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사소한 갈등을 이유로 경위서를 쓰고 인사조치를 당했다. 특정인과의 갈등을 폭로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MBC에서 이렇게 쉽게 사람이 쫓겨나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MBC 뉴스데스크를 진행하는)배현진 앵커에게 물을 잠그라고 지적했다가 인사조치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양윤경 MBC 기자(41)가 7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사옥내 카페에서 기자들을 만났다. 양 기자는 “MBC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리고 싶었을 뿐”이라며 당시 상황을 상세하게 설명했다.
2003년 MBC에 입사한 양 기자는 사회부, 경제부, 문화부 등을 거쳐 지금은 비제작부서인 미래방송연구소에서 4년째 일하고 있다. 양 기자는 최근 미디어오늘과의 인터뷰에서 2013년 배 앵커와의 사이에 벌어진 사건이 인사조치에 영향을 끼쳤다고 말했다. 여자화장실에서 배 앵커가 물을 틀어놓은 채 양치질을 하고 화장을 고치길래 짧은 말다툼을 한 뒤 경위서를 쓰고 진상조사단까지 꾸려졌다는 게 양 기자의 주장이다. 배 앵커는 2012년 언론노조 MBC본부의 파업 도중 노조를 탈퇴하고 <뉴스데스크> 메인 앵커로 복귀했다.
양 기자는 “사건 다음날 아침 출근 전에 노조 집행부에게 전화를 받았다. ‘배 앵커와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어왔는데, 상식적으로 납득은 안 되지만 전날 있었던 사건을 이야기하자 ‘회사에 난리가 났으니 알고나 나와라’고 했다”고 전했다. 출근한 뒤 그는 전날 사건에 대해 경위서를 쓰라는 지시를 받았다. ‘오늘 중에 인사조치가 될 것’이라는 말까지 전해들었다. 양 기자는 “정말 당황스러웠다”고 말했다.
“평소에도 선후배들에게 물 좀 잠그라고 편하게 이야기해왔고 이런 일화가 사보의 ‘칭찬합시다’ 코너에 실린 적도 있어요. 정치적으로 받아들이지 말아 달라고 했지만, 당시 취재센터장이 ‘나도 아는데 회사가 그런 상황이 아니지 않느냐’고 말하더라고요. 어떤 해명을 해도 소용이 없겠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얼마 뒤 정기인사 때 그는 주말 뉴스를 제작하는 기획취재부로 자리를 옮기게 됐고 이듬해 초 일산에 있는 미래방송연구소로 발령이 났다.
양 기자는 소위 ‘회사 측과 친한 직원’과 갈등을 빚은 직원에게 경위서를 받거나 징계를 하는 일이 드물지 않았다고 했다. “어떤 기자는 파업 중 대체인력으로 입사한 기자와 기사를 두고 사소한 충돌을 빚은 뒤 경위서를 쓰고 내근부서로 발령나기도 했다. ‘사측 직원’이 동향보고를 타이핑하고 있는 것을 봤다는 사람도 있다”고 그는 말했다. 심지어 ‘노선이 다른 직원’과 밥을 같이 먹지 않았다는 이유로 불려가 질책을 받은 사람도 있다. 이런 갈등이 불거질 때마다 파업에 참여했던 기자와 PD들이 하나하나 비제작부서로 밀려났다.
“회사는 당시 경영진이나 임원진들이 마뜩찮아하는 직원들에 대해 저처럼 인사를 내기 위한 수순을 밟았어요. 사측에서 부담스러워할 만한 부분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은 장기간에 걸쳐 쫓아냈습니다. 의도는 하나라고 봐요. 현 경영진이 지금의 위치에 있는 한 다시는 기자들에게 기자 일을 안 시키고, PD들에게는 PD 일을 안 시키고, 아나운서들에게는 아나운서 일을 안 시키겠다는 거죠”
그는 배 앵커와 있었던 일을 소상히 알리기로 한 것도 이 상황을 알리고 싶어서라고 말했다. 양 기자는 “배 앵커에게 앙금도 없고 그를 끄집어내 건드리고 싶은 생각도 없다”며 “다만 그런 위치에 있는 사람과 갈등이 있었다는 이유로 내가 수증기처럼 증발했다는 말을 하고 싶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비제작부서 발령 이후 그는 제대로 된 업무를 받지 못했다고 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아무 일도 하지 못하고 앉아있다가 퇴근하는 나날의 반복이었지만 실적은 보고해야 했다. 실적이 없으면 인사고과에서 최하 등급을 받는다. 이로 인해 징계를 받은 사람도 MBC 내부에 많다. 양 기자는 “정신적으로 고문받는다는 느낌을 받고 있다. 악의를 가지지 않고서는 이런 시스템을 만들 수 없다”고 말했다.
양 기자는 최근 자신과 동료 MBC 기자들이 겪은 일을 담은 웹툰 ‘상암동 김사장’을 온라인에 올려 화제를 낳기도 했다. ‘맛나면’이라는 라면을 만들던 라면 공장 MBC에 특이한 입맛을 가진 사장이 부임해 라면 맛을 망가뜨리는 내용으로, 지난 5년간 MBC 뉴스의 영향력이 하락하고 기자와 PD, 아나운서들이 비제작부서로 옮겨간 상황을 풍자했다. “웹툰을 그리고 인터뷰를 했다는 이유로 징계를 받을지도 모르지만 ‘MBC 안에 사람이 있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고 양 기자는 말했다.
“많은 분들이 MBC 구성원들을 향해 ‘지금까지는 뭘 하다가 이제 와서 이러냐’는 질문을 하시는 걸로 알아요. 하지만 현장에서 계속 문제제기하던 사람들이 있었고 그 사람들은 결과적으로 다 쫓겨났어요. 방송 정상화 에너지를 모을 수단이 모두 봉쇄된거죠. 이 상황을 알리고 싶은 마음이 절실했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시청자들이 MBC가 현재 처한 상황에 대해 조금이나마 더 알게 되셨으면 합니다” ‘징계가 두렵지 않느냐’는 질문에 양 기자가 한 대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