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거리에서 크리스마스 캐럴을 듣기 어려워진 듯하다. 오죽했으면 지난 9일 문화부와 음악 저작권 단체들이 크리스마스 캐럴의 저작권이 문제될 것 없으니 마음껏 틀어도 된다는 내용의 홍보자료를 배포했을까.
음반이 음악산업의 주도적 매체였던 시대에는 거리나 상품 매장에서 공공연히 재생되는 음악이 음반 홍보 효과를 발휘했다. 하지만 무형의 소리 그 자체에서 이윤을 얻어내야 하는, 오늘날의 ‘디지털음원 시대’에선 상황이 달라졌다.
그렇다고 더 이상 사람들이 거리에서 음악을 듣지 않는 것은 아니다. 역설적이지만,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거리에서의 음악 청취가 폭넓게 이루어지는 시대이기도 하다. 거리의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스마트폰에 연결된 이어폰을 귀에 꽂고 자기만의 ‘음풍경(soundscape)’ 속을 거닌다.
캐럴이 사라진 한국 거리의 음풍경, 어떠한 ‘사회적 상황의 지표’로 읽을 수 있을까? 자본의 요구는 일상 속으로 스며들고 사람들은 고립된 자기 세계 속에서 주변을 돌아볼 틈이 없는 상황, 크리스마스의 정적은 이런 상황을 의미하지 않을까.
그럼에도 캐럴이 실종된 조용한 크리스마스가 아쉬움을 주는 것은 이 디지털 시대에서 ‘음악을 통한 공동체’의 의미가 해체되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환기시켜주기 때문이다.
쉐퍼는 청각을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접촉하는 하나의 방법”, 즉 잠재적 촉각으로 간주한다.
우리는 특별한 음악을 함께 들을 때 서로 손을 잡거나 포옹하는 듯한 일체감을 느낀다. 그 연원이야 어떻든 캐럴은 그런 일체감을 만들어내던 몇 안 되는 음악들 가운데 하나였던 것 같다. 물론 그것이 꼭 캐럴이어야만 할 이유는 없다.
크리스마스와 연말에는 이어폰을 벗고 누군가와 함께 음악을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 ‘나눔’의 의미를 새길 수 있다면 더 좋고. 메리 크리스마스!
이 영상은 최유준 교수의 ‘문화와 삶’ 연재 칼럼을 토대로 제작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