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출판사 민음사 ‘해고 취소 소동’

백철 기자

·직원 6명 정리해고 “없던 일로”… 출판 노동자 고용안정 계기 삼아야

지난 3월 7일 민음사는 해고했던 직원 6명의 해고를 철회하겠다고 밝혔다. 민음사 미술팀 소속 이도진씨가 자신의 SNS에 올린 글을 시작으로 터진 소위 ‘민음사 해고 소동’은 이렇게 일단락된 것처럼 보였다.

당장의 해고 소동은 끝났지만 출판계 내의 노동문제는 크게 부각됐다. 민음사는 지난해 세 번의 정규직 채용을 공고해 놓고도 채용 이후 근로계약서를 교부하지 않았다. 민음사 출판그룹은 전체 직원 수만 120명이 넘으며 연간 매출액이 300억원을 상회한다. 출판사 중에서는 대형급이다.

민음사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해 보면 이도진씨가 글을 쓰기 직전 상황은 대략 이렇다. 이미 민음사 내에서는 2월 말부터 구조조정이 있을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박맹호 민음사 회장의 아들들인 박근섭, 박상준 사장 등 경영진은 임금 삭감과 구조조정 중 결국 정리해고를 선택했다.

3월 4일 이도진씨와 또 다른 사원 ㄱ씨는 느닷없이 박상준 사장실로 호출됐다. 박 사장은 두 사람에게 “회사가 너무 어렵다”며 3월까지만 출근할 것을 요구했다. 민음사 출판그룹 전체에서 이처럼 퇴사 요구를 받은 사람은 편집자 4명과 디자이너 2명이었다.

이틀 뒤인 6일, 이도진씨는 자신의 SNS와 블로그에 ‘문제의 글’을 올렸다. 글의 내용은 자신이 정직원이 된 지 3개월 4일 만에 구두로 해고를 통보받았으며, 구체적인 사유는 듣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 글에서 이씨는 “민음사가 ‘사람에 대한’ 실수를 범하는 것에 몹시 화가 난다”고 썼다.

이씨가 글을 올린 뒤 저녁 늦게까지 민음사 홍보기획팀은 기자들의 전화로 바빴다. 민음사의 정리해고를 성토하는 네티즌들의 목소리도 거셌다. 7일 오후 민음사는 해고 철회 입장을 밝혔다.

지난 1월 민음사 관계자들과 필진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민음 한국사’를 소개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 1월 민음사 관계자들과 필진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민음 한국사’를 소개하고 있다. / 연합뉴스

정규직 채용하고도 계약직 계약서 작성

문제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해고 철회가 된 당일, 민음사 경영진은 이씨를 불러 ‘해고예고 철회서’ 작성을 하려 했다. 하지만 이씨는 “올바른 근로계약서에 서명부터 하는 것이 우선”이라며 철회서 사인을 거부했다. 8일, 이씨는 SNS와 블로그에 이틀간의 진행상황을 알림과 동시에 책을 읽거나 만들 때 느낀 감정을 모아보자는 취지의 ‘책은 ○○○이다’ 캠페인을 제안하는 두 번째 글을 올렸다.

이도진씨의 글이 인터넷을 휘젓고 간 이후 민음사는 직원들을 대상으로 정식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민음사 직원의 상당수는 ‘기간에 정함이 없는’ 계약직 계약서를 썼지만 1년 계약직으로 쓴 신입 직원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정규직 채용공고를 보고 들어온 사원들에게 계약직 혹은 무기계약직 근로계약서를 내민 것이다. 한 민음사 직원은 “일단은 ‘계약기간에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서를 받았지만 현재의 계약서도 확정된 것은 아니다”라며 “정규직으로 알고 입사한 만큼 제대로 된 계약서를 받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민음사의 경영상태가 예전만 못한 것은 사실이다. 금융감독원 공시자료에 따르면 2012년 민음사의 매출액은 전년 대비 약 22억원이 감소한 151억원을 기록했다. 당기순이익은 27억원이 감소한 3억원이었다. 민음사 출판그룹 전체(민음인, 비룡소, 사이언스북스 등)로 보면 2012년 매출액은 약 320억원이었지만 순이익은 3억원 수준이었다.

