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 선생님은 어떻게 적용될까

배문규 기자
스승의 날을 앞둔 지난 13일 부산 부산진구 부산진여자중학교 체육관에서 전교생들이 하트모양을 만들어 교사들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스승의 날을 앞둔 지난 13일 부산 부산진구 부산진여자중학교 체육관에서 전교생들이 하트모양을 만들어 교사들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김영란법’의 여파는 5월15일 스승의날에도 미쳤습니다.

국민권익위원회가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 시행령을 지난 9일 발표하면서 많은 언론들이 스승의 날을 앞둔 학교 현장의 분위기를 전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교사에게는 어떤 기준이 적용되는지 궁금해했습니다. 하지만 학교 현장은 크게 신경쓰는 분위기가 아니였습니다. 이미 각 교육청에서 선물을 주고받는 관행을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8년차 고등학교 교사 정모씨(36)는 “김영란법요? 우린 카카오톡 음료 쿠폰도 못 받는데….”라고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말했습니다. 정씨는 “김영란법 이야기는 들었지만 저도 다른 선생님들도 별 관심 없어요. 이미 학부모 상담 때도 종이컵에 물 한 잔 떠놓고 얘기하는 데 익숙해졌어요.” 정씨는 “이번 스승의날은 일요일이라 속이 더 편하다”고 했네요.

오는 9월 시행을 앞두고 있는 김영란법 적용 대상엔 교사들도 포함됩니다. 하지만 교육현장에 있는 교사들은 시큰둥한 반응입니다. 스승의날이 폐지된 적도 있을 만큼 여러 차례 촌지 파동을 겪으며 이미 김영란법보다 더 깐깐한 행동강령을 적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김영란법 VS 서울시교육청 촌지 근절대책

[정리뉴스]김영란법, 선생님은 어떻게 적용될까

김영란법 대상에는 일반 국공립학교 선생님과 사립교육기관 종사자 모두 포함됩니다. 음식물은 3만원, 선물은 5만원, 경조사비 10만원으로 제한을 뒀습니다. 대가성을 떠나서 한도 내에서만 식사를 하거나 선물을 줄 수 있는 겁니다. 이를 어기면 과태료를 부과받습니다. 또한 업무 관련성을 떠나 1회 100만원, 연간 300만원을 넘는 고액 금품을 받으면 형사 처벌을 받습니다.

하지만 교사들은 더 엄격한 기준을 이미 적용받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교원행동강령’에 따르면 공개적 행사에서 주는 꽃 등 3만원 이하의 선물만 허용합니다. 이에 더해 서울시교육청은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를 실시해 엄한 처벌을 하고 있는데요. 지난 3월 발표 내용에 따르면 금품·향응을 받으면 10만원 이상은 중징계, 10만원 미만은 경징계 처분을 합니다. 특히 10만원 이상 촌지를 받으면 파면·해임 조치를 합니다. 100만원 이상 금품을 받았을 경우 사법기관에 고발을 합니다. 촌지를 준 학부모도 ‘김영란법’에 따라서 처벌받게 되기 때문에 조심해야 합니다.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 촌지 제공액의 2배 이상·5배 이하의 과태료를 받게 됩니다.

[정리뉴스]김영란법, 선생님은 어떻게 적용될까

김영란법에선 5만원 선물 되는데 선생님은?

일부에선 학생들이 1000원씩 모아서 선생님에게 꽃다발을 선물한 경우에도 가격을 일일이 확인해야 하냐는 불만도 나옵니다. ‘애매한’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할까요. 이를테면 학부모가 학교 담임선생님에게 5만원짜리 공연 티켓을 2장 선물로 드렸다고 해봅시다. 하지만 티켓 2장을 반값 할인을 받아서 5만원에 샀다면 어떻게 될까요. 이 경우 반값으로 산 영수증만 있다면 문제가 안됩니다.

경조사에는 축·부의금과 함께 화환을 보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경우 경조사비 10만원에 화환값까지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경조사비를 10만원 이내로 받았더라도 화환을 따로 받아서 둘을 합친 금액이 10만원을 넘으면 김영란법을 위반하게 됩니다.

