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방학 대신 네팔 나눔봉사… “주러 갔는데 오히려 받고 와”

카트만두 | 이영경 기자

최빈국 아동 후원회원 20명의 아주 특별한 여름휴가

지역 학교서 운동회 이어 옥상 방수작업·화단 가꾸기 등 ‘재능기부’도

네팔 중서부 랄릿푸르 지역의 렐레 마을에 도착한 것은 지난달 23일. 쨍쨍한 햇볕 아래 11살 여자아이 수리자나와 할머니, 할아버지, 남동생 2명이 서 있었다. 수리자나의 얼굴도 잔뜩 긴장한 듯 굳어 보였다.

“나마스떼(안녕).” 먼저 인사를 건넸다. 순간 굳었던 아이의 표정이 거짓말처럼 풀렸다. 수리자나는 흰 이를 보이며 수줍게 웃었다. 눈웃음이 상냥한 예쁜 미소였다.

수리자나는 8살 때 어머니를 잃었다. 경제적 궁핍에 쫓기던 어머니는 알코올중독에 빠졌다. 자연스레 부모의 다툼이 잦아졌고 3년 전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폭력을 행사했다. 어머니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아버지는 폭력죄로 감옥에 갔다. 부모를 동시에 잃은 수리자나는 친척집을 떠돌았다. 학교도 잘 나가지 못했다.

그러다 지난 3월 수리자나는 가족을 되찾았다. 굿네이버스가 수리자나를 결연 아동으로 후원하면서 할머니·할아버지, 두 동생과 함께 살게 된 것이다. 학교도 다시 다니게 된 수리자나는 웃음과 꿈도 되찾았다. 수리자나의 꿈은 비행기 조종사다.

수리자나와 남동생은 푸른색 셔츠에 남색 하의 교복을 단정히 차려입었다. 할머니는 붉은색 전통의상에 장신구로 곱게 단장했다. 이들은 수리자나를 후원하고 있는 방인옥씨(49·사업)를 만나기 위해 2시간 가까이 흙길을 걸어왔다.

수리자나와 방씨는 이날 처음 만났다. 수리자나는 방씨에게 정성껏 그린 그림과 꽃바구니를 선물했다. 방씨는 수리자나를 와락 껴안았다. 월 3만원의 자동이체로 연결된 두 사람의 만남이 현실 속에서도 이뤄진 순간이었다.

지난달 21~26일 굿네이버스 후원 회원 20명이 아주 특별한 여름휴가를 떠났다. 히말라야 산맥이 아닌 진흙길에 먼지가 풀풀 날리는 네팔의 시골 마을을 찾았다. 소중한 휴가와 방학을 해외 봉사활동으로 보내기로 결심한 사람들은 한국을 출발하기 두 달 전부터 아이들과 함께할 운동회, 과학·미술수업도 준비했다. 결혼 8개월째인 신혼부부, 어머니와 고등학생 아들, 고등학생 남매, 휴가를 낸 직장인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한 네팔 여행은 ‘나눔의 마음’으로 하나가 되는 일정이었다.

지난달 23일 방인옥씨(가운데)가 네팔 랄리푸르 지역 렐레에서 후원 결연 아동 수리자나(오른쪽)와 수닐(왼쪽)의 손을 잡고 학교로 향하고 있다. 방씨와 네팔 아이들은 사진과 우편으로만 소식을 주고받다 이날 처음 만났다. | 굿네이버스 제공

지난달 23일 방인옥씨(가운데)가 네팔 랄리푸르 지역 렐레에서 후원 결연 아동 수리자나(오른쪽)와 수닐(왼쪽)의 손을 잡고 학교로 향하고 있다. 방씨와 네팔 아이들은 사진과 우편으로만 소식을 주고받다 이날 처음 만났다. | 굿네이버스 제공

■ 작은 나눔에도 아이 인생 바꿀 수 있다니 놀라울 뿐

방씨는 네팔이 4번째 해외 봉사활동이라고 했다. 2009년 탄자니아, 2010년 인도, 지난해 말라위를 찾았다. 방씨는 “해외 방문 때마다 힘들까봐 걱정도 많이 하는데 실제 와보면 마음속을 꽉 채워간다”며 “3을 줬으면 30을 받아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사업가인 방씨는 “8년 전 빈털털이였지만 봉사를 시작한 후 하는 일도 오히려 더 잘됐다”며 “많은 사람들이 나눔을 통해 채우는 경험을 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굿네이버스에서 14명의 해외 아동을 후원하던 방씨는 이번 여행이 끝난 후 후원 아동을 10명 더 늘렸다. 국내 아동권리보호사업에도 후원하고 있다.

