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12일 몰래카메라의 고민

장회정 기자

[오래전‘이날’]은 1957년부터 2007년까지 매 10년마다의 경향신문의 같은 날 보도를 살펴보는 코너입니다. 매일 업데이트 합니다.

■ 1997년의 ‘몰래카메라’의 고민

[오래전‘이날’]9월12일 몰래카메라의 고민

2017년 9월 현재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몰래카메라’ ‘고민’을 넣어봤습니다. ‘몰래카메라에 찍힐까봐 고민’이라는 글이 대부분일 줄 알았는데, 이게 웬일입니까. ‘지하철에서 나도 모르게 그냥 앞에 있는 여성분을 몰래 찍었는데, 몰래카메라 신고를 받아서 고민입니다’라는 글이 심심찮게 보입니다. 이에 대구를 이루듯 ‘몰래카메라 처벌 받을 위기에 놓여서 고민하고 계신다면’ 도와주겠다는 법률사무소의 포스팅이 줄을 잇습니다.

20년 전 오늘 경향신문이 보도한 ‘몰래카메라의 고민’이 무색합니다. 몰래카메라의 태생적 쓰임새에 대해 돌아보게 됩니다.

“몰래카메라의 기술은 점점 발달해서 이제 못 찍는 것이 없을 정도인데 반대로 법현실은 점점 어려워진다. 그것이 지금 몰카가 처한 상황이다”

당시 추적 고발 프로그램에서 없어서는 안 될 장비가 몰래카메라였습니다. 1990년대 말 이미 몰래카메라는 장족의 발전을 거듭하여 넥타이핀이나 안경에 매달 수 있을 정도의 작은 렌즈 유형이 나왔습니다. 직경 2~3mm의 구멍만 있으면 촬영이 가능하기 때문에 구멍을 뚫은 가방에 카메라를 넣은 뒤 몰래 촬영을 시도했습니다. 방송사 마다 이런 가방이 여러 개 있었다고 합니다.

‘몰카’를 활용한 프로그램이 화제를 모으자 ‘관계자’들의 경계심도 고조됐습니다. 촬영 중 ‘들키는’ 사태가 빚어졌습니다.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팀은 다단계 판매회사를 취재하다가 “몰래 카메라다!”라는 외침과 함께 봉변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나이트클럽 취재를 앞두고 입구에서 가방검사를 당하는 바람에 취재에 실패한 케이스도 있습니다. 관공서에서도 “가방은 저쪽에다 놓으십시오”라며 경계를 받기 일쑤였습니다.

일단 몰래 촬영하는 방식이 꺼림칙하고 화면도 거칠지만 취재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사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제작진들의 입장이었죠. 몰래카메라 없이는 고발프로그램이 존재하기 어렵다는 것도 큰 이유였습니다. 근거 있는 주장을 위한 ‘확실한 증거’ 확보를 위해서 불가피한 방법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오래전‘이날’]9월12일 몰래카메라의 고민

물론 당시에도 반대 여론은 있었습니다. 기사에는 <시사매거진 2580>이 몰래카메라로 찍은 신입생환영회 장면을 방송해 1600만원의 배상판결을 받은 사례가 언급됐습니다. 국민의 알권리와 개인의 사생활 보호라는 첨예한 대립을 몰고 왔던 몰래카메라는 오래지 않아 제2, 제3의 범죄를 양산하는 강력한 도구가 됩니다. 불과 2년 뒤 1999년에 ‘선진국 여성 60%가 휴대-폭발적 인기’라는 카피를 내 건 몰래카메라 탐지기 광고가 신문지상에 실립니다. 몰카 범죄 성행도 선진국으로 가는 수순이라고 받아들였던 걸까요. 2000년 한 온라인욕실용품 전문쇼핑몰은 사이트 오픈을 기념해 회원들에게 영화관람권을 비롯한 몇 가지 사은품을 내걸었습니다. 그중 하나가‘몰래카메라 탐지기’였습니다.

몰래카메라 관련 범죄는 해마다 늘어납니다. 2010년대. 몰래 촬영한 영상이 더이상 유통되지 않도록 온라인 기록을 삭제해주는 디지털 장의사가 성업 중이라는 사실은 어쩌면 필연적으로 보입니다. 지난 세기 몰래카메라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대처하지 않은 탓이라고 하기엔 참으로 가혹한 현실입니다.


Today`s HOT
우크라이난 군인 추모의 벽.. 나토 사무 총장이 방문하다. 홍수로 침수된 말레이시아 샤알람 제 34주년, 독일 통일의 날 레바논에서 대피하는 그리스 국민들
멕시코의 여성 대통령 클라우디아 세인바움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평화 시위
베네수엘라의 10월에 맞이하는 크리스마스 보트 전복사건.. 다수의 희생자 발생한 콩고민주공화국
허리케인 헬레네로 인한 미국의 마을 모습 인도의 간디 추모식 샌프란시스코의 어느 더운 날 칠레의 모아이석상, 다시 한 번 사람들의 관심을 받다.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