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 난무’ 포털 뉴스 댓글창…폐지가 답일까?

송윤경 기자
한 포털사이트의 이용자가 뉴스에 댓글을 달고 있는 모습.  우철훈 선임기자

한 포털사이트의 이용자가 뉴스에 댓글을 달고 있는 모습. 우철훈 선임기자

혐오 댓글을 신고했다. 24시간이 지나도록 댓글은 삭제되지 않았다. 댓글은 소수가 달고 다수가 읽는다. 다들 ‘나는 영향받지 않는다’ 생각하지만 누구나 영향받는다. 덕분에 댓글창 폐지론도 나온다. 대신 유튜브 등에 풍선효과도 우려된다. 그동안 방치한 언론과 정치권력도 공범이다. 시민 다수가 혐오 댓글 차단 의식을 공유해야 한다. 해외 언론의 적극 관리 정책도 본받을 만하다.

지난 7월 3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는 매일 퇴근시간에 서울 혜화역에서 장애인 이동권 예산 확대의 필요성을 알리는 선전전을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한국의 장애인 정책예산 비중(0.6%)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2.14%)의 3분의 1 수준. 전장연은 그간 “예산에 맞춘 제도가 아니라 필요한 제도에 맞는 예산을 편성해야 한다”고 지적해왔다. 전장연은 “기획재정부가 내년도 예산안에 장애인특별교통수단 예산 3350억원을 반영해 국회에 제출할 때까지 선전전을 계속하겠다”면서 “시위로 인한 열차 지연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전장연 활동가들은 열차 탑승을 시도했지만 서울교통공사에 의해 저지됐다.

[주간경향] 포털사이트 네이버에 올라와 있는 전장연 관련 최신 뉴스의 내용이다. 전장연의 요구사항인 ‘장애인특별교통수단 예산 확대’와 이들의 활동계획에 대한 시민들의 생각은 어떨까. 댓글란을 살폈다. 의견이라 보기 어려운 ‘감정 배설’을 발견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죽음’을 언급하는 혐오 댓글이 여러 건 눈에 들어왔다.

혐오표현이란 무엇인가. 어떤 개인, 집단이 가진 속성을 이유로 편견, 차별을 조장하거나 멸시, 모욕, 적의를 드러내고 폭력을 선동하는 표현을 말한다. 폭력을 정당화하는 문제의 댓글을 두고 ‘혐오냐 아니냐’를 따지는 일은 한가하게 느껴졌다. 사람이 사람에게 해서는 안 될 표현이라는 걸 굳이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이 명백한 혐오 댓글들을 지우고 싶었다. 네이버·다음(카카오) 등이 회원인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KISO)는 지난 4월 28일 “혐오표현으로 인한 피해의 예방 및 구제 절차”를 담은 ‘혐오표현 자율정책 가이드라인’(혐오표현 가이드라인)을 발표한 바 있다. 미디어·법학 등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혐오표현심의위원회가 4개월여에 걸쳐 만든 이 가이드라인은 발표 직후부터 각 포털 사이트에 적용됐다.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회원사는 혐오표현을 ‘가리거나 노출을 제한하는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고, 혐오표현 여부를 판단하기 힘들다면 혐오표현심의위원회에 심의를 요청할 수 있다.

해당 혐오표현의 방치가 ‘가이드라인 위반’은 아닌지 혐오표현심의위원회 측에 물었다. “혐오표현에 대한 삭제 등의 조치는 포털의 몫이며 심의위원회는 포털이 요청한 사안에 대해 혐오표현인지 여부를 심의할 뿐”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심의위원회는 “(우리는) 포털이 혐오 댓글 삭제 등의 조치를 얼마나 제대로 하고 있는지 평가하는 기구는 아니다”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네이버 댓글 정책에 따라 ‘신고’를 해봤다. ‘욕설/생명경시/혐오/차별적 표현입니다’에 체크한 뒤 조치를 기다렸다. 댓글은 24시간이 넘어도 사라지지 않았다. 언론을 담당하는 네이버 관계자에게 문의했다. 이 관계자는 “‘클린봇’이 부적절한 표현을 탐지해 삭제 처리하고 있지만 완벽하지는 않다. 앞으로 더 노력하겠다”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그 기사 링크를 공유해주시면….” 몇 분 뒤 해당 댓글은 “운영규정 미준수로 인해 삭제”됐다. 그러나 ‘쓰레기’를 거론하며 폭력을 ‘선동’하는 내용의 또 다른 혐오 댓글들은 그대로였다.

