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화가 많이 나요.” “우리 나라가 이런 수준일 거라고는 미처 생각지못했거든요.”
13일 오전 목포신항 4·16세월호가족협의회 천막 앞으로 애띤 청소년 25명이 줄을 지어 걸어왔다. 어깨에 맨 가방엔 세월호 종이배가 달렸고, 머리엔 손수 만든 ‘세월호 리본’을 꽂은채였다. 마침 리본을 만들고 있던 유가족 어머니들이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다. “광명 볍씨학교 학생들”이라는 말이 튀어나오자 어머니·아버지 20여명은 “역시 멋쟁이 학교 아이들이네”라며 반갑게 맞았다.
볍씨학교 초등과정 6학년 11명, 중학과정 14명이었다. 교사 2명이 따랐다.
이들은 전날 오전 10시 서울에서 진도읍까지 내려가는 버스를 탄 후, 다시 군내버스로 30분거리 팽목항에 들러 분향하고, 방파제에 올라 등대 앞에서 추모제를 올렸다. 팽목항 인근 숙소에서 하룻밤을 잔 이들은 이날 버스를 타고 목포신항 입구에 내린 뒤 1㎞ 거리를 걸어 세월호가 누워있는 곳으로 왔다.
철조망 너머 300여m 떨어진 곳에 세월호가 육지쪽으로 머리를 내밀고 있었다.
서로 까치발을 올리며 “언니, 오빠들이 있는 곳”이라고 입을 모았다. “충분히 구할 수도 있었는데, 어른들이 그냥 가만이 있으라 했잖아.” “저렇게 귀여운 아이(당시 5세 권혁규 군)도 있었네.”
발을 동동 구르던 최수연 양(중 2·15)은 “이렇게 빨리 건질건데, 3년이라는 세월을 바닷속에 놔뒀는지 정말 화가 난다”면서 “왜 이런 비참한 일이 우리나라에서 일어났는지, 그 이유를 반드시 알고 싶다”고 말했다.
30여분 말없이 그저 세월호를 쳐다보던 학생들은 한 숨을 내쉬면서 철조망에서 물러났다.
바로 옆 자원봉사자 천막으로 간 이들은 작은 깃발에 자신들의 소망과 각오를 적었다. ‘절대로 잊지 않을게요’ ‘곧 진실이 밝혀집니다.’ ‘9명을 가족의 품안으로’…. 저마다 쓴 글을 철조망에 걸고 두 손을 모았다.
이어 400여m 철조망을 따라 오가면서 세월호 참사를 되뇌이는 대형 플래카드 문구를 소리내 읽었다.
최이은 군(초등 6·13)은 “사랑하는 가족 304명을 잃은 분들의 마음이 얼마나 아플까를 먼저 생각해봤다”면서 “어제 팽목항 방파제에서 추모제를 올리면서 친구들이랑 손잡고 ‘이 일은 절대로 잊어서는 안된다’고 다짐했다”고 말했다.
윤재향 교사(40)는 “학생들이 뭍으로 올라온 세월호를 한 번 보고싶다는 의견을 내 받아들였다”면서 “앞으로 이런 엉터리 국가를 만들지 말자고 결의하는 아이들이 보기좋고 든든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2시간여를 목포신항에 머물다 귀가를 위해 목포시내로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