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연의 색다른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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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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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트트랙 황제’ 안현수, 평창 올림픽 이후 첫 인터뷰

“러시아서 코치직 제안했지만…내가 거절해 결렬, 3월 재협상”

빙상계 미투에 합숙훈련 폐지 “선수들 원하는지 생각해봐야”

[박주연의 색다른 인터뷰]안현수 평창 좌절 후 첫 인터뷰 “중국행은 ‘뜬소문’…선수로 계속 뛸 것”

“선수로 뛸 거예요.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에 출전하고 싶어요.”

‘쇼트트랙의 황제’로 불렸던 안현수 선수(34·사진)는 지난 8일 경기 하남시 자택에서 경향신문과 만나 이렇게 밝혔다. 지난해 평창 동계올림픽 출전이 좌절된 후 한국 언론과 한 첫 인터뷰였다. 알렉세이 크라프초프 러시아빙상연맹 회장은 지난해 9월5일(현지시간) “빅토르 안이 선수 경력을 마무리하고 러시아를 떠나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 후 그가 중국 국가대표 코치로 간다거나 한체대 실내빙상장에서 플레잉코치로 일한다는 소문도 돌았다. 안 선수는 “중국으로 간다는 이야기도 거짓이고, 플레잉코치로 일한 적도 없다”고 말했다. 꼭 다섯 달 만에 러시아에서 시작된 은퇴설을 직접 부인하고, 선수생활을 계속할 뜻을 밝힌 셈이다.

그는 지난해 4월부터 아내 우나리씨(35)·딸 제인(4)과 함께 한국에 머물렀다고 했다. 그는 “러시아빙상연맹 측은 작년 8월 대표팀 코치를 제안했지만 나는 선수생활을 더하길 원해 협상이 결렬됐다”고 밝혔다. 크라프초프 회장의 말도 이 직후 나온 것이라고 했다. 안 선수는 “그러나 이후 러시아 측과 나는 생각할 시간을 더 갖기로 하고 올 3월에 최종 결론을 도출하자고 합의했다”며 “심사숙고했지만 내 마음은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안 선수는 2006년 이탈리아 토리노 동계올림픽에서 3관왕에 오르고, 2003~2007년 세계선수권대회 5연패를 달성한 한국 쇼트트랙의 간판이었다. 하지만 부상과 소속팀(성남시청)이 해체되면서 2011년 러시아로 귀화했다. 이후 2014년 러시아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빅토르 안이라는 이름으로 500m, 1000m, 5000m 계주까지 3관왕을 달성했다. 그는 지난해 2월 열린 평창 올림픽을 마지막 무대로 삼고 싶었지만, 국제올림픽위원회(IOC)로부터 도핑 의혹을 받고 참가하지 못했다.

안 선수는 도핑 문제에 대해서는 다시금 결백을 주장했다. 또 조재범 전 쇼트트랙 국가대표 코치의 심석희 선수 폭행·성폭력 파문에 대해서는 “결코 일어나서는 안될 일”이라면서 “(사실이라면) 석희가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냈을지 너무 안타깝다. 운동하며 극복하려는 모습이 대단하고 멋있다”고 말했다. 이어 “합숙훈련을 없앤다는 등 해결방안이라는 것들이 정작 선수들이 원하는 것인지 생각해봐야 한다”며 “후배들도 흔들림 없이 목표를 향해 정진하면서 이제 자신의 목소리를 내야 할 때”라고 주문했다.

■ “올림픽 출전 위해 러 대표 재도전…심석희, 안타깝고 대단하다 생각”

쇼트트랙 전 국가대표 안현수 선수가 지난 8일 경기 하남시 자택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며 자신의 향후 거취와 그간의 일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쇼트트랙 전 국가대표 안현수 선수가 지난 8일 경기 하남시 자택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며 자신의 향후 거취와 그간의 일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 이번이 평창 동계올림픽 이후 국내 언론과의 첫 인터뷰예요. 그동안 왜 언론과의 접촉을 꺼렸나요.