수가 쓰고 다수가 읽고 포털뉴스의 댓글은 누가 달까. 한국언론진흥재단의 ‘2021 언론수용자조사’에 따르면 ‘지난 1주일 동안 뉴스에 댓글을 단 적이 있다’고 답한 이들은 100명 중 6~7명(응답자 3976명의 6.8%). 반면 댓글을 읽는 사람은 100명 중 62명(61.7%)이었다. 지난해 2월 한국리서치 조사에선 ‘항상’ 혹은 ‘종종’ 뉴스 댓글을 읽는 이들의 비중이 100명 중 88명(응답자 1000명 중 88%)이었고, 그중 42명은 댓글 많은 뉴스를 골라 읽고 있었으며 27명은 뉴스보다 댓글을 먼저 읽었다.

댓글 세계는 ‘소수 이용자의 독과점’ 상태에 가깝다. 2020년 12월 SBS와 이원재 카이스트 교수팀의 분석에 따르면 댓글 작성자의 10%가 전체 댓글의 73(다음)~75%(네이버)를 쓰고 있었다. 이처럼 소수가 지배하는 댓글창이 혐오·모욕·폭력성 댓글로 얼룩진 것은 하루 이틀의 얘기는 아니다. 특히 성소수자, 장애인, 이주민, 재난 참사의 피해자 등을 집중적으로 다룬 보도일수록 혐오 댓글은 두드러진다. 국민일보와 이원재 카이스트 교수팀이 지난해 이태원 참사 직후의 댓글 123만여 건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참사 관련 뉴스 댓글의 절반 이상(58.27%)은 ‘혐오 댓글’이었다.

10·29 이태원 참사 100일을 이틀 앞둔 지난 3월 3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 참사 현장에서 시민들이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이태원 참사를 다룬 뉴스의 포털 댓글의 절반 이상은 ‘혐오성 댓글’이었다는 분석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성동훈 기자

10·29 이태원 참사 100일을 이틀 앞둔 지난 3월 3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 참사 현장에서 시민들이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이태원 참사를 다룬 뉴스의 포털 댓글의 절반 이상은 ‘혐오성 댓글’이었다는 분석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성동훈 기자

혐오 발언을 분류해내는 프로그램 ‘헤이트스코어’를 개발한 강태영 언더스코어 대표는 “악성댓글의 비중이 포털 뉴스 댓글창은 약 40% 정도”라고 본다. 2016년 인권위원회조사(혐오표현 실태조사 및 규제방안 연구)에 따르면 시민들이 ‘온라인 혐오표현’을 가장 많이 경험한 곳 1위는 뉴스(기사·영상) 댓글이었다.

나는 영향 안받는다? 혐오가 난무하는 댓글창을 두고 혹자는 ‘무시하면 된다’고 말한다. ‘나는 혐오 댓글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생각에서 나오는 해결책(?)이다. 혹시 혐오 댓글에 휘둘리지 않을 ‘자신’이 있다면 당신만 그런 것은 아니다. 미디어가 자신보다는 다른 사람들에게 더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생각하는 것을 ‘제3자 효과’라고 하는데 혐오 성격이 두드러지는 댓글에 대해선 이 효과가 커진다고 한다(‘혐오성 댓글의 제3자 효과’ 조윤호·임영호·허윤철).

그러나 우리 누구도 혐오 댓글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나는 영향을 안 받는다’는 생각이 사실이 아닐 가능성도 높지만(범죄기사와 지역감정 조장 댓글을 함께 본 경우 특정지역에 대한 편견이 증가함을 보여주는 실험 연구가 있다), 이 생각을 받아들이더라도 ‘혐오 댓글에 영향받는 다른 사람들’을 상정함으로써 자신의 여론 인식이 왜곡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악성 댓글이 여론 지각에 부정적 영향을 준다는 연구(‘인터넷 뉴스 댓글이 여론 및 기사의 사회적 영향력에 대한 지각과 수용자의 의견에 미치는 효과’, 이은주·장윤재)가 나온 건 이미 15년 전 일이다.

