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탄의 히딩크’故 강병찬 감독

브라질과 독일의 2002 한·일월드컵 결승전이 벌어진 지난 6월30일 히말라야산맥 동쪽 끝 부탄의 수도 팀푸(해발 2,550m)에서 해외토픽이 날아들었다. FIFA랭킹 202위인 부탄과 203위로 최하위인 카리브해의 영국령 몬세라트간의 ‘꼴찌 월드컵’에서 부탄이 4대 0으로 이겼다는 소식이었다.

그러나 부탄의 승전보는 한 가족과 국내축구인에겐 남의 얘기가 아니었다. 지난 5월 중순 암으로 타계한 강병찬 전 상업은행 감독이 2000년 말부터 올해 초까지 부탄 축구국가대표팀을 맡아 이만큼이나마 키웠기 때문이다. 또 이날은 마침 강감독의 49재여서 감회는 더욱 남달랐다.

“그이는 황무지를 개척하고 싶다고 했어요. 부탄에서 ‘축구의 아버지’가 되겠다는 포부를 안고 뛰어들었는데…. 그래도 남편이 가르친 팀이 이겨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 강감독의 부인 오남희씨(51)는 북받치는 감회 때문인듯 눈물을 글썽였다.

강감독이 부탄으로 간 것은 2000년 11월. 1999년 쿠웨이트에 0대 20으로 패배한 뒤 해체 위기까지 몰린 부탄대표팀의 발전을 위해 아시아축구연맹(AFC)이 우리 축구협회에 감독 추천을 의뢰, 강감독이 히말라야행에 나선 것이다. 면적 4만6천5백㎢, 인구 2백여만명의 군주국으로 축구는 완전히 바닥이었다.

오씨는 “주위 사람들은 모두 ‘뭐하러 그 오지까지 가느냐’고 막았지만 그이가 후진국에 우리 축구의 혼을 심고 ‘필드’에서 마지막 축구 인생을 불태우겠다며 고집을 피우는 통에 어느 누구도 말릴 수 없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강감독은 ‘부탄의 히딩크’였다. ‘진짜 축구’가 무엇인지 하나하나 가르쳤다. 체력 등 기초훈련을 특히 강조했다. 선수들의 사생활은 보호하면서도 훈련만큼은 엄격하고도 철저히 시켰다. 또 하나라도 더 가르치려는 열정으로, 선수들과 한마디라도 더 하기 위해 밤마다 늦깎이 영어 공부에 매달렸다.

패배에만 익숙해 있던 부탄팀은 강감독이 부임한 지 6개월 뒤부터 네팔, 티베트 등 주변 국가들과의 평가전에서도 ‘승리할 줄 아는 팀’으로 변했다. ‘부탄 축구’에 대한 강감독의 사랑은 식을 줄 몰랐다. 축구 열정은 남못지 않으나 제대로 된 축구공이나 축구화 하나 없어 훈련이 어려운 대표팀을 위해 곳곳에 SOS를 쳤다.

(주)키커 권혁일 이사는 “지난해 말 부탄 국민들의 축구 사랑과 우리나라에 대한 이미지 제고를 내세우면서 강감독이 하도 열성적으로 부탁하는 통에 시장성이 없는데도 불구, 회사가 부탄 대표팀을 후원하기로 했다”고 소개했다. 교통 사정이 나빠 지난 1월 네팔까지 축구공, 축구화, 유니폼을 수송해 놓은 뒤 부탄 국왕의 전용 헬기가 다시 이를 실어날랐다.

부탄에서 강감독은 ‘한국의 히딩크’ 못지 않은 국빈이었다. 부탄 국민에게 ‘승리의 기쁨’이 무엇인지 가르쳐 준데다 강감독의 열정에 모두가 감동했기 때문이다. 부탄 TV에서는 강감독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방영하고 총리가 강감독의 일정을 직접 짜는가 하면 거리에 나서면 만나는 시민마다 그를 환대했다. 1년 임기가 끝난 지난해 말에는 지그메 싱게 왕축 부탄 국왕이 임기를 연장해달라고 매달릴 정도였다. 재계약 때 강감독은 국왕과 월드컵축구 관전을 위해 함께 한국을 방문하기로 일정까지 잡았다.

강감독은 재계약 뒤 부탄 축구 발전을 위한 의지를 더욱 불태웠다. 유소년 축구발전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장기 플랜을 짜느라 밤샘하기 일쑤였다. 그러나 몸 속에 자라던 암이 갑자기 도지면서 올 1월 귀국해야 했다.

강감독은 국내에서 병마와 사투를 벌이면서도 부탄 축구에 대한 애정을 버리지 못했다. 강감독의 고교 선배인 수원삼성 김호 감독은 “병문안을 갈 때마다 부탄에 빨리 돌아가 선수들을 가르치고 싶어했다”며 안타까워했다.

강감독이 한국으로 떠난 뒤에도 타계하기 전까지 감독 자리를 비워 두었던 부탄은 강감독이 끝내 타계하자 온국민이 슬픔에 잠긴 가운데 서울로 직접 조문단까지 보냈다. 오씨는 “그이가 이승을 떠나신 뒤 가족들에게는 너무 힘든 시간이 흐르고 있다”면서도 “하지만 머나먼 오지에서 마지막으로 축구 열정을 불태워 부탄 축구 역사의 한페이지를 장식한 남편이 너무 자랑스럽다”며 눈물을 훔쳤다. 강감독은 부산 동래고, 연세대 출신으로 국가대표(73~78년)를 거쳐 국가대표 코치(87년), 상업은행 감독(87~93년)을 지냈다.

〈김종목기자 j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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