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무죄’였던 대마초, 박정희 정부 ‘중형’···세계는 합법화 추세

오영진 | 인문학협동조합 총괄이사

한국의 대마포비아

1993년 8월 대마초를 피운 혐의로 경찰에 붙잡힌 연예인들. 대마초를 피운 연예인들은 언론에 대대적으로 공개되곤 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1993년 8월 대마초를 피운 혐의로 경찰에 붙잡힌 연예인들. 대마초를 피운 연예인들은 언론에 대대적으로 공개되곤 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 한국인의 대마포비아

1970년대 고등학생들은 “대마초 피웠다”라는 말을 은어로 사용했다고 한다. 무슨 뜻이었을까? 다름 아닌 예비고사에 낙방해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 친구를 지칭할 때 쓰는 말이었다(경향신문, ‘고교생 은어의 세계 8’, 1978·8·30). 대마초를 피우는 것과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는 일에 무슨 상관이 있는지 의아해하겠지만 이러한 은어가 만들어진 배경엔 1975년 연예인 ‘대마초 파동’이 있었다.

당시 최고의 스타들이었던 윤형주, 이장희, 이종용, 신중현, 김추자, 이상해 등이 대마초 사용으로 인해 하루아침에 구속되어 TV에서 깨끗이 사라져버렸다. 이들은 생계를 위한 밤무대에도 서지 못했다. 실감이 나지 않는다면 지금 가요차트 1위에서 10위의 가수들이 모두 스캔들에 연루되어 출연정지를 당해 수년 동안 나오지 못한다고 상상하면 되겠다. 이용우는 이를 두고 “문화적 벌목”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한겨레신문, ‘일순 연기처럼 사라진 통기타·록 울림’, 2005·11·30). 인기가수들이 없어지니 PD들은 당장 출연시킬 가수를 찾지 못하는 곤란을 겪었다.

이 사건의 범법행위에 대한 처벌 정도는 다소 과하다고 할 수 있다. 대마초를 피우는 행위가 연예인으로서의 모든 활동을 수년간 정지할 정도로 중한 범죄는 아니다. 상식적으로 중한 벌은 공급책이 받아야 한다. 실제로 해당 연예인들은 마치 구속될 것처럼 보였으나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반성문을 썼다. 이영미는 이 과잉된 포즈를 1975년 전반의 분위기와 연관지어 생각해야 한다고 지적한다(이영미, ‘대마초 사건 그 화려한 쓰리쿠션’, 인물과사상 2016·7). 동시간 베트남 공산화로 인한 위기감 고조와 1975년 동아일보 언론탄압, 긴급조치 9호, 대학의 총학생회 해체 등으로 이어지는 정국의 ‘위기상황’이 배면에 깔려 있는 상황에서, 미국 문화에 물든 청년세대가 까불면 이렇게 사라질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진 사건으로 이해한다는 것이다. 대마초를 피운 주체는 회사원, 교수, 외국인, 사업가 등 다양했지만 언론은 ‘대마초 ○○○’이란 말을 오로지 연예인에게만 적용해 사용했다. 이 점에서 주기적인 연예인 ‘대마초 파동’은 통상적인 징벌행위로 보기 어렵다. 스타가 수갑을 찬 범죄자로 전락하는 장면은 대중을 향한 쇼크기법을 염두에 둔 연출이었다.

1975년 대마초 파동 이후, ‘대마초=사회적 지위 박탈’이라는 등식은 한국인의 뇌리에 오래도록 각인된다. 그리고 정권은 연예인들을 완전히 길들이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들의 재기 공연은 공연장이 아니라 교도소에서 열렸고(동아일보, ‘조용한 새 출발, 대마초 연예인들’, 1978·4·1), 연예인들이 국가에 봉사하자는 취지로 만든 새마음봉사대 공연에는 대마초 사건 연루 연예인들이 기꺼이 출연하려 노력했다(매일경제, ‘연예인 새마음봉사대 장병 위문공연, “사회에 보탬이 되는 연예인이 되자”’, 1979·8·6)

한국에서 연예인의 대마초 사건은 근면한 인간과 방탕한 인간을 구분해 도덕적 힐난을 연습하는 훈련장으로 기능한다. 김성환은 1970년대 박정희 정권의 마약 단속을 “마약에 빠져 일을 하지 않는 게으른 중독자들을” “신성한 노동력을 제공하는 국민으로 개조”하려는 기획이었다고 평가한다(청년문화를 제압한 ‘대마초 파동’, <1970 박정희 모더니즘>, 천년의상상). 올바른 국민이 되는 길은, 자주·자립·협동을 통한 근면 정직의 윤리를 세우는 것이고, 마약 문제 해결은 정의 구현의 길이었다.