박경석 전장연 공동대표가 지난 1월 20일 서울 지하철 4호선 삼각지역에서 오이도역 리프트 추락 참사 22주기를 맞아 헌화하고 있다. 지난해 전장연의 장애인 이동권 시위를 다룬 뉴스 댓글창에는 대규모의 혐오 댓글이 쏟아진 바 있다.  성동훈 기자

박경석 전장연 공동대표가 지난 1월 20일 서울 지하철 4호선 삼각지역에서 오이도역 리프트 추락 참사 22주기를 맞아 헌화하고 있다. 지난해 전장연의 장애인 이동권 시위를 다룬 뉴스 댓글창에는 대규모의 혐오 댓글이 쏟아진 바 있다. 성동훈 기자

이은주 서울대 교수는 혐오 발언을 다룬 강연집 <헤이트>(마로니에북스)에서 “<퍼블릭 오피니언>이라는 고전에서는 ‘객관적 실재로서의 세계’와 ‘우리 머릿속의 현실에 대한 그림’을 연결시켜주는 역할을 언론이 한다고 본다”면서 “오늘날은 온라인에서 접하는 다수의 이름 모를 사람들이 올리는 글들이 비슷한 방식으로 현실 인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 많은 연구에서 보고됐다”고 설명한다.

무엇보다 혐오 댓글은 당사자들에게 극한의 고통을 안긴다는 점에서 더는 방치할 수 없는 문제다. 혐오·모욕으로 점철된 댓글들로 고통받다가 생을 마감한 이들을 우리는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다. 이태원 참사 46일 뒤 자살한 A군은 숨지기 직전 혐오·모욕 댓글에 고통을 받아왔다고 한다. A군의 유족은 인터뷰(MBC 뉴스데스크, 12월 14일)에서 “(A군이) 희생된 친구들을 모욕하는 댓글들을 보면서 굉장히 화를 많이 냈다”고 전했다.

“너무 지쳤어요. 삶도, 겪는 혐오도, 나를 향한 미움도.” 전직 음악 교사이자 퀴어 활동가였던 고 김기홍씨가 2021년 유서에 남긴 말이다. 김씨와 같은 성소수자들이 주인공이 되는 ‘퀴어 축제’를 다룬 보도의 포털 댓글창은 올해도 혐오 발언들로 얼룩졌다. 가수 설리씨와 구하라씨, 프로배구선수 고유민씨는 생전 악성 댓글에 고통받아왔고, 이들의 죽음은 포털뉴스의 연예·스포츠 댓글창 폐쇄로 이어졌다.

지난해 7월 서울광장에서 열린 ‘서울퀴어문화축제’에서 시민들이 잔디밭에 무지개 깃발을 펼쳐놓은 채 행사를 즐기고 있다.  한수빈 기자

지난해 7월 서울광장에서 열린 ‘서울퀴어문화축제’에서 시민들이 잔디밭에 무지개 깃발을 펼쳐놓은 채 행사를 즐기고 있다. 한수빈 기자

“차라리 댓글창 닫자” vs “적극적 관리부터” ‘혐오가 넘쳐 흐르는 댓글창’을 어떻게 할 것인가. 뉴스와 댓글, 혐오 발언을 오래 들여다본 미디어·사회학·법학·여성학 연구자들과 미디어 노동자들 사이에서는 ‘댓글창 폐지론’이 나오기 시작했다.

언론학자인 김민정 한국외대 교수는 2021년 3월 한겨레 시민편집인으로서 쓴 칼럼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 금지를 말하는 보도내용과 별개로) 댓글란에선 혐오의 언어가 넘쳐난다. 이 상황을 방치해선 안 된다”면서 “혐오의 언어를 걸러내기 위한” 댓글창 폐쇄를 촉구했다.

권김현영 여성현실연구소장도 지난해 12월 한 칼럼을 통해 “인터넷 포털뉴스 댓글 이제는 없애자”고 제안했다. 권김소장이 생각하는 방향은 이렇다. “기사의 댓글창을 일단 모두 닫고 예외적으로만 열면서 댓글 토론의 주제, 규칙을 정하고 토론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댓글창이란 공간에 대해 언론·포털이 책임을 지게 하자는 것이다.”

댓글창을 폐지하면 ‘온라인 공론장’이란 순기능이 사라지므로, ‘혐오표현을 적극 삭제’하는 등으로 방법을 더 강구해야 한다고 보는 학자들도 있다. 최진봉 성공회대 교수는 “한국처럼 언론 지형이 이념적으로 명확하게 구분되는 상황에서 댓글이 사라진다면 ‘편파적이다’, ‘가짜뉴스다’라는 지적들까지 함께 사라지는 것”이라면서 “뉴스로 돈 버는 포털이 혐오표현이 올라오는 대로 적극 삭제하고, 혐오표현을 자주 사용한 이용자는 퇴출하는 방식으로 관리를 하면 된다. 혐오 댓글 때문에 댓글창을 닫자는 것은 자유로운 의사소통을 막는 것”이라고 말했다.

