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내분이 여자배구 선수들의 ‘스타병’ 때문이라고?읽음

이진송 계간 홀로 발행인

여자배구를 통해 살펴보는 ‘스포츠의 성차별 정치’

여자배구 대표팀 선수들이 지난 8월 도쿄 올림픽 여자배구 8강전 터키와의 경기에서 승리를 확정한 후 어깨동무를 하며 환호하고 있다. 올림픽으로 불붙은 여자배구에 대한 관심과 인기는 자연스럽게 여자 프로배구 정기 시즌으로 이어졌다.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여자배구 대표팀 선수들이 지난 8월 도쿄 올림픽 여자배구 8강전 터키와의 경기에서 승리를 확정한 후 어깨동무를 하며 환호하고 있다. 올림픽으로 불붙은 여자배구에 대한 관심과 인기는 자연스럽게 여자 프로배구 정기 시즌으로 이어졌다.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올해 가장 ‘핫’한 스포츠를 꼽자면, 단연 여자배구다. 2020 도쿄 올림픽에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투지와 팀워크를 보여주며 4강까지 가는 기염을 토한 여자배구는 숱한 명장면과 유행어를 탄생시켰다. 마감이 임박해 글을 쓰는 나 역시 지금도 외치고 있다. “해보자, 해보자, 해보자, 후회하지 말고!” 올림픽이 끝난 후 여자배구 선수들은 각종 TV 프로그램에서 섭외 1순위였고, 관심과 인기는 자연스럽게 스포츠 종목 자체로 옮겨갔다. 여자배구는 개막 이래 케이블TV 생중계에서 프로야구와 프로농구를 누르고 시청률 1위를 기록하는가 하면, 경기장에 관중이 몰린다. 경기가 있는 날에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배구 관련 단어가 실시간 트렌드에 오른다. 그런 여자배구가 요즘 이래저래 시끄럽다. 오늘은, 여자배구를 통해 스포츠의 성별 정치학을 살펴본다.

최근 IBK 내분, 진실 공방보다
근거없는 ‘인기와 자만’에 초점

협회, 남자배구 잘나갈 땐 조용
여자배구 뜨니 “남자배구 살리자”
스포츠의 기본값 ‘남자’라는 편견
여성 팬도 선수만 좇는 ‘얼빠’ 취급

그럼에도 늘어나는 여성 팬들이
남성 중심 운동판에 균열을 낸다

가장 최근의 이슈는 IBK기업은행의 내분 사태이다. 팀의 주전 세터이자 주장이었던 조송화 선수와 김사니 코치가 팀을 이탈했다는 기사가 뜨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이후 구단은 서남원 감독과 윤재섭 단장을 동시에 경질한 후 복귀한 김사니 코치를 감독 대행으로 앉혔다. 조송화 선수에 대해서는 구단이 한국배구연맹(KOVO)에 임의해지를 신청했으나 선수의 동의가 없어 무산됐다. 내부 사정은 복잡하기 마련이고 진실 공방에서 입장은 대립할 수밖에 없다. 어느 쪽이 옳고 그르냐의 판단보다 집중해야 할 것은 이 사태를 다루는 언론의 보도 행태이다. 조송화 선수의 팀 이탈 이후 ‘프로의식의 부재’, ‘높은 연봉에도 무책임한 태도’ 등을 규탄하는 기사가 쏟아졌다. 전(前) 관계자로부터 선수 내부에서 고참 선수를 중심으로 한 ‘침묵의 카르텔’과 태업 행위가 있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왔고, 많은 언론이 이를 무비판적으로 받아 썼다. 비난과 비교가 난무하는 기사에서 일관되게 포착되는 것은 선수들의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는 출처 모를 욕망이다.