하지만 최근 5년간의 공시자료를 종합해 보면 2011년의 순이익 30억원이 특이한 사례였고, 대체적으로는 3억~8억원대의 순이익을 남겨 왔다. 2013년 3월 기준 미처분 이익잉여금은 약 121억원에 달해 ‘긴급한 경영상의 이유’가 무엇인지는 알 수가 없는 상황이다. 2013년 회계자료는 아직 공시되지 않았지만, 무라카미 하루키 등 유명 작가들에게 지나친 선인세를 지급해 이익이 훨씬 축소됐다는 이야기도 꾸준히 나오고 있다.

민음사 관계자는 “임금 삭감 정도로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었으면 굳이 해고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경영상의 어려움이 기반이 된 것은 맞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민음사 측은 구체적인 경영실적은 밝히지 않았다.

박맹호 민음사 회장은 2012년 출간한 자서전에서 출판계의 위기상황을 거론하며 “동료나 선후배 출판인들의 한없는 열정이야말로 위기를 넘어설 수 있는 가장 큰 잠재력”이라고 썼다.

하지만 출판계 내에서는 ‘열정’을 말하기 전에 먼저 출판노동자들 스스로 자기 권리를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출판 노동자 스스로 권리 찾아야

출판노동자 이용석씨는 13일 ‘미디어스’ 기고글을 통해 “노동자들이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결국 노동조합이 필요하다”며 출판노동자들이 스스로 나서야만 민음사 ‘해고 소동’과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씨는 “민음사보다 규모가 작은 출판사들에서 일하는 많은 출판노동자들이 저항 한 번 해보지 못하고 잘려 나가고 있다”며 “해고 한 번 당하지 않은 출판노동자를 찾기 힘들 정도”라고 말했다.

언론노조 출판분회도 사건 초기부터 이도진씨의 글을 SNS에 적극적으로 퍼나르는 등 예의주시해 왔다. 출판분회 관계자 ㄴ씨는 “출판업이 어느날 갑자기 주가 폭락하듯이 망가지는 일은 있을 수 없다. 6명을 한꺼번에 해고했다는 것은 부서 하나를 없애는 거나 마찬가지 수준인데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ㄴ씨는 “출판사 대부분이 영세한 상황이라 싸움이 일어나도 ‘사표를 쓰고 다른 데 가면 그만’이라는 경향이 많았다”며 “내가 있었던 회사에서도 노조가 생기기 전에는 몇 개월 쓰다가 해고시키는 일이 있었다. 하지만 2012년 9월 언론노조 출판분회가 생긴 이후로는 출판노동자 스스로 권리를 찾으려는 움직임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한 중소 출판사 임원은 “민음사가 그동안 좋은 책도 여러 권 냈고 출판계에 기여한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꼭 노동조건이 좋으리라는 법은 없다”며 “민음사가 출판사 밖으로 보면 영세한 기업일 수 있지만 구두 해고라는 방식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민음사 내부에서도 ‘해고 소동’으로 그칠 것이 아니라 출판노동자 전체의 권리문제로 바라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한 민음사 직원은 “아직은 노조를 만들자는 분위기라고까진 할 수 없지만 언론노조 출판협의회에서 만든 ‘출판 노동자 가이드북’을 참고하며 출판계 내의 노동문제를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직원은 “구체적인 움직임이나 조직이 있는 단계는 아니다. 하지만 차근차근 힘을 모으고 있다”며 “(노동조건 문제는) 민음사뿐만 아니라 출판계 전반의 문제인 만큼 이번 기회를 통해 출판노동자들의 요구사항을 정리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노동조합이 결성된 창비, 보리, 한겨레출판, 돌베개, 그린비 등 출판사들은 민음사와 달리 채용 즉시 근로계약서를 쓴다. 출판분회 측 관계자는 “사건 이후 민음사 노동자들을 만나며 향후 대응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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