“러시아에서 활동할 때도 인터뷰를 자제했어요. 러시아어가 유창하지 않다보니 단어 하나 잘못 써서 현지 언론은 물론 한국 언론에도 잘못된 내용이 보도되는 경우가 있었거든요. 가령 소치 올림픽 1500m 경기 직후 알렉세이 크라프초프 회장님이 ‘빅토르 안이 코치를 맡아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나봐요. 기자들이 저의 은퇴를 기정사실로 전제하면서 러시아에 남을 건지, 한국으로 돌아갈 건지 물었어요. 저는 당연히 선수생활을 염두에 뒀기에 러시아에 남을 거라고 했죠. 그런데 제 말이 와전돼 한국 언론에는 ‘한국에 절대 돌아가지 않는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됐어요. 말한 그대로 전달되지 않는데 굳이 인터뷰를 할 필요가 있을까 생각했어요.”

- 그런데 왜 이번에 인터뷰를 하기로 마음먹었나요.

“최근 저를 두고 사실과 다른 내용의 기사들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에요. 처음에는 그러려니 했지만, 오보들이 사실인 것처럼 확산되는 것을 보고 더 이상 침묵하면 안되겠다고 생각했어요.”

- 지난해 9월5일(현지시간) 알렉세이 크라프초프 러시아빙상연맹 회장이 현지 언론과 인터뷰하면서 “빅토르 안이 선수 경력을 마무리하고 러시아를 떠나기로 했다. 아이를 한국에서 키우고 싶어한다”고 말했어요. 안 선수가 러시아 코치직을 거절했다는 내용도 있었는데, 진실은 뭔가요.

“회장님은 평창 올림픽이 끝나고 제가 선수생활을 그만두기를 바라셨어요. 러시아 대표팀 코치를 맡아 2022년 베이징 올림픽을 준비해달라고 작년 8월에 제안하셨죠. 하지만 저는 한국에 있을 때 큰 부상으로 수술을 4번씩 하면서 힘든 시간을 보낸 기간이 길었던 데다, 평창을 마지막 무대로 은퇴할 생각이었는데 좌절됐잖아요. 미련이 너무 많이 남아 회장님께 선수로 더 뛰고 싶다고 말씀드렸어요. 코치를 맡을 생각은 전혀 없었어요.”

- 크라프초프 회장의 안 선수 관련 인터뷰가 외신에 보도된 시점이 협상이 결렬된 직후였군요. 그러면 이후 한국에는 아주 정착하려고 귀국한 건가요.

“귀국 시점은 작년 4월이에요. 시즌이 끝나고 매년 4월이면 한국에서 휴가를 보냈거든요. 작년에는 특히 아내의 러시아 비자까지 만료돼 비상 서류를 발급받아 서둘러 들어왔어요. 그러다 8월에 러시아로 건너가 회장님을 만난 거예요. 이후 러시아 측과 저는 각자 생각할 시간을 더 가진 뒤 올 3월 최종 결론을 도출하기로 했어요. 그래서 한국에 계속 있었던 거예요.”

- 크라프초프 회장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타스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계속 연락을 하고 있으며 여러 가능성을 협의하고 있다”고 밝혔어요. 지난해 8월의 러시아 측 제안 내용과 달라진 부분이 있나요.

“지금은 선수로 계약하는 것, 플레잉코치로서 선수와 코치를 겸하는 것, 국가대표팀이나 주니어팀 코치로 계약하는 것 등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놓고 고민하시는 것으로 알아요.”

- 3월이 목전인데, 안 선수는 아직 결론이 안 났습니까.

“(한동안 침묵한 후) 선수로 뛰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요. 평창 때 계속 몸이 너무 안 좋았어요. 지금 타면서 그때만큼 컨디션이 안 좋으면 이 길이 아닌가보다 할 텐데, 느낌이 평창을 준비할 때보다 괜찮으니까….”

8월 러 국가대표선발전에 나갈 것
만약 성적 안 좋으면 코치도 고려
4차례 수술 등 굴곡진 선수생활
정상·바닥 다 겪어 공감력 높아져

- 러시아에서 끝내 ‘선수 안현수’를 수용하지 않으면 어떻게 할 생각인가요.

