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벌 약한 데이트폭력…여성 10명 중 9명이 시달렸다읽음

이진주 기자

서울시 첫 실태조사

20~60세 여성 88%, 신체폭력부터 휴대전화 점검 등 피해

신고해도 “연인 사이 일” 조치 안 해…경찰 신고 9.1%뿐

처벌 약한 데이트폭력…여성 10명 중 9명이 시달렸다

20대 여성 ㄱ씨는 연인 사이인 남성에게 심한 폭행을 당했다. 이별을 통보하자 남성은 성관계 동영상을 유출하겠다며 협박했다. 협박을 견디다 못한 ㄱ씨는 경찰에 피해사실을 알렸지만, 연인사이의 일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바람에 자포자기 상태에 빠졌다. 가정폭력 사건은 ‘가정폭력범죄특례법’에 따라 경찰관이 긴급임시조치로 격리 등을 명할 수 있지만, 데이트폭력은 형법상 폭행·상해죄 등으로 처리돼 개별 경찰관 의지에 맡겨져있다.

연인 사이에서 여성을 상대로 한 데이트폭력이 꾸준히 늘고 있다. 서울에 사는 여성 2000명을 대상으로 데이트폭력 실태를 조사한 결과 10명 중 9명가량은 연인에게 데이트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데이트폭력을 당한 여성의 절반 가까이(46.4%)는 폭력을 행사한 상대방과 결혼하고, 이 중 17.4%는 가정폭력에도 시달리는 것으로 파악됐다.

서울시 여성가족재단은 피해자 대부분이 여성인 데이트폭력의 피해를 파악하기 위해 ‘데이트폭력 피해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30일 발표했다.

실태조사는 지난해 11월 서울에 사는 20~60세 여성 2000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로 이뤄졌다. 설문조사에 참여한 여성 중 연인에게 데이트폭력을 당했다고 답한 사람은 88.5%에 해당하는 1770명이었다.

데이트폭력에는 신체적 폭력뿐 아니라 언어폭력, 휴대전화 점검, 옷차림 통제 등도 포함된다. 유형별로 시작 시기는 다르지만 대부분 사귄 후 1년 이내에 폭력이 시작된 것으로 파악됐다.

피해 유형을 살펴보면 행동을 통제하는 경우는 ‘누구와 있었는지 항상 확인’(62.4%)이 가장 많았고, ‘옷차림 간섭 및 제한’(56.8%)이 뒤를 이었다. 언어·정서·경제적 데이트폭력은 ‘화가 나서 발을 세게 구르거나 문을 세게 닫음(42.5%), ‘안 좋은 일이 생기면 너 때문이야라는 말을 한다’(42.2%) 순으로 나타났다.

신체폭력은 ‘팔목이나 몸을 힘껏 움켜잡음’(35%)이 가장 많았고, ‘칼(가위) 등의 흉기로 상해’(11.6%)와 같이 폭력 정도가 심한 경우도 10%를 넘었다.

성적폭력은 ‘원하지 않는데 몸을 만짐’(44.2%), ‘나의 의사에 상관없이 가슴, 엉덩이 또는 성기를 만짐’(41.2%)이 가장 많았다. 또 ‘성관계를 하기 위해 완력이나 흉기 사용’(14.7%), ‘원치 않는 성관계 동영상이나 나체 사진을 찍음’(13.8%)과 같은 피해도 나타났다.

여성들은 데이트폭력을 당하고서도 절반 이상이 별다른 조처를 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신체적 폭력을 겪은 뒤 경찰에 신고했다는 응답은 9.1%에 불과했다. 경찰에 신고하지 않거나 도움을 요청하지 않은 이유를 물어보니 ‘피해가 심각하지 않아서’가 가장 큰 비율을 차지했다. 피해의 심각성을 알고 있었지만 ‘주변에 알려지는 것이 싫어서’ ‘도움이 될 것 같지 않다’ 등의 답변이 나왔다.

여성들은 데이트폭력의 원인으로 ‘가해자에 대한 미약한 처벌’(58.7%)을 주원인으로 꼽았다. ‘여성혐오 분위기 확산’을 원인으로 든 응답은 20대(15.9%)에서 가장 많이 나왔으며 연령이 높아질수록 감소했다. 데이트폭력 예방을 위한 정책으로 ‘가해자에 대한 법적 조치 강화’(73%), 피해 여성을 위한 정책으로 ‘가해자 접근금지 등 신변보호 조치’(70.9%)가 가장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서울시 여성가족재단 강희영 연구위원은 “데이트폭력이 여성폭력의 하나라는 사회적 인식이 약한 데서 문제가 시작된다. 데이트폭력에 대한 예방교육 및 피해지원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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