11월24일 자 이석희 기자의 마이데일리 기사를 보자. 제목부터 <“김연경 아니면서 김연경처럼 행동한다”…한 배구인의 ‘뼈 때리는 일침’>. 기사는 여자배구 선수들이 ‘헛바람’이 들어 결국 사고를 쳤다며, “여자배구의 인기가 남자배구를 웃돌자 선수들이 자만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말을 인용한다. 또한 1000만 관객 영화를 예로 들며 김연경 외의 선수를 엑스트라와 조연으로 격하한다. 한 배구인이 누구인지도 모르겠지만, 때려야 할 뼈가 있다면 팀 스포츠에서 선수들을 들러리 취급하는 자신의 머리뼈가 아닐까? ‘인기가 많아져서’ ‘자만심을 갖는다’. 이 두 문장 또한 근거 없이 인과관계로 묶였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여자배구보다 인기가 많았던 남자배구의 자만심은 어떻게 참았나요? 얼마 전 배구 선수 정지석이 연인을 폭행하고 불법촬영한 혐의로 피소되었으나, 한국배구연맹은 벌금 500만원을 부과하는 데 그쳤다. 출장정지나 자격정지가 아닌 경징계가 내려지면서 복귀 가능성이 커졌다. 그런데도 언론의 관심과 준엄한 꾸짖음은 여자배구 선수의 항명, 혹은 확인되지 않은 ‘스타병’에 쏠린다.

인기란 어떤 물체를 허공에 높이높이 띄우는 공기 같다. 많은 이들이 올려다보며 선망하지만, 바닥이나 면에 붙어 있어서 가려졌던 문제점이 드러나기도 한다. 여자배구가 인기를 끌면서 실체를 드러낸 것은 여자배구 선수들의 인성이 아니라, 여자배구를 노골적으로 차별하는 문화다. 나아가 여성 스포츠를 끊임없이 ‘주변부’로 주저앉히려는 사회의 시선이다. 김연경 선수는 꾸준히 여자배구의 열악한 처우 개선을 요구하고, 낮은 ‘샐러리캡’(salary cap)을 비판했다. 샐러리캡은 한 팀 선수들의 연봉 총액이 일정액을 넘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제도이다. 여자배구는 남자배구보다 성적도 좋고 인기도 많지만, 샐러리캡 금액이 적고 더 자주 동결된다. 현재는 2023년까지 동결된 상태이다. 그런가 하면 남자배구 유니폼과 다르게 여자배구 유니폼만 몸에 밀착되며, 바지가 짧고, 민소매다. 여자배구 선수들은 이 때문에 악의적인 사진 촬영과 성희롱에 더 쉽게 노출되고, 경기 때마다 맨팔에 구단 이름을 스티커로 부착하고 긁어내야 한다. 여성배구 선수들도 짧은 하의 때문에 생리대 착용이 어렵다는 점과 같은 불편함을 토로한 적 있다. 복장 규정 차이는 다른 운동 종목에서도 두드러진다. 선수들의 몸을 운동하는 주체로 존중하지 않고, 감상과 관음의 대상으로 스펙터클화하기 때문이다.

여자배구 팬들은 여자배구에 대한 차별을 ‘공부 잘하는 장녀가 아들 기 죽일까봐 전전긍긍하는 부모’로 비유하며 자조한다. 두 보호자의 이름은 배구협회와 배구연맹. 2014년 아시안게임에서 여자배구가 금메달을 땄을 때 김치찌개로 회식해 공분을 샀던 곳은 배구협회(아마추어와 국가대표를 담당)다. 배구연맹은 최근 국제 경쟁력을 잃은 지 오래인 데다 국내 인기도 하락세인 남자배구 살리기에 나섰다. 2~3년 내에 남자배구 이미지를 제고하는 방안을 마련하겠다며 제도적 논의와 대대적인 마케팅을 예고했다. 남자배구가 인기를 끌 때 연맹이 여자배구를 방치하다시피 한 것과 대조적이다. 여자배구가 남자배구보다 인기가 덜한 것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반면, 여자배구가 자생력으로 살아남아 전성기를 꽃피우자 부랴부랴 남자배구 지원에 나섰다. 남자배구가 여자배구보다 못 나가면 안 되니까. 이러한 내용을 보도하는 기사의 제목은 <남자배구 기 살리자! 머리 맞댄 KOVO와 구단들>. 앗! 최근 SNS를 후끈 달군 책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나는 자라면서 ‘남자 기 죽인다’는 말을 숱하게 들었다… 한국 남자의 기는 내가 기억하는 지난 40여년간 줄곧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이숙명, <나는 나를 사랑한다: 나를 잃지 않고 타인을 사랑하기 위하여>, 북로망스, 2020)