수리자나의 할아버지는 방씨에게 “수리자나가 가족과 함께 살고 학교도 다니니 밝아졌다”며 “수리자나가 공부를 열심히 해서 파일럿이든, 의사든 뭐든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할아버지는 “수리자나는 아빠·엄마가 없어도 누군가 옆에서 지켜주고 돌봐주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아이가 행복해진 걸 보니 정말 감사하다”고 덧붙였다.

방씨는 쉽게 말을 잇지 못했다. “내가 해준 것보다 훨씬 더 환대해주고 고마워해주니 미안한 마음에 눈물이 난다”며 “후원 회원 누구도 3만원이 아이의 인생을 바꾸고 미래를 열어준다고 생각지 못했을 텐데, 할아버지의 말을 들으니 내가 쉽게 생각한 것 같아 오히려 미안한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방씨는 렐레에서 두 명의 후원 아동을 만나는 행운을 누렸지만 험악한 산악지형 탓에 다른 지역에 후원 아동이 있는 회원들은 아쉽게도 다음으로 만남을 기약해야 했다. 요리사가 꿈인 18살 최원경양은 동생 원혁군과 함께 여름방학을 맞아 네팔을 찾았다. 네팔 북동쪽 도티 지역에 후원 아동이 있는 원경이는 직접 전해줄 수 없지만 핑크색 옷을 선물로 준비했다. 원경이는 “여자아이들이 좋아하는 핑크색 옷을 선물해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원경이는 네팔 아이들로부터 ‘쿠시(행복이라는 뜻)’라는 네팔 이름을 얻었다. 회원들은 저마다 ‘프림(꿈)’ ‘마야(사랑)’ ‘무스칸(웃음)’ ‘사갈(바다)’ 등의 네팔 이름을 하나씩 선물로 받았다.

휴가·방학 대신 네팔 나눔봉사… “주러 갔는데 오히려 받고 와”

회원들은 산골에 있는 아이들의 집도 방문했다. 11살 수닐의 집은 등산화를 신고도 몇 번이나 발이 미끄러지는 좁은 진흙길을 1시간 가까이 걸어야 도착하는 산꼭대기에 있었다. 수닐은 매일 이 험한 길을 걸어 학교를 다닌다. 진흙으로 된 좁은 집에서 수닐의 부모와 형, 누나, 남동생 여섯 식구가 살고 있었다. 수닐은 2009년부터 굿네이버스의 후원을 받기 시작했다. 후원 전 수닐의 아버지는 일용직 노동으로 한 달에 2000루피(2만4000원)가량을 벌었다. 후원 후에는 소득증대사업으로 토마토 재배를 시작해 월소득이 두 배로 늘었다. 그 돈과 후원금으로 수닐과 누나 수마야가 학교를 다닐 수 있게 됐다.

수닐의 어머니가 직접 기른 토마토를 잔뜩 내왔다. 토마토가 달고 신선해 수닐에게 건네자, 맛없다는 듯 토마토를 바닥에 “퉤” 뱉었다. 아버지가 버릇없는 행동을 한 수닐의 머리를 한 대 쥐어박자 수닐이 “왕” 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귀여워해주는 손님 덕에 기세등등해져 울음을 그치지 않던 수닐은 초코바를 손에 쥐어주자 울음을 그쳤다.

