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반 피난·스스로 피할 대피소…결국 사람도 함께 사는 대책이다

심윤지 기자

“비행기를 타면 어른 먼저 산소마스크를 쓰라고 하죠. 이와 똑같습니다. 반려동물을 구하려면 일단 내가 살아남는 게 제1의 원칙입니다. 재난 상황에서 나중은 없어요. 한 번 헤어지면 영영 만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팻재난위기관리사 채미효씨가 24일 경기 광주시 자택에서 재난 상황을 대비해 반려견인 뭉탱이를 하드케이지에 옮기는 훈련을 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lightroad@kyunghyang.com

팻재난위기관리사 채미효씨가 24일 경기 광주시 자택에서 재난 상황을 대비해 반려견인 뭉탱이를 하드케이지에 옮기는 훈련을 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lightroad@kyunghyang.com

지난 21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의 서울복지동물센터에서 ‘반려동물 재난 대책 매뉴얼’ 강의가 열렸다. 강사로 나선 채미효씨(39)는 국내 최초의 ‘펫재난위기관리사’다. 반려동물 대체영양 교육기업을 운영하던 그는 비상상황에서 동물의 먹이에 대해 고민하던 중 일본의 한 민간동물협회가 인증한 펫재난위기관리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강연회는 우리동물병원 생명사회적협동조합이 조합원인 채씨와 함께 마련했다. 경북 포항 지진 이후 사람들의 대피요령과 더불어 반려동물 재난 대책에 대한 관심도 높은 가운데 재난 시 반려동물 대피요령을 채씨에게 들어봤다.

동반 피난하려면 미리 준비해야

채씨는 재난 발생 시 곧바로 반려동물을 데리고 피난할 수 있도록 평소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채씨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때도 금방 집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반려동물을 두고 대피했다가 다시 만나지 못하게 된 경우가 많았다”며 “최대한 함께 피난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반려동물과 떨어진 상태에서 재난이 발생할 가능성도 크다. 이에 대비해서는 반려동물이 스스로 몸을 피할 수 있는 피난처를 미리 만들어 교육시켜야 한다. 일본의 경우 지진이 있기 10~20여초 전부터 경보 방송이 울리는데 이 소리를 들은 동물들은 위험을 감지하고 안전한 공간으로 피신한다고 한다. 채씨는 “평소 훈련을 통해 피난처의 위치를 반려동물에게 인식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사시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반려동물이 있는 이웃과 관계망을 형성하는 것도 중요하다. 채씨는 “현실적으로는 보호자가 함께 있을 때보다 없을 때 재난이 발생할 확률이 더 크다”며 “다른 이웃들과 구조 책임을 분담하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반려동물을 기르고 알려주는 ‘펫 레스큐’ 표지판을 대문에 부착하기도 한다. 일반인 출입이 통제된 상황에서 소방관 등에 구조를 요청하기 위해서다.

동반 피난을 위한 과제

국내에서 반려동물과의 동반 피난은 쉽지 않다. 대피소에 반려동물은 들어갈 수 없다. 보호자들 개인의 노력을 넘어 정부 차원의 지원과 협력이 필요한 이유다. 채씨는 반려동물을 기르지 않는 사람들의 생각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반려동물이 나에게는 가족이지만 타인에게는 위생적이지 못하고 위협적인 존재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반려동물 출입이 가능한 대피소는 10곳 중 1곳쯤 된다고 한다. 그것도 반려동물과 사람이 한 공간에서 생활하는 것은 아니다. 빈 공간에 보호자가 가져온 캔넬(이동식 우리)을 일렬로 늘어두는 수준이다. 동물 출입이 가능한 대피소가 마련된다 해도 숙제는 남는다. 동물이 스트레스를 받아 주인을 공격하는 등의 크고 작은 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다. 채씨는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이라면 이런 상황에서의 위험성을 미리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하드케이지·프로필카드 등 생존배낭 도구들과 함께 있는 반려견.

하드케이지·프로필카드 등 생존배낭 도구들과 함께 있는 반려견.

선진국의 동물 피난 매뉴얼

반려동물 가구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동물을 위한 재난 대책은 곧 사람을 위한 대책이다. 실제로 동일본 대지진 이후 반려동물과 어쩔 수 없이 이별해야 했던 사람들의 정신적 고통이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반려인들만 피해를 본 것이 아니다. 방치 상태의 동물들이 민가를 공격하거나 방사능과 전염병에 감염되는 일도 있었다. 일본 환경성은 2013년 재해 시 반려동물 구호 대책 가이드라인을 발표해 반려동물을 위한 재난 대책 필요성을 공식 인정했다.