이는 결국 남자 종목의 운동이 더 재미있고, 더 중요한 ‘진짜’ 스포츠이며, 남자 운동선수가 기본값이라는 사유를 바탕으로 한다. 스포츠 자체가 남성 헤게모니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행위이다. 한 사회에서 몸은 성별의 차이를 보여주는 가장 경험적이고 구체적인 상징이고, 스포츠는 문화화된 남성과 여성의 몸을 특정 형태로 생산하는 사회적 실천이다(김은실, 2001). 스포츠 영역에는 다양한 우월성이 있다. 그중 소위 남성적인 것으로 판단되는 가치가 평가에서 앞선다. 강인함, 박력, 속도… 물론 이 모든 것이 여성 스포츠에도 있다. 그러나 부각되지 않으며 지워진다. 여자배구는 ‘아기자기’하다는 중계처럼. 이렇게 남성의 고유한 특성인 것처럼 탈각된 어떤 가치는 사회적 우월성으로 인식되고 전환된다. 스포츠는 남성적인 몸과 힘을 찬양하고 사랑하며, 이 장에 편입한 여성들에게는 가능한 한 ‘덜’ 남성적이기를 요구한다. 여성 선수를 남성화하며 조롱하는 것은 오랜 수법이다(김연경 선수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자주 ‘연경이 형’이라고 불렸다). 성별에 따라 사회적 삶이 다르게 조직되는 성별 체계의 사회 속에서 스포츠 활동은 남성과 여성을 다른 방식으로 관련되게 한다. 스포츠는 사회가 갖는 다양한 사회·문화적 규범과 권력관계를 내포한다(김나연, 2003).

이렇게, 스포츠 세계에는 성별로 인한 차별적 규제가 존재한다. 여자배구는 한 예시일 뿐, 모든 종목에 해당하는 사안이다. 차별은 다시 여자배구를 보는 여성 팬들에게로 전이된다. 올림픽 이후 급증한 여성 배구팬들을 ‘아이돌 팬’에 비유하며 이들은 경기에는 관심 없고, 선수를 가까이서 보고 싶어 한다는 해석은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빠순이 멸시’와 결이 같다. 남성은 늘 게임을 이해하고 ‘진정으로 즐기는’ 사람으로 간주되며 선수와 동일시되는 연계 속에 존재한다. 반면 여성은 오랫동안 ‘얼빠’, ‘분내’, ‘오빠부대’라는 멸칭으로 불렸다. 여성 스포츠 선수를 좋아할 때도 마찬가지다. 그 여성 선수가 남성적이어서, 운동에 대해서는 알지도 못하면서…. 여성 팬들은 ‘진짜’ 팬이 아니라는 의심과 경멸.

하지만 차별로 기울어진 운동 판에 균열을 내고 선수들과 함께 저항하는 것 또한 이러한 여성 팬들이다. 여자배구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남녀의 유니폼 차이가 공론화되고, 이성 관객에게 선수들을 두고 이상형 월드컵을 시키는 기이한 문화를 비판하는 일이 가능해졌다. 과거 여자농구에 잠깐 쫄쫄이 유니폼이 등장했을 때 이를 적극적으로 제지한 것 또한 여성 팬들이었다. 차별에 공감하고 부당한 조치에 함께 목소리를 높이는 여성 팬들의 존재가, 스포츠 문화와 경험을 새롭게 구성할 것이다.

이진송 계간 홀로 발행인

이진송 계간 홀로 발행인

참고문헌
- 김은실, <여성의 몸, 몸의 문화정치학>, 또하나의문화, 2001.
- 김나연, <여성의 스포츠 활동을 통해 본 성별정치학 : 팀 스포츠를 중심으로>, 이화여자대학교 여성학과 석사학위 논문,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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