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덕유산 등에 총 16개소, 예약 때부터 전쟁… 칸막이 없이 다닥다닥 붙어 자는 건 기본, 난방시설 없는 곳도 수두룩
최근 일행 6명과 전북 무주군 덕유산 종주를 한 장혜진씨(52)는 눈으로 뒤덮인 덕유산 설경을 떠올리면 행복하지만 대피소에서의 1박 체험은 지금도 아찔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해발 1600m, 산상 대피소에서의 하룻밤이 ‘고행’이었기 때문이다.
우선 침상이 너무 비좁았다. 장씨 일행이 머문 국립공원관리공단 덕유산 삿갓재 대피소의 1인당 침상 넓이는 고작 60㎝였다. 몸이 마른 사람은 간신히 누워 잘 수 있지만 몸이 조금만 뚱뚱한 사람은 정상적으로 눕지 못하고 ‘칼잠’을 자야 한다. 한 장당 1000원씩 임대하는 군용모포를 네번 접어 깔면 간신히 누울 수 있는 공간이 나온다. 옆사람과의 신체 접촉은 불가피했다. 개인당 칸막이 시설조차 없어 한밤중이면 옆사람과 얽히고설키며 잠을 설쳤다.
■ “잠을 자라는 건지, 밤을 새우라는 건지”
여성들이 많이 사용하는 대피소 1층은 바닥난방이 되지만 2층은 난방시설이 없어 체온에 의지해서 잠을 청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장씨는 “잠을 자라는 것인지, 끼어서 밤만 새우라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종일 산행을 하고 피로를 풀어야 하는데 대피소 여건이 해도 너무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산행을 했던 일행들 모두의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함께 덕유산을 다녀온 정정환씨(56)는 “난생처음 대피소를 이용했는데 하룻밤을 지새우면서 기가 막히다는 생각이 몇번이나 들었다”면서 “침상이 너무 좁아 옆사람과 어깨가 닿을 정도였다. 심각한 인권침해를 당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고 말했다.
대피소의 열악한 환경은 국내에서 등산을 경험한 이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10년 넘게 등산을 하고 있는 이종성씨(53)는 “대피소 시설이 군대 내무반처럼 툭 터져 있어 코를 심하게 고는 분들 때문에 잠을 청하기도 힘들었다”면서 “침실이 분리돼 있지 않아 같이 갔던 동호인들이 거의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고 전했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이 운영하는 대피소는 지리산과 설악산, 덕유산 등 3개 국립공원에 모두 16개소로 최대 수용인원은 1108명에 이른다. 대피소는 시설 이용수요에 비해 공급이 크게 못 미쳐 예약에서부터 전쟁을 치러야 한다.
금요일과 주말 등 성수기에 1박을 원하는 인터넷 예약 경쟁률은 평균 100 대 1을 넘는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은 예약 날짜의 15일 전 10시부터 이용당일 10시까지 예약을 받고 있는데 첫날 1분 이내에 예약이 동나는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이 때문에 여름철 등에는 대피소 밖에서 잠을 자는 ‘비박’ 인파도 상당수다.
하지만 등산인구에 발맞춘 대피소 시설 확충은 쉽지 않다. 환경파괴라는 비판에 직면하기 때문이다. 결국 등산동호인들이 운 좋게 대피소를 예약했다 해도 소음에 시달리며 ‘칼잠’을 자야 하는 악순환이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산악인 신상섭씨(55)는 “대피소 수용인원이 적다보니 종주산행을 하는 산악인들이 산속에서 불법으로 비박을 일삼는 역기능을 파생시키는 게 사실”이라면서 “등산객 급증 추세에 맞게 대피소 시설을 업그레이하는 묘안이 나와야 할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 매점은 시중가 2배 이상 ‘폭리’
대피소의 매점에서 폭리를 취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매점에서는 대략 20여종의 필수물품을 판매하고 있는데 가격은 시중가보다 2배 가까이 비싸다. 청량음료는 1500원, 햇반 3000원, 생수(500㎖) 1500원, 햄 4000원 등을 받는다.
국립공원관리공단 관계자는 “대피소 시설 확대는 자연 훼손문제와 중복되기 때문에 내년에는 장터목 대피소에만 30석을 증설할 예정”이라며 “침상폭이 좁다는 여론에 따라 지난 2011년 지리산 노고단 대피소를 시작으로 단체 침상을 독립형 침상으로 개선하고 침상폭도 기존 60㎝ 폭에서 70~80㎝로 확대해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