“개인적으로 열심히 훈련해서 올 8월 러시아에서 열리는 국가대표선발전에 출전할 거예요. 거기서 순위에 들어 국가대표가 되면 계속 가는 거죠. 베이징 올림픽까지요. 제 국적이 러시아여서 한국 선수로는 출전할 수 없어요.”

그의 눈이 반짝였다. 얼굴도 눈에 띄게 환해졌다. 올림픽을 향한 그의 목마름이 얼마나 큰지 엿보이는 듯했다.

- 만약 국가대표선발전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한다면 한국이나 러시아에서 코치로 살아갈 건가요.

“러시아 쇼트트랙 발전을 위해 제가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있으면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또 한국에서도 제 경험을 토대로 어린 선수들이 쇼트트랙을 즐겁게 할 수 있도록 돕고 싶어요. 그때가 되면 폭넓게 열어놓고 생각해봐야죠.”

안현수 선수의 경기 하남시 자택에 진열돼 있는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 메달(금 3, 동 1개)과 2014 소치 동계올림픽 메달(금 3, 동 1개).

안현수 선수의 경기 하남시 자택에 진열돼 있는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 메달(금 3, 동 1개)과 2014 소치 동계올림픽 메달(금 3, 동 1개).

- 중국의 쇼트트랙 간판 선수였던 왕멍이 이끄는 주니어팀이 안 선수에게 코치직을 제안했다는 보도가 최근 나왔어요. 사실인가요.

“제안받은 것은 맞아요. 작년 7월 휴가 겸 중국에 가서 총감독인 왕멍 등 클럽 관계자들과 미팅도 했어요. 국가대표팀이 아니라고 해서 만난 것인데, 실상은 국가대표팀이나 매한가지였어요. 중국은 지금까지는 대표팀 감독에게 선수 선발권이 주어졌어요. 하지만 2022년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한국처럼 선발전을 통해 선수를 선발하는 것으로 바뀌었다고 해요. 왕멍 팀도 정부 지원을 받으며 훈련하고 있고, 이들 중 선발전을 통과한 선수들은 국가대표가 되는 거예요.”

- 중국 측이 제시한 코치 영입 조건이 굉장히 좋다고 하던데요.

“쇼트트랙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금액이에요. 제 능력을 그만큼 인정해주는 것이니 그에 대해선 감사한 일이죠.”

- 연봉으로 치면 수억원대쯤 되나요.

“(잠시 생각하다가) 예.”

- 그런데 가지 않기로 한 건가요.

“저는 선수생활을 원하기 때문에 중국 측 제안에 대해 결정할 수 없다고 답했어요. 또 러시아의 대표팀 코치 제안을 거절했는데 또 다른 나라의 대표팀을 맡는다는 것은 너무 죄송스러운 일이잖아요. 해외 전지훈련이 많아 가족과 오래 떨어져 지내야 하는 것도 부담스럽고요. 사실 주위에서는 중국행을 권하는 분들이 많아요. 정말 다 포기하고 조건만 보고 중국행을 택할 것인지를 두고 아내와 많은 대화를 나눴어요. 그런데 저와 제 가족이 행복하지 않다면? 하고 따져보니 중국이 선택지에서 제일 먼저 밀려났어요. 중국 측에서는 지금도 제가 오기를 바라죠.”

- 혹시 또 다른 나라에서도 국가대표팀 코치 영입 제안이 있었나요.

“제안을 받았지만 어느 나라인지 말씀드리는 것은 지금으로서는 적절하지 않은 것 같아요.”

- ‘스타플레이어는 좋은 지도자가 되기 힘들다’는 말도 있는데 왜 3개국에서 코치 경험이 전무한 안 선수를 대표팀 코치로 영입하려는 걸까요.