‘혐오표현을 적극적으로 지우고 해당 이용자에 벌칙을 부과하면 된다’는 이 같은 주장에 대해 권김소장은 “특정 표현을 삭제하면, 그 표현을 우회하는 방식의 혐오표현이 생겨난다는 사실이 확인되고 있지 않느냐”면서 “지금의 댓글 공간은 이미 온라인 공론장으로서 기능할 수 없기 때문에, ‘공론장이란 순기능을 살리냐 아니냐’라는 프레임부터 틀렸다고 본다”고 말했다.

사회 약자를 혐오하는 ‘일베’적 사고방식이 광범위하게 퍼져나가고 있음을 지적한 <보통 일베들의 시대>(오월의 봄)의 저자 김학준 독립연구자도 “포털뉴스 댓글엔 공론장 기능이 없다”고 본다. 그는 “수많은 사람이 동시에 모인 온라인 공간에서의 ‘말’은 결국 자극, 도발, 흥분의 언어놀이 성격을 갖고 있을 수밖에 없다”면서 “최소한 포털뉴스에선 댓글이 없어져야 하고, SNS의 댓글 공간 역시 (해당 계정이) 일정한 팔로워 수를 넘긴다면 계정주든 플랫폼이든 책임을 갖고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포털사들의 혐오표현 가이드라인 심의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장기적 교육’과 ‘관리’를 병행해야 한다고 본다. 그는 “사실 법적 처벌이 가장 강력하겠지만 사후대책일 수밖에 없고, 부작용도 크다. 댓글창의 순기능도 무시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면서 “혐오, 차별, 배제를 담은 주장이 어떻게 민주주의와 공동체를 해치는지를 학교와 사회에서 적극 교육하면서 현재 마련된 것과 같은 포털사 혐오표현 가이드라인 규제가 더 적극적으로 활용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의 ‘혐오표현 자율정책 가이드라인’ 캡처.  한국인터넷자율정책가구 홈페이지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의 ‘혐오표현 자율정책 가이드라인’ 캡처. 한국인터넷자율정책가구 홈페이지

시민들이 혐오표현에 맞서는 대항표현 댓글이 많이 쓰는 것도 댓글창 정화 방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실제로 2021년 익명의 여성주의자들이 모여 결성한 ‘화로’(구 여혐방역대)팀은 뉴스·유튜브 댓글창에서 여혐댓글에 맞서는 대항표현 댓글 게시 운동을 펼치고 있다. 이들은 트위터를 통해 여성들에게 대항적 댓글쓰기를 독려하기도 하고, 성범죄 기사의 경우에는 ‘댓글창 폐쇄’ 운동도 펼친다.

다만 포털 뉴스창엔 이미 혐오표현이 만연해, 웬만한 ‘대항’ 으로는 정화가 쉽지 않다는 게 문제다. 한국 사회의 혐오 현상을 연구해 온 홍성수 숙명여대 교수는 “혐오댓글에 카운터스피치(맞받아치기 등의 대항표현)로 맞서는 것은 매우 유용하고 좋은 전략이지만, 포털뉴스 댓글창은 기울기가 너무 심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면서 “댓글창을 관리하는 주체가 기계적 중립이 아니라 카운터 스피치가 용이하도록 지원하는 방법도 고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홍 교수는 그러면서 “적어도 포털이나 언론사의 뉴스 댓글창과 같은 온라인 ‘공적’ 공간은 혐오로부터 안전하도록 (플랫폼과 언론이) 책임을 갖고 관리해야 한다”며 “‘이렇게 할 거라면 닫는 게 낫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 만큼 현재 상태는 심각하다”고 말했다.

댓글창 폐지든, 관리든 혐오을 허용하지 않는 공적 공간을 조성할 책임 인식부터 해야 한다는 얘기다.