그나마 수닐의 집은 형편이 나은 편이다. 산 아래쪽에 위치한 10살 사비나의 집은 월세다. 아버지가 일용직으로 일해 월 3000루피(3만6000원)를 벌지만, 이 중 500루피(6000원)는 월세로 내야 한다. 비좁은 집에는 침대 하나가 덜렁 있고, 바닥에 화덕이 있었다. 나무로 불을 피워 네팔식 라면인 ‘짜우짜우’를 끓이자 환기구도 없는 집 안에 연기가 가득찼다. 그을음과 연기 탓에 눈이 맵고 숨이 막혔다. 화덕 연기 탓에 여성들은 안질환과 폐질환에 시달린다고 했다. ‘짜우짜우’를 맛있게 먹던 사비나는 꿈을 묻자 ‘미스’라고 말했다. ‘미스’는 선생님을 부르는 말이다.

■ 후원 받은 후 소득 2배 늘고 학교 다닌다는 말에 뭉클

회원들은 랄릿푸르 지역 버디켈 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 운동회를 열었다. 카트만두 지역 상글라에서는 새로 짓는 맘센터(여성·아동 복지센터) 개소식을 앞두고 마을 가꾸기에도 팔을 걷었다. 벽화를 그리고 화단을 가꾸고, 방수작업을 벌였다. 식물원에서 일하는 강정화씨(44)는 화단 가꾸기를, 건설회사에 다니는 배훈민씨(28)는 옥상 방수작업을 진두지휘하며 ‘재능기부’를 했다.

나눔을 실천하는 여행은 생각의 폭을 넓히고 서로의 관계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지난해 11월 결혼한 강동엽씨(34)와 김효숙씨(35)는 신혼의 첫 휴가를 네팔로 잡았다. 강씨는 “휴양지를 찾아보던 중에 굿네이버스에서 보낸 봉사활동 안내 e메일을 보고 가치있다고 생각해 오게 됐다”며 “힘든 여행을 함께 잘 마친 아내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김씨는 “직접 와서 NGO의 노력으로 네팔 사람들과 지역사회가 변화한 걸 보면서 사고를 확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아들 조병찬군(18)과 함께 온 박문희씨(54)는 “아들과 공부 얘기가 아닌 어른이 되면 어떻게 할 거고, 이런 행동은 안 할 거란 얘기를 나눴다”며 “그 대화가 굉장히 소중히 느껴졌고 아들이 다 컸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대구에서 온 회사원 이민정씨(30)는 “배움의 기회나 가족과 함께 사는 불편함 없는 생활을 당연하게 생각했는데, 내가 기회를 많이 가진 사람이고 배풀어야 할 게 많은 사람이라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우리는 우리 자신만을 위해 살 수는 없다. 천 개의 가닥이 우리를 동료 인간과 연결해준다. 교감의 실(sympathetic thread)인 이 가닥들을 따라 우리의 행동이 원인으로 전달되었다가 다시 결과가 되어 우리에게 되돌아온다.” 19세기 영국의 성직자 헨리 멜빌의 말이다. 월 3만원 자동이체로 시작한 후원의 실이 하나둘 연결돼 사람들을 네팔로 이끌었다. 이번 여행은 그 실이 어디로 이어져 누구에게 닿아 있는지 확인하는 여정이 아니었을까. 회원들이 입을 모았던 “주러 왔는데 오히려 받고 간다”라는 의미는 그런게 아니었을까.

▲ 굿네이버스 네팔지부
아동 후원·지역개발 등 자립 돕는 희망의 끈


네팔은 아시아의 최빈국이다. 인구의 3분의 1이 절대빈곤에 허덕인다. 유아 1000명 중 46명이 5세 전에 사망하고, 15세 이상 성인 절반이 글을 읽지 못한다. 국민총소득은 1인당 240달러. 에베레스트 산을 포함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 10개 중 8개가 있는 네팔은 험한 산맥이 지역개발과 교통을 가로막아 많은 사람들이 고립된 생활을 하고 있다.

카트만두에 가기 전까지는, ‘가난’이라는 말이 피부에 와닿지 않았다. 직접 본 네팔은 전기공급이 원활하지 않아 호텔이든 식당이든 잦은 정전이 일상이었고, 자가발전기를 지니지 않은 일반 가정과 상가에는 전기공급 시간이 제한돼 있었다. 울퉁불퉁한 도로엔 차와 사람, 가축이 뒤섞여 있었다. 시골에는 도로랄 게 마땅치 않았다. 진흙으로 만든 집에는 원시적인 화덕이 있고, 가축 훔쳐가는 걸 막기 위해 사람과 가축이 한곳에서 지내기도 했다. ‘가난’과 ‘낙후’라는 말이 몸으로 느껴졌다.