“저도 궁금해 물었더니, ‘네가 잘할지 못할지는 모르지만 선수경력과 살아온 인생을 보고 믿는다’고 했어요. 제가 굴곡진 선수생활을 했잖아요. 부상과 4번의 수술을 받으며 순식간에 제일 꼭대기에서 제일 밑바닥으로 내려가봤고요. 상위권 선수들은 하위권의 마음을 잘 몰라요. 겪어보지 못했으니까요. 저도 부상 후에야 아, 이런 느낌이구나 하고 처음 알았죠. 덕분에 앞선 선수에게든, 뒤지는 선수에게든 공감력이 높아졌어요(웃음).”

안 선수의 평창 올림픽 출전 불허 이유였던 도핑 의혹 문제를 묻지 않을 수 없다. 2016년 세계반도핑기구 독립위원회(WADA) 보고서(맥라렌 리포트)는 2016년 러시아의 국가적인 금지약물 복용후원을 고발, 세계를 놀라게 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2018년 1월 이 보고서의 신빙성을 인정, 러시아에 대해 평창 올림픽 출전을 금지하고 도핑 규정을 모두 통과해 결백이 입증된 선수만 개인 자격으로 출전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안 선수는 IOC에 공개서한을 보내 결백을 주장하고 2018년 2월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에 IOC의 결정에 대해 제소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 2018년 IOC에 공개서한을 보내 “선수생활을 하면서 나의 정직성과 진실성을 의심받을 만한 구실을 한 번도 주지 않았다”고 주장했어요. 당시 한국 언론에는 맥라렌 리포트에 안 선수 이름이 포함돼 있어 평창 출전이 불허된 것 아니냐는 추측성 기사가 나오기도 했는데요.

“러시아빙상연맹에서 맥라렌 리포트를 검토한 결과 제 이름은 없었다고 해요.”

- 그러면 왜 평창 올림픽 때 IOC가 국기를 떼고 출전할 러시아 선수들을 가리기 위해 만든 도핑 규정을 안 선수는 통과하지 못한 걸까요.

“저도 그걸 모르겠어요. IOC가 평창 올림픽 때 러시아 선수들에게만 적용한 도핑 규정 항목이 16~17개쯤 있다고 하는데 정확히 어떤 항목이 있는지, 제가 어느 항목에서 걸린 건지 알려주지 않으니까요. 제가 IOC에 항의 서한을 보내고 CAS에 제소한 것은 납득이라도 할 수 있게 설명해달라는 거였어요. 하지만 돌아온 답은 똑같았어요. ‘우리는 너희에게 개인적으로 사유를 공개해야 할 이유가 없다’는 거예요.”

도핑 결백…평창 출전 좌절에 억울
국내선 뛸 곳 없어 러시아행 선택
전명규 교수와 사이 나빴던 적 없어

성격이 차분한 그도 순간 답답한지 길게 한숨을 내쉬고 허공만 바라봤다.

“저는 한국에서 선수생활을 할 때도 병적으로 약은 무조건 안 먹었어요. 평창 출전 불허 이유가 정말 약물 복용 문제라면 그에 대한 명확한 답을 주고 징계든, 이전에 딴 메달을 박탈하든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또 저는 평창 전후로 유럽선수권대회(1월)와 세계선수권대회(3월)에 출전했어요. 당연히 이들 국제대회에서도 도핑검사를 해요. 제가 정말 도핑을 했다면 비슷한 시기 열린 이들 대회에서 걸렸어야죠.”

- 올림픽 출전이 좌절돼 상심이 컸겠어요.

“어쨌든 러시아는 제가 선택한 나라잖아요. 러시아가 국가 주도로 도핑을 했다고 해서 올림픽 출전이 불허되는 상황에서 나한테도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구나, 받아들여야 하는 게 내 운명이구나 하고 빨리 마음을 잡았어요. 그래도 정확히 무엇 때문에 평창 올림픽 출전이 불허된 것인지 이유는 알려줘야죠.”

안현수 선수가 지난 8일 경기 하남시 자택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며 스케이트 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안현수 선수가 지난 8일 경기 하남시 자택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며 스케이트 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 국내 복귀 후 한체대 실내빙상장 플레잉코치로 활동했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사실인가요.