혐오 댓글 부추긴 언론·정치권 반성부터 댓글창 ‘폐지’든 ‘삭제 관리’든 염두에 둬야 할 변수도 있다. 혐오표현 제재에 대한 이용자들의 수용성이다. 혐오 발언을 분류해내는 프로그램 ‘헤이트스코어’를 개발한 강태영 언더스코어 대표는 “댓글창 폐지 후 이용자들이 (포털이 아닌) 유튜브 등 다른 공간에 몰려가 혐오 발언을 퍼붓는다면 온라인이 시궁창인 것은 똑같다. 포털은 국내기업이지만 외국 플랫폼엔 정책적 수단마저 쓸 수 없게 된다”면서 “엄격한 삭제관리도 가능하겠지만, 이용자들이 ‘재미없다’면서 다른 공간으로 떠나는 순간 결과는 (댓글창 폐지와) 유사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이미 댓글창이 폐지된 스포츠·연예 분야에선 커뮤니티로의 혐오표현 풍선효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결국 넘쳐나는 ‘혐오성 댓글’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억제하느냐는 우리 사회가 혐오를 얼마나 단호하게 차단할 분위기를 갖추고 있느냐와 맞물려 있다. 시민 다수가 ‘혐오 댓글 그만’이라는 시그널을 받아들인다면 혐오를 배설할 ‘대체 창구’로 몰려가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혐오 댓글창’ 해법 모색의 첫 단계는 그간 혐오 댓글을 유도·방치한 언론과 정치권의 뼈저린 반성인지도 모른다. 댓글 폭력의 구조를 살핀 책 <우리 모두 댓글 폭력의 공범이다>의 저자인 정지혜 세계일보 기자는 책을 통해 “댓글창이 망가진 공론장의 오명을 갖게 된 데는 언론의 실책도 크다”면서 “포털에 좌판을 깔고 조회 수 낚시 기사를 써댄” 언론사 역시 ‘공범’임을 꼬집었다.

언론에 포털의 ‘혐오성 댓글’이 조회 수를 돈으로 환산하는 과정에서 생성된 부산물에 가까웠다면, 정치권에는 혐오성 댓글이 ‘표’였다. MB 정권은 국정원, 경찰 등을 동원해 노조, 세월호 유족 대상 혐오를 배설하는 ‘댓글 부대’를 운영했다. 댓글 추천 수 조작으로 여론을 움직이려 했던 ‘드루킹 사건’으로 민주당 측 역시 ‘댓글창을 망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처지다.

2017년 ‘국정원 댓글’ 사건을 수사했던 검찰이 국정원 퇴직자 모임인 양지회의 서울 서초구 사무실을 압수수색한 뒤 압수물을 옮기고 있다.   연합뉴스

2017년 ‘국정원 댓글’ 사건을 수사했던 검찰이 국정원 퇴직자 모임인 양지회의 서울 서초구 사무실을 압수수색한 뒤 압수물을 옮기고 있다. 연합뉴스

해외 언론사들의 댓글 정책 사례를 참고할 필요도 있다. 영국과 미국에서 주간지를 내는 ‘더 위크’ 편집장 벤 프루민은 2015년 댓글창을 폐지하며 이렇게 밝혔다고 한다. “가장 현명한, 최선의 생각을 독자들에게 전달해야 한다는 우리의 (저널리즘적) 임무에 반한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하루 30개 내외의 기사와 칼럼에만 댓글을 달 수 있고, 뉴욕타임스는 15% 정도의 기사에만 댓글창을 연다. 뉴욕타임스의 경우 모든 댓글은 관리자의 검토를 거쳐 게시 여부가 결정된다. ‘댓글 운영정책에 대해 과도하게 논의하는 댓글’조차 퇴출시킬 만큼 기준이 엄격하다. 노르웨이 공영방송 NRK는 기사 내용과 관련된 퀴즈를 풀어야만 댓글을 달 수 있게 하는 ‘노투코멘트’(know2comment)라는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아직은 일부 기사에만 적용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외 언론의 댓글창이 축소되고 있다’고만 해석하는 것도 곤란하다. 최지향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교수는 ‘신문과 방송’(2022년 9월호) 기고문을 통해 이렇게 지적했다. “2010년대 중반 많은 해외 언론사가 뉴스 댓글 기능을 폐지하면서 온라인 기사 댓글은 소멸할 것이라는 예측이 대두되기도 했지만, 지금도 기사 댓글 기능은 없어지지 않았고 도리어 그 기능을 강화하는 언론사도 있다.” 요컨대 해외 언론사 사례는 폐지하든 관리하든, 댓글 공간에서도 저널리즘적 책무를 놓지 않으려는 노력으로 봐야 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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