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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지키는 노동, 10명 중 9명이 ‘찔리고 베이고 다친다’

김송이 기자
서울 구로구에 있는 자원순환센터 재활용 처리장의 컨베이어 벨트에서 재활용품 선별원들이 분류 작업을 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사진 크게보기

서울 구로구에 있는 자원순환센터 재활용 처리장의 컨베이어 벨트에서 재활용품 선별원들이 분류 작업을 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재활용품 선별원 10명 중 9명은 근무 중 베이거나 찔리는 등 다친 경험이 있다는 실태조사 결과가 나왔다. 현행 폐기물관리법은 폐기물 수집·운반 노동자들의 안전기준만 담고 있어 선별 노동자를 위한 안전기준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1일 여성환경연대가 지난 6~7월 재활용품 선별원 77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노동안전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 93.2%는 ‘근무 중 베이거나 찔린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유리 조각에 찔린 비율이 44.2%로 가장 높았고, 주삿바늘 등 의료용품(24.2%), 플라스틱 조각(13.3%), 금속파편(11.5%)이 뒤를 이었다.

사업장에서 업무 관련 보호구를 받지만 안전하게 일하기에는 부족하다는 응답이 많았다. 오염물 전용 집게가 부족하다고 답한 응답자는 64.9%, 방진복이 부족하다고 답한 응답자는 58.4%였다.

지난 1년 동안 한 달에 한 번 이상 손과 손목에 통증이 있었다고 답한 사람은 92.2%이었다. 다른 부위의 통증은 어깨(79.2%), 허리(77.9%), 목(74%) 순이었다.

선별원들은 근무 중 먼지·분진, 악취와 소음 등에 시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건강에 나쁜 영향을 미치는 유해인자 중 ‘먼지·분진’이 심각하다고 답한 비율은 85.7%, ‘악취’가 심각하다고 답한 비율은 81.8%, ‘소음’은 77.9%였다.

폐기물 처리장의 여러 유해인자는 선별원들의 업무 스트레스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 경기도에 있는 한 선별장에서 5년째 일하고 있는 여성 A씨(68)는 “일한 지 5년이 지나도 독한 오물 냄새는 나아지지 않는다”며 “지하에 있는 시설이라 냄새가 빠지는 게 한정돼 있다 보니 머리가 아프다”고 말했다.

A씨는 재활용 선별에 대한 사회적 선입견이 악취 등 열악한 근무 환경을 방치하는 배경이라고 토로했다. A씨는 “5년 동안 주변 지인들이 ‘무슨 일 하느냐’ 물어도 솔직하게 말 한 적이 없다”며 “분리수거를 ‘그냥 냄새나는 일’이라고 보는 사회적 시선이 개선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재활용품 선별원은 강제력 있는 안전기준이나, 근무여건을 파악할 수 있는 공적 실태조사도 없이 일하고 있다. 폐기물관리법 제14조는 생활폐기물 수집·운반 노동자에 대한 안전기준을 담고 있지만, 운반 이후 진행되는 선별부터 소각·매립 등 과정에 대한 안전기준은 제시하지 않는다.

여성환경연대는 여성 노동자가 화학물질 노출에 더 민감하기 때문에 폐기물시설 노동자들의 성별을 분리한 기초 통계를 마련해야한다고 제언했다. 현재는 선별원들이 ‘단순노무직’으로 분류돼 폐기물 처리업 내 세부 통계가 없다.

안현진 여성환경연대 여성건강팀 팀장은 “환경부에선 한국의 재활용률이 굉장히 높다고 강조하지만 실제로 컨베이어 벨트 앞에 종일 서서 재활용 쓰레기를 손으로 재분류하는 중장년 여성들의 노고는 제대로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며 “폐기물 처리 시설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산업재해에 대해 관계 부처가 책임을 피하지 않고 적극적인 해결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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