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인구 1500만명 시대의 그늘
국립공원 측 단속 불구 약용식물 도벌꾼들 마구잡이 벌목·훼손 여전… 원시림·암석 사이 사이 버려지는 쓰레기들도 골머리
30년 만에 짧은 생을 마감했다. 150년 이상도 살 수 있었던 내겐 너무 가혹한 일이었다. 철저한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지역에 생명의 뿌리를 내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30m 높이의 가지 위에 기생식물인 ‘겨우살이’가 뿌리를 내리도록 허락한 것이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이었다.
둥근 타원형의 새둥지처럼 자리잡은 겨우살이는 삭풍 속에서도 푸름을 자랑하며 시선을 끌었다.
화근은 한겨울에 약용수목 도벌꾼이 접근하면서 시작됐다. 이른 새벽 도로변에 차를 세운 도벌꾼은 1m 넘게 쌓여 있는 눈을 헤치고 산등성이를 기어오르더니 주저 없이 전기톱을 나에게 들어댔다. 꼭대기에 자리잡고 있는 겨우살이를 채취하기 위해서였다.
수십년 동안 서로를 의지한 채 모진 풍파를 겪으며 군락을 이루고 있던 14그루의 형제들은 채 1시간도 지나기 전에 힘없이 모두 스러져 갔다.
나는 강원도 오대산 국립공원 진고개 정상 부근 산자락에서 자생하다 2007년 2월 도벌꾼에 의해 무참히 잘려 밑동만 흉물스럽게 남아 있는 ‘신갈나무’다. 불행하게도 7년이 지났으나 어처구니없는 일은 계속 반복되고 있어 걱정이 앞선다.
지난 2월엔 태백시 창죽동 검룡소 인근 산자락에서 자생하던 신갈나무 한 그루가 톱에 잘려나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나무 아래 눈밭엔 어김없이 겨우살이 열매가 흩어져 있었다고 한다. 도벌꾼들이 자연훼손 정도가 심한 야산 등에서 좀처럼 약용수목을 찾기 힘들게 되자 국립공원과 백두대간 고산준령까지 넘나들며 불법 채취를 일삼고 있는 것이다.
오대산 국립공원에서만 지난해 33명에 이어 올 들어 지난달 말까지 27명이 겨우살이를 불법 채취하다가 적발됐다고 하니 한숨만 나올 뿐이다. 국립공원 내 단속이 대폭 강화되면서 올해엔 밑동이 잘려나가는 일이 발생하지 않은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쇠창이 달린 기구를 신발에 부착하고 나무 위에 올라가 가지를 마구 꺾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보니 치명상을 입기는 마찬가지다.
■ 채취 ‘혈안’ 도벌꾼, 나무 밑동까지 ‘댕강’
산이 아프다. 복수초가 꽃을 피우며 봄을 알리기 시작한 백두대간 고산준령의 겉모습은 여전히 아름답다. 반면 마구잡이식 훼손으로 깊은 생채기가 난 속살은 잇따라 잘려나간 신갈나무의 비명을 잉태한 채 신음 중이다.
이처럼 상황이 심각해지자 국립공원관리공단 직원들의 움직임은 더욱 바빠졌다. 지난 7일 오후 1시 강원 평창군 대관령면 차항리 오대산 국립공원 내 황병산 초입 동녘골.
4륜구동차를 타고 이동하며 순찰활동을 벌이던 오대산국립공원사무소 자원보전과 강태철 팀장(56)과 박승준 주임(38), 동식물보호단원 김태일씨(45) 등 3명은 망원경까지 동원해 산기슭을 꼼꼼히 살피고 있었다.
바로 이곳이 지난 1월24일 오후 4시쯤 김모씨(41·인제군)와 허모씨(45·경기도) 등 3명이 겨우살이 10㎏가량을 불법 채취하다가 적발된 곳이기 때문이다.
박 주임은 “아침 일찍 몰래 산속에 들어가 겨우살이 등 약용수목을 채취해 놓은 뒤 저녁 시간대 거둬들여 몰래 빠져나가는 사례가 많다”며 “매스컴을 통해 겨우살이가 항암효과가 있다는 소식이 잇따라 전해지면서 국립공원까지 몸살을 앓고 있다”고 설명했다.
오대산국립공원사무소는 겨우살이 등 자원반출 위험이 큰 개자니골, 소리골, 장군바위, 차항리 등을 핫스팟(Hot spot)으로 지정, 순찰활동을 대폭 강화하고 있다. 이로 인해 구간별로 투입된 단속팀원들은 하루 평균 100㎞가량을 이동하며 감시활동을 벌이느라 파김치가 되기 일쑤다. “공원 내 비포장도로에 세워져 있는 차량은 십중팔구 불법 채취꾼들이 타고 온 겁니다. 잠복근무를 하다가 산에서 내려올 때 주로 적발을 하는데 2~3명이 함께 몰려다니는 데다 갈고리와 낫 등을 소지하고 있어 위협을 느낀 적도 있습니다.”
강 팀장은 “지난 1월 오대산 국립공원과 인접해 있는 대관령면 산기슭에서 겨우살이를 따려고 나무에 오르던 50대 남자가 3~4m 아래로 떨어져 숨지는 사고까지 발생했다”며 “언제까지 이 같은 일이 반복될지 참 걱정”이라고 말했다.
등산객들의 무분별한 쓰레기투기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동식물보호단 김태일씨는 “3년 전 계방산 지구가 오대산국립공원에 편입됐을 때 원시림과 암석 사이 등에 쌓여 있는 각종 쓰레기를 치우느라 오대산사무소의 전 직원이 수개월간 동원되기도 했다”고 푸념했다.
전국 최대 억새군락지인 강원 정선군 남면 민둥산 일원. 매년 가을 이곳엔 30만명 이상의 등반객이 몰리면서 1주일에 5~7t가량의 쓰레기가 쏟아지고 있다. 정선군은 고심 끝에 지난해 민둥산 주요 등산로 20여곳에 ‘나를(쓰레기) 버리고 가시는 임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란 이색적인 안내판을 설치했다. 오죽하면 아리랑 가사까지 동원해 쓰레기투기를 막으려 했을까.
멸종위기종 42종을 포함, 3300여종의 생명체가 서식해 자연생태계의 보루로 여겨지고 있는 설악산도 같은 처지다.
■ 설악산 작년 쓰레기 65t 헬기로 치워
설악산국립공원사무소 직원들은 지난해 중청대피소와 고지대 등산로에서 수거한 쓰레기 65t을 33회에 걸쳐 헬기를 이용해 처리하느라 진땀을 흘려야 했다. 헬기를 이용한 고지대 쓰레기처리 비용은 1회에 100만원이 소요된다.
등산인구 1500만명 시대의 그림자는 이뿐만이 아니다. 명소로 알려진 곳에 장기간 과도한 인원이 몰려드는 현상이 지속되면서 설악산 대청봉과 권금성의 모습도 40~50년 전과 사뭇 달라졌다. 설악녹색연합 박그림 대표(67)는 “시도 때도 없이 몰려드는 수많은 등산객들의 발길로 인해 설악산 대청봉 정상 일대에 쌓여 있던 흙이 50㎝ 이상 깎여 나갔고, 권금성 일대는 바위틈에서 자라던 나무들이 사라져 민둥 암벽이 되어 버렸다”고 하소연했다. 박 대표는 “훼손을 막기 위해 커다란 틀에서 지켜야할 것들이 많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관심”이라며 “설악산의 상처가 왜 아물지 않고 있는지 등산객 스스로가 느끼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