2005년 3월 영화배우 김부선, 가수 전인권씨(왼쪽부터) 등이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기자회견장에서 ‘대마 비범죄화 요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씨는 2004년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의 대마초 관련 규정에 대해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으나 기각됐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2005년 3월 영화배우 김부선, 가수 전인권씨(왼쪽부터) 등이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기자회견장에서 ‘대마 비범죄화 요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씨는 2004년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의 대마초 관련 규정에 대해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으나 기각됐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얼마 전 그룹 빅뱅의 멤버 탑의 대마초 흡입사실이 적발되었다. 그는 온갖 지탄의 대상이 되었다. 당사자는 사건 이후 신경안정제 과다 복용으로 중환자실에 실려갔다가 퇴원했다. 대중의 과도한 관심만큼 사회적 처벌 또한 예고되어 있었다는 점에서 그가 느꼈을 압박감을 상상해본다. 공인으로서 대중적 영향력을 고려해 이 모든 비난을 응당 허용해야 한다는 생각을 잠시 멈추자. 언론보도의 관심은 그가 아이돌 지망생과 함께 있었다는 선정적인 측면에만 기울었고, 그가 앞으로 받을 처벌과 재기 불능의 시나리오를 써내려갔다. 이것이 옳은 걸까? 혹은 적당한 걸까?

가수 신해철은 대마초를 한 연예인을 법적으로 처벌하는 것엔 이견이 없지만 그 이상으로 인격적 모독을 서슴지 않는 대중의 공격과 그가 불능이 될 때까지 때리는 가학적인 사회만큼은 반성해야 한다며 울분을 토한 적 있다. 한때 대마초 연예인으로 낙인찍힌 사진작가 김중만은 약물검사에서 음성이 나왔는데도 바로 집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대신 강제로 정신병원으로 보내졌고 마약중독이 아님을 스스로 증명하고 나서야 빠져나올 수 있었다. 우리 사회는 연예인의 마약 문제에 있어서는 집요할 정도로 가학적이다.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연예인 대마초 사건을 우리는 여전히 1975년 ‘대마초 파동’의 정서로 보고 있지 않은지 물을 일이다. 한국인의 대마포비아는 연예인을 제물로 한 희생양 만들기를 통해 반복 강화되어 왔다.

■ 대마초는 죄가 없다

불과 47년 전인 1970년만 해도, 대마초가 이 땅에서 금지의 대상이 아니었다는 점을 우리는 잊곤 한다. 대마초는 농촌의 상비약으로 누구나 조금씩은 복용하는 약재였다. 재미있어 즐긴 것도 아니고 단지 담뱃값이 아까워 대마잎을 대체재로 삼아 피는 수준이었다. 대마는 평범하고 가난한 풍경 속에 놓여 삶과 공존하고 있었다.

신문지상에서 대마초가 사회적 문제가 되어 등장한 것은 1960년대 후반부터다. 한국 대마의 환각제 가능성을 알아차린 자들은 미군들이었다. 그들은 대마를 ‘해피 스모크’라는 별칭으로 불렀다. ‘해피 스모크’는 주로 ‘파고다’나 ‘아리랑’ 등의 담배에 대마가루를 첨가해 만들어졌다. 약학박사 이창기는 한국 대마엔 환각 성분인 테트라 하이드로 카나비놀(THC)이 인도, 스페인, 남아프리카공화국, 브라질 등 외국산 대마보다 훨씬 높다고 분석했다. 한국 대마는 환각을 위한 흡연으로서 상당한 효능을 가졌기에 미군부대 주변을 중심으로 빠르게 번져 나갔다. 당시 대마는 농가 삼베 재료로 재배되었으나 한국인들은 그것을 환각제로 사용할 줄 몰랐다. 그러던 차에 기지촌을 중심으로 대마초 흡연자들이 늘어나 점차 한국 젊은이들마저 사용하게 된 것이다. 1970년 법규에 이에 대한 규제 사항이 없어 단속을 하지 못했다. 어차피 대마 열매가 성숙하기 10여일 전에만 잠시 THC 성분이 생길 뿐이라고 판단한 관리들은 농촌에서 어망, 로프, 옷감 등을 만들기 위해 재배한 대마를 강하게 단속하긴 어렵다고 보았다.

반면 주한미군의 마약 관련 범죄는 늘었다. 대체로 대마초 자체의 환각 때문은 아니었고 대마초를 사기 위해 돈을 훔치거나 시비 붙는 일 등에서 발생했다. 주한미군은 이러한 사태를 더 이상 방관할 수 없어 한국 정부에 적극 개입하기를 주문하게 된다. 미군 병사들의 마약사범이 지난 3년 동안 약 80배로 늘어나자 이를 방지하기 위해 마약류단속법 제정이 시급하다고 판단하여 1970년 6월17일 보건사회부에 공문을 보냈다. 내용은 병사들의 마약범죄 대부분이 한국에서 재배되고 있는 대마 때문에 벌어지고 있으니, 이를 단속할 수 있는 법률을 제정하여 미군 병사들의 탈선을 막을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었다(매일경제, ‘대마류 단속 입법을 미군 측서 요청’, 1970·6·19).