2002년 설립된 굿네이버스 네팔지부는 18개 지역에 사업장을 두고 2만2400명의 아동을 후원하고 있다. 아동 개인의 후원에 그치지 않고 지역 자립을 위해 교육·지역개발·소득증대·보건의료와 여성과 하층민의 권리옹호 사업을 벌이고 있다. 회원들이 낸 후원금은 결연 아동의 학용품비·교복비·수업비 등으로 지원돼 아동이 일하지 않고 학교에 안정적으로 갈 수 있게 돕는다. 일부 비용은 지역개발비로 쓰여 혜택이 주민들에게 골고루 돌아갈 수 있게 한다. 네팔지부의 이수형 사무장은 “굿네이버스가 그 지역에 필요없어지고 그 지역이 자립해 발전할 수 있어야 우리의 목적이 달성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네팔에서 봉사활동을 벌인 굿네이버스 후원 회원들이 지난달 24일 카트만두의 상글라 사업장에서 아이들과 미술 수업을 마치고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 굿네이버스 제공

네팔에서 봉사활동을 벌인 굿네이버스 후원 회원들이 지난달 24일 카트만두의 상글라 사업장에서 아이들과 미술 수업을 마치고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 굿네이버스 제공


버디켈 지역은 교육사업이 성공적으로 자리잡았다. 2005년 문을 연 버디켈 초등학교는 과학실·도서관을 갖추고 영어교육에 힘을 쏟아 이 일대에서 가장 가고 싶어하는 학교로 발전했다. 최근엔 인근 공립학교와 통합해 600명이 함께 공부할 수 있는 새 학교를 짓고 있다. 고성훈 네팔지부장은 “사립으로 시작했지만 네팔 공교육의 정상화를 위해 사립학교를 네팔 공립학교와 통합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지역의 경제자립을 돕기 위한 소득증대사업도 활발하다. 지난 6월에는 열악한 산악지역인 무구·훔라 지역에서 약용 식물들을 화장품 원료로 개발하는 사회적기업을 설립해 LG생활건강과 업무협약을 맺기도 했다.

아이들을 지역 사회를 주도할 리더로 양성하기 위한 ‘차일드 클럽’도 운영하고 있다. 변화는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훔라에서는 지난해 13세 소녀 마야가 강제로 조혼을 당해 억지로 끌려가게 되자 친구들이 문제제기해 막는 일도 일어났다. 마야는 “결혼보다 공부하고 친구들과 놀고, 엄마 옆에 있고 싶다”고 말했다. 네팔 아동 51.4%는 18세 이전에 결혼을 강요당한다.

여성에 대한 차별이 심하고 사회참여가 막혀 있는 인식을 바꾸기 위해 지난 1월에는 12~16세 소녀 210명이 참가한 축구대회를 열기도 했다. 양용희 네팔지부 간사는 “대부분 여학생들이 지역을 떠나지 못하는데 축구대회를 통해 도시로 여행도 가고 자신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기회가 됐다”고 말했다. 축구대회에 참가한 소녀 중 27명은 국가대표로 선발되는 기회가 주어졌다.

네팔 일부 지역에서는 여성의 생리기간에 집 밖으로 쫓아내 움막에서 지내게 하는 풍습이 있는데, 이를 개선하기 위한 사업도 벌이고 있다. 양 간사는 “생리기간 동안 많은 여성들이 뱀이나 동물에게 물려 사망하거나 다치고 있으며, 불결한 위생조건으로 자궁질환을 많이 앓는다”며 “지역사회와 함께 인식개선과 여성보건 사업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25일에는 네팔의 세 번째 맘센터(Mom Center)가 카트만두 상글라에 세워졌다. 아동과 여성을 위한 이 주민복지센터다. 굿네이버스는 해외 30개국에 지부에서 195개 사업장을 운영하고 있다. 후원 문의는 1599-0300, www.gni.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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