학부모들이 학교 운영위를 거치지 않고 간식비 등을 지원하기 위해 임의로 걷는 돈도 ‘불법찬조금’입니다. 이를 불법으로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교육청에선 지속적인 홍보를 하고 있습니다.

교사의 경우 신경써야할 부분이 더 있습니다. 김영란법 기준과 시교육청 기준이 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서울시교육청의 경우 교원행동강령에 따라 선물은 3만원 이하만 허용됩니다. 김영란법 5만원보다도 적습니다. 이 경우 어느 기준에 맞춰야 하는 것이냐는 지적도 있습니다. 김동석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대변인은 “교사들이 학부모와 사회의 신뢰를 받기 위해선 촌지를 배격해야 한다”면서 “다만 김영란법과 교육청의 기준이 다르면 학교 현장이 혼란이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현재는 김영란법, 서울시교육청 방침, 교원 행동강령 등 기준이 여럿이라 혼란스러울 수 있기 때문에 명확히 해야한다”고 설명했습니다. 교사들은 더 엄격한 교육청 기준을 따르게 되겠지만, ‘교통 정리’는 필요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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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보다는 마음이 중요해

하지만 선생님들은 교원과 촌지를 엮는 분위기 자체가 불편합니다. 최근 공립학교에선 ‘촌지’가 사라졌다는 게 대부분 의견입니다. 실제 서울시교육청이 지난 3월 촌지 근절대책을 발표하면서 내놓은 통계에 따르면 ‘불법찬조금 및 촌지관련 처리건수’는 2013년 10건, 2014년 8건, 2015년 6건이었습니다. 지속적으로 줄고 있는데다 절대 건수 자체도 많지는 않습니다.(물론 완전 사라져야겠죠) 교육부와 각 교육청에서 강력한 청렴정책을 시행하고, 지속적으로 홍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촌지는 없어진 지 오래인데 아직도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하니, 이럴 거면 왜 스승의날을 만들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거나 “촌지 조심하라는 학교의 안내문자를 보면서 스승의날이 다가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웃픈(웃기고 슬픈) 현실”이라는 자조가 현장에서 나오기까지 합니다.(▶“스승의날 긴장만…일요일이라 오히려 속 편하네요”)

하지만 “이런 분위기가 된 것은 과거에 나쁜 행동을 한 교사들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일부 사립학교들의 경우 촌지 문제가 여전하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그 외 일종의 ‘감독 사각지대’인 학원이나 유치원·어린이집 등에선 스승의날 선물 부담을 느낀다는 학부모들도 있습니다.(▶촌지 460만원 받고도 ‘무죄’ 버젓이 복귀…손 못 대는 사립교사)

1986년 스승의날 선물을 가격대별로 안내하는 신세계백화점의 광고.

1986년 스승의날 선물을 가격대별로 안내하는 신세계백화점의 광고.

30~40대 이상 성인들은 경우 과거 학창시절의 불쾌한 기억을 포털사이트의 스승의날 기사에 쏟아내기도 합니다.(교사들이 ‘스승의 날’에 가장 듣고 싶은 말은 “선생님, 감사합니다”) 실제 과거 신문을 보면 대놓고 가격대별로 선물을 안내하는 광고가 실리기도 했습니다. 당시 분위기를 엿볼 수 있죠.

무엇이 바람직할까요. 5년차 초등학교 교사 황모씨(31)가 받은 선물이 재밌습니다. 황씨가 첫 담임을 맡고, 학부모들도 그가 초보 교사라는 걸 알았다고 합니다. 당시 한 어머니가 ‘참 잘했어요’가 새겨진 담임용 도장을 선물해줬다고 하는데요. 다른 학부모는 운동장에서 아이들에게 이야기할 때 목이 아플 것 같다며 소형 확성기를 선물했구요. 결코 비싼 선물은 아니지만 세심한 배려가 느껴지는 감동적인 선물이었다고 합니다.

경향신문이 취재한 교사들도 지금처럼 선물을 요구하지도 받지도 않는 분위기가 ‘당연하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다만 아쉬운건 건조해지는 사제관계라고 합니다. 선생님들도 굳이 선물은 필요하지 않다고 하니까 편지라도 한 통 써서 보내는 건 어떨까요. 혹은 세심한 마음이 느껴지는 작은 선물도 좋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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