이후 습관성 의약품 관리법이 1970년 10월16일 발효되었다. 화학적 구분으로 테트라 하이드로 카나비놀이 습관성 의약품으로 명시되었다. 1976년 3월에는 영리 목적으로 대마초를 소지했거나 상습적으로 대마초를 섭취한 사람에게 최고 사형까지 가능한 법안이 발의되었고, 같은 해 4월엔 대마를 습관성 의약품의 범주에서 분리해 통제할 수 있는 대마관리법이 제정되었다.

■ 세계는 대마를 알아가는 중

대마초에 대한 우리 사회의 통제는 의도적 과잉이었거나 대체로 외부적 요인에서 기인했다. 조석연은 이를 “1970년대 마약 통제 정책은 마약의 생산과 사용에 대한 국가의 역할이 강화되는 과정이면서, 한편으로는 ‘국민’이 마약의 자생적 이용에 대한 전통적 권리를 잃게 되는 과정이었다”고 말한다(‘마약법 제정 이후 한국의 마약문제와 국가통제(1957∼1976)’, <한국근현대사연구> 2013년 여름호). 마약의 권리를 국가에 뺏긴 이후부터 대마초에 대해 우리는 제대로 아는 게 없다.

대마초의 중독성은 담배보다도 작다. 사용자는 대체로 대마초를 피운 후 공격성을 잃고 유순해진다. 대마초의 환각성이란 헛것이 보이는 게 아니라 기분을 나른하게 만드는 것에 가깝다. 대마초는 나른한 가운데 되레 또렷하게 주변상황을 인지하고, 청각이나 시각이 예민해져 예술적 능력을 배가시킨다.

최근 미국은 워싱턴주와 콜로라도주에서 투표를 통해 오락용 마리화나를 합법화했다. 27개 주에서도 일부 의료용 대마초 혹은 제한적인 오락용 대마초를 허용했다. 캐나다는 2018년 6월부터 오락용 대마초를 합법화한다. 전 세계 많은 나라에서 대마초에 대해 완화하는 정책을 취하고 있는 것은 대마초의 위험성이 그동안 너무 오랫동안 부풀려졌음을 인정하고 대마초의 효능을 새롭게 확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마초의 THC 성분에 알츠하이머 치매를 유발하는 독성단백질을 막는 능력이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중국은 자국의 마약 억제정책에도 불구하고 대마를 꾸준히 연구해 관련 특허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정보기술(IT)을 접목해 대마 재배를 신산업으로 키워내려 하고 있다. 세계는 지금 대마혁명의 시대에 돌입했다. 의료적 차원이든, 오락적 차원이든, 산업적 차원이든 대마의 가능성이 무한히 열리고 있는 중이다.

의사 데이비드 커사렛은 대마초의 위험에 대해 더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마리화나를 찾는 이유가 단지 약효 때문만이 아니라 사용자끼리 상호작용하는 다정다감한 문화, 그로 인해 얻는 병에 대한 통제력에 있음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우리 시대 대마초는 공동체를 구성하는 법까지도 가르칠 수 있다.

2004년 영화배우 김부선은 ‘대마초는 마약이 아니다’라는 주장과 함께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의 대마초 관련 규정에 대해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다. 내용은 현재의 대마초 흡연 처벌 규정이 국민의 행복추구권·평등권·과잉금지원칙을 위배하고 있으며, 대마초의 합법화는 아닐지라도 비범죄화를 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비록 기각되었지만 대마초에 대한 부정적 시선을 한번쯤 재고하게 만든 용기 있는 시도라 할 수 있다. 박정희 정권에서 시작한 이 금지를 이제는 의심하고 넘어서도 될 시기라고 생각한다. 갈 길이 요원하지만, 한국인이 만든 유일한 대마초 노래의 한 구절을 적으며 마친다.

‘1930년대에는/ 죄악이라고 했지만/ 티모시 리어리 박사는/ 죄악을 엎어/ 에이즈와 암 같은/ 병을 고친다고 말했어/ 난 굶주렸어/ 말 한 마리도 먹을 수 있어/ 오 마리화나/ 네가 원하는 걸 해라/ 오 마리화나’(한대수, ‘마리화나’, 9집 <고독>, 2002)

<경향신문·인문학협동조합 공동기획>

■필자 오영진

[금지를 금지하라](4)‘무죄’였던 대마초, 박정희 정부 ‘중형’···세계는 합법화 추세

한국 기술문화와 서브컬처를 연구한다. 주요 평론으로 <컴퓨터게임과 유희자본주의> <인디의 추억> 등이 있고, 공저로 <팽목항에서 불어오는 바람>(2014), <한국 테크노컬처 연대기>(2017) 등이 있다. 인문학협동조합 총괄이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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