진행하라’는 답변이었다. 용차비를 생각하면 수개월이 소요되는 소송을 선택할 수 없었다. C씨는 “산재보험 휴업급여 제도가 있지만 용차비를 대기엔 부족하니 결국 일을 나와야 한다”고 했다.

정부는 2021년 ‘택배기사 과로사 방지 대책을 위한 사회적 합의 기구’의 논의 후 택배기사 표준계약서를 만들었다. 세 사람의 계약서에도 “작업 시간 중 건강 이상을 호소할 경우 긴급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고” 등의 내용이 포함돼 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이 같은 조항이 무용지물이다.

쿠팡 퀵플렉스 기사의 경우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CLS)와 계약한 각 지역 대리점과 용역계약을 맺고 일한다. 해당 대리점 대표는 지난 17일 기자와 통화하면서 “몸이 안 좋거나 경조사가 나면 기사가 용차를 구하고 쉬는 것이 택배 문화”라며 “기사들이 ‘난 다쳤으니 일 못 한다. 업체에서 대신 해야 한다’며 강경 대응하는 것”이라고 했다.

‘쉼 대신 일’을 택하는 택배 노동자들은 업계 전반의 분위기다. 지난달 26일 울산의 한 롯데택배 노동자는 과로로 인해 한 차례 쓰러진 상황에서도 생계유지를 위해 택배 업무를 지속하다 사망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는 지난 8일 “처음 증상이 발견됐을 때 생계 걱정 없이 입원과 검사, 치료를 진행했다면 벌어지지 않았을 일”이라며 “회사가 운영하는 상생제도는 용차비를 회사에서 지불하는 것뿐 생계에는 어떠한 도움도 주지 못한다”고 했다.

김혜진 ‘쿠팡노동자의 건강한 노동과 인권을 위한 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은 “택배 노동자들은 생계나 높은 비용 때문에, 혹은 본인이 쉬면 다른 사람들이 과도한 노동을 해야 하거나 계약 해지 및 입차 제한 등 불이익을 받을 수 있는 위험 때문에 쉬지 못한다”며 “아픈 것은 보통 본인의 의지와 무관한 사정이 있기 마련인데 택배 노동자에게 모든 책임을 물리는 것이 문제”라고 했다.

김 집행위원장은 “이들은 사실상 노동자이기에 병가가 가능해야 하고 상병수당도 지원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상병수당은 업무 외 이유로 노동자가 아파서 일하지 못할 때 일정 부분 소득을 보장해주는 제도다. 김 집행위원장은 “산재 인정까지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다른 나라에선 상병수당을 먼저 받고 산재가 인정되면 자연스럽게 지원 정도가 조정된다”며 “상병수당 제도가 시범 사업에 해당하고 지원 대상이 한정적인데 확대 적용돼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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