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전국에서 떼죽음을 당한 야생 조류가 1000마리가 넘는다. 조류인플루엔자(AI) 때문이 아니다. 사인은 사람들이 일부러 뿌린 농약이었다.
환경부 국립환경과학원은 올해 1월부터 12월18일까지 발생한 야생조류 집단폐사 사례를 분석해보니 68%의 사체에서 농약 성분이 검출됐다고 25일 밝혔다. 올해 당국이 파악한 야생조류 집단폐사는 62건 1201마리였고, 그중 28건 1076마리를 분석했다. 그 결과 19건 1000마리에서 카보퓨란, 펜치온 등 농약 성분 13종이 검출됐다는 것이다.
농약은 주로 새의 위 안에 있는 볍씨 따위 음식물이나 간에서 나왔다. AI 바이러스는 하나도 검출되지 않았다. 농약 성분이 나오지 않은 새들은 질병이나 굶주림 등 자연사나 사고사로 추정됐다.
농약에 중독된 새들의 집단 폐사는 철새가 찾아오는 겨울철에 많이 발생한다. 전체의 90%인 17건이 1~3월에 일어나 949마리가 죽었다. 농약 중독으로 죽은 야생조류는 철새가 11종 868마리, 텃새가 3종 132마리로 집계됐다. 철새 중에는 가창오리가 56.0%로 가장 많았고 떼까마귀(8.6%), 청둥오리(8.5%), 흰뺨검둥오리(8.3%) 등이 뒤를 이었다. 텃새들은 직박구리, 까마귀, 비둘기 숫자가 많았다.
올해 최악의 집단 폐사 사례는 지난 2월 당진에서 발생했다. 가창오리 245마리가 떼로 죽었는데 뱃 속에서 카보퓨란 등 농약 성분이 많게는 치사량의 60배가량 검출됐다. 3월에는 충남 청양의 논에서 고라니 사체에 농약을 묻혀 멸종위기 야생생물 Ⅱ급인 독수리 14마리를 숨지게 한 사례도 확인됐다. 11월 울산에서 떼까마귀 34마리가 숨졌을 때도 농약 성분 펜치온이 검출됐다. 이달 4일에도 경남 주남저수지에서 농약 때문에 멸종위기 야생생물 Ⅱ급 큰고니 10마리가 숨진 채 발견됐다.
농약은 새들을 죽일뿐 아니라, 2차 피해를 일으킬 수도 있다. 독수리 등 상위포식자가 이를 뜯어 먹고 생태계 전체가 위험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야생조류 집단 폐사는 해마다 끊이지 않는다. 지난해 야생조류 집단폐사 조사에서도 90%가 농약 때문에 죽은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검출된 농약 중에는 판매가 금지된 것들도 있었다.
새들이 야생에서 먹이를 찾으면서 살충제나 제초제 성분을 먹을 수는 있지만, 폐사에 이르지는 않는다. 고의적으로 볍씨 등에 섞어 살포했기 때문에 고농도 농약성분으로 죽게 된다. 농사에 방해되는 야생조류를 쫓거나 밀렵하기 위해 일부러 유독물을 뿌리는 것이다.
환경부는 새들을 죽이려고 농약을 살포하는 일이 반복되는 걸 막기 위해 내년 3월까지 감시를 강화하기로 했다. ‘야생동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유독물이나 농약 등을 살포해 야생생물을 포획하거나 죽이는 경우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멸종위기 야생생물이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만원 이상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선고받을 수 있다. 정종선 환경부 자연환경보전정책관은 “생태계의 귀중한 한 부분인 철새를 보호하고 공존할 수 있는 의식이 확산되도록, 강력한 처벌과 함께 홍보활동도 병행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