미국에서는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 피해 이후 동물에 대한 비상 재난 대책이 논의됐다. 이듬해 미 하원은 ‘반려동물 대피와 이동에 관한 법률’을 제정했고, 30개 이상의 주에서 실제로 동물을 포함하는 대피 계획이 수립됐다. 지난 8월 허리케인 하비 피해가 발생했을 때 일부 주에서는 동물보호소를 운영해 재난 상황에서 동물과 주인이 만날 수 있게 조치했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으로 주민이 긴급 대피했던 2010년, 동물들을 구하러 연평도에 들어갔던 박소연 동물권단체 ‘케어’ 대표는 당시를 회고하며 이렇게 말했다. “묶여 있던 개들은 굶어 죽고 풀려 있던 동물들은 서로 물어뜯다가 죽어 나가고 있었어요. 섬이라 동물들을 배에 태워 나올 수도 없고 주인들은 발만 동동 굴렀죠. 주민들이 자기 동물을 데리고 나올 방편을 미리 마련해야 합니다. 구조·구호 활동은 민간에서 해도 함께 머물 수 있는 대피소는 지자체에서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동반 피난·스스로 피할 대피소…결국 사람도 함께 사는 대책이다
집 안에 피난처 미리 마련해 평소 인지시켜 주세요
주의사항 Q & A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이 재난 발생 때 해야 할 사항은 무엇일까. ‘펫재난위기관리사’ 채미효씨(39)와의 질의응답으로 알아본다.

- 반려동물과 떨어져 있는데 재난이 발생하면.

“가장 좋은 방법은 집 안에 반려동물 스스로 몸을 피할 피난처를 사전에 마련해두는 것이다. 피난처는 벽과 천장이 막혀 있는 독립공간이 적합하다. 평소 훈련을 통해 위험상황에서 몸을 숨길 수 있는 공간이 있음을 반려동물에게 인지시켜 둔다.”

- 재난 발생 시 고양이가 숨어버리면.

“고양이의 기본적 생명력을 믿어야 한다. 고양이를 찾으려고 지체하다 보호자가 대피 시점을 놓쳐서는 안된다. 고양이는 개에 비해 위험을 인지하고 이에 대응하는 속도가 빠른 편이다. 고양이가 재난 발생 직후 집 안에 숨어서 2~3주 동안 나오지 않는 경우도 있는데 일본에서는 고양이가 지진 직후 집을 나갔다가 한 달 만에 돌아온 경우도 있었다.”

- 손잡이가 없는 캔넬(이동식 우리)을 사용 중이다.

“보통 큰 사이즈의 캔넬에는 손잡이가 없다. 캔넬에 넣어 이동하기 힘든 중대형견은 생존가방을 직접 메도록 한 뒤 제 발로 대피하도록 한다. 발을 다칠 위험이 있으니 신발을 신겨준다.”

- 생존가방에 챙겨야 할 물건은.

“견주들은 소형견, 대형견을 막론하고 입마개를 반드시 챙겨야 한다.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는 재난 상황에서는 개가 주인 등을 무는 사고가 많이 일어난다. 고양이 보호자들은 캣브러시 등 그루밍(몸 손질) 도구를 챙겨야 한다. 그루밍을 제대로 못하는 상황이 오면 반려묘가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다. 반려동물에게 달아줄 프로필 카드도 작성해 넣어두었다가 피난 시 부착할 수 있게 한다.”

- 개나 고양이 아닌 다른 동물은 어떻게 대피시키나.

“개와 고양이를 위한 대피 매뉴얼도 부족한 편이라 다른 동물은 상황이 더 심각하다. 특히 반려동물이 건초 등 시중에서 구하기 힘든 먹이를 먹는 종이라면 여분의 식량을 개·고양이보다 더넉넉하게 준비해야 한다. 평소부터 식품을 넉넉히 비축해두고 먹은 만큼 채워 넣어 일정량을 유지하는 게 좋다.”

- 고양이를 4마리 키우고 있다. 케이지 네 개를 동시에 들고 대피하는 게 불가능한 상황인데 한 케이지에 2마리씩 넣어도 되나.

“평상시 고양이들 사이가 아무리 좋았더라도 한 공간 안에 같이 두는 것은 절대로 안된다. 재난 상황에서는 동물들도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는다.”

- 반려동물 식별용 마이크로칩이 있는데 별도로 프로필 카드를 작성해야 하나.

“생존가방에 넣는 재난용 프로필 카드는 보호자 신상명세를 포함해 누가 언제 어디서 보더라도 쉽게 알아보도록 작성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름표에는 동물 사진이 아니라 가족 구성원과 함께 찍은 사진을 넣는다. 재난 상황에서는 통신이 마비될 확률이 있으므로 견주 연락처 등이 적힌 아날로그형 목걸이를 착용시키는 편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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