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YT “한강 작품은 가부장·여성혐오적 한국 문화에 대한 저항”

박병률 기자

“소설가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한국 최고의 문화적 업적으로 축하받았지만, 그의 작품은 한국 문화에 대한 저항의 한 형태를 표현하고 있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12일 ‘한 여성이 한국 최초의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이는 많은 것을 말해준다’ 제하의 기사에서 이같이 진단했다.

NYT는 한강 작가를 비롯해 한국 여성 작가들이 보여주는 글쓰기는 여전히 매우 가부장적이고, 때로는 여성 혐오적인 한국 문화에 대한 저항의 한 형태라고 보도했다.

출처-NYT

출처-NYT

문화체육관광부가 현재의 이름을 갖춘 2008년 이후 여성 수장은 단 한명이었다. 이전까지 남성 중심의 한국 문학 평론계는 첫 노벨문학상 유력 후보로 고은 시인을 꼽아왔다. NYT는 “고은 작가가 성 추문에 휩싸이기 전까지 노벨문학상 발표 시기가 되면 작가의 집 앞에 기자들이 모여 대기했지만, 한강 작가는 이 같은 군중을 모은 적이 없다”고 밝혔다.

단편소설집 ‘저주토끼’를 쓴 작가 정보라는 NYT에 한강 작가를 비롯해 한국의 여성 작가들의 글쓰기는 “반대와 저항의 한 형태”라고 말했다.

한국의 노벨상 수상자는 평화상을 받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한강 작가 등 2명이다. 이들 모두 분단, 전쟁, 군사독재, 민주주의와 노동권을 위한 피비린내 나는 긴 투쟁 등 격동의 현대사와 깊이 관련 있다고 NYT는 전했다.

특히 한강 작가의 작품은 무거운 역사적 짐을 다루면서 페미니즘 시각도 담고 있다고 NYT는 평가했다. 작품 ‘채식주의자’에서 주인공이 육식을 피하려는 것은 가부장적 체제에 대한 저항의 행위로 읽힐 수 있다는 것이다.

시민들이 지난 11일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광화문점에서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한강 작가의 책을 구매하고 있다./한수빈 기자

시민들이 지난 11일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광화문점에서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한강 작가의 책을 구매하고 있다./한수빈 기자

NYT는 여전히 여성들이 정치, 경제, 뉴스 미디어에서 차별받는 한국 현실에서 문학은 여성이 자신의 힘을 표현하는 창구라고 전했다.

한국계 미국인 작가 크리스 리는 “(문학은) 성별에서 벗어날 수 있는 몇 안 되는 공간 중 하나”라며 “모든 연령대와 모든 성별을 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전문직 여성 계층이 증가하면서 한국 문학 시장에 여성 독자들이 더욱 강력해졌고, 국내외에서 성폭력에 반대하는 행동주의가 증가하면서 여성의 목소리에 대한 갈증도 생겨났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강 작가에 대해 “가부장적 체제와 폭력의 현대사를 가진 나라에서 자란 특정 세대의 여성”이라며 이것이 그의 작품을 말해준다고 전했다.

소설가 한강이 지난 2016년 소설 ‘흰’ 출간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책에 대해 말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소설가 한강이 지난 2016년 소설 ‘흰’ 출간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책에 대해 말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영어로 번역되는 한국 여성 작가들의 책 다수는 모성이나 신체의 이미지와 같이 전형적인 주제를 다뤘다.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 신경숙 작가의 ‘엄마를 부탁해’ 등이 국제적으로 관심을 얻었지만, 이제 독자들은 페미니즘 소재 이상의 작품을 원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NYT는 전했다.

‘엄마를 부탁해’ 등 많은 한국 소설을 영어로 번역한 번역가 김치영은 “30년 전 영어로 번역되는 것들은 매우 문학적인 작품들이었지만, 지금은 공상과학, 판타지, 회고록 등이 번역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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