“아니에요. 한국체대 빙상장에는 대학부 선수들이 훈련할 수 있는 전문실기가 있어요. 러시아빙상연맹이 한국체대에 공문을 보내 승인이 떨어지면 저도 거기서 선수들과 같이 훈련할 수 있는데, 문제는 한달에 보름만 훈련이 가능해요. 그래서 포기하고 대신 한체대 실내빙상장을 대관해 훈련하는 고등부팀과 작년 10월부터 함께 운동했어요. 대관료만 내면 한달 내내 사용할 수 있거든요. 선수생활을 하고자 하는 마음이 컸기에 저는 훈련해야 했어요.”

- 지난해 12월 태릉 실내빙상장에서 열린 ‘2019 크라스노야르스크 동계 유니버시아드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안 선수가 선수들의 스케이트 날을 갈아주는 사진을 근거로 플레잉코치로 부임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던데요.

“빙상 종목에는 스케이트 날을 전문적으로 관리하는 장비 담당 코치가 따로 있고, 없으면 코치가 갈아줘요. 그만큼 스케이트 날 관리는 중요한 일인데 개인에 따라 신체 특징도, 벤딩(스케이트 날의 미세한 구부러짐 조정 과정)도 원하는 스타일이 달라 아주 예민한 작업이죠. 담당 코치에 의한 관리가 시스템화되어 있다보니 요즘 어린 선수들은 스스로 날을 갈지 못해요. 전국체전 서울시 예선에 가느라 코치가 빙상장을 비운 날, 남은 경기도권 아이들의 스케이트 날을 갈아준 일을 계기로 아이들이 좋아해 종종 갈아줬어요. 저로서는 왜 그게 문제라고 하는지 모르겠어요.”

- 고등부 선수들과 훈련하는 것은 재미있었습니까.

“서로에게 배우며 시너지 효과가 있었다고 생각해요.”

- 지금도 그 팀과 같이 훈련하나요.

“12월 선발전이 끝나고 그 팀이 목동으로 옮겼어요. 그래서 올 1월부터는 공문을 받아서 대학부 선수들과 탔는데 빙상계가 소란스럽다보니 몇 번 못 나갔어요.”

- 그러면 전명규 교수가 올 3월1일 안식년을 얻어 학교를 떠나 있는 동안 빙상계 기득권 유지를 위해 파급력이 큰 안 선수를 기용한 것이라는 일부 빙상인들의 주장은 근거 없는 얘기였군요.

“원래 교수님이 안식년에 학교를 1년간 비우는 사이 교수님의 역할을 대신해줄 강사로 다른 친구가 이미 내정돼 있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당연히 저는 그 자리에 갈 수도, 갈 생각도 없었죠. 교수님도 그에 대한 언급이 없으셨고요. 그런데도 그런 황당한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보며 놀랐어요.”

안현수 선수는 2006년 이탈리아 토리노 동계올림픽에서 3관왕에 오르고, 2003~2007년 세계선수권대회 5연패를 달성한 한국 쇼트트랙의 간판이었다(왼쪽). 하지만 부상과 소속팀(성남시청)이 해체되면서 2011년 러시아로 귀화했고, 2014년 러시아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3관왕을 달성하며 러시아의 영웅이 됐다(오른쪽). ㅣ 경향신문 자료사진

안현수 선수는 2006년 이탈리아 토리노 동계올림픽에서 3관왕에 오르고, 2003~2007년 세계선수권대회 5연패를 달성한 한국 쇼트트랙의 간판이었다(왼쪽). 하지만 부상과 소속팀(성남시청)이 해체되면서 2011년 러시아로 귀화했고, 2014년 러시아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3관왕을 달성하며 러시아의 영웅이 됐다(오른쪽). ㅣ 경향신문 자료사진

그가 러시아로 떠난 것은 2011년 6월1일이다. 그의 러시아행을 두고 파벌다툼의 여파라거나 전명규 교수의 전횡에 따른 희생양이라는 등의 소문이 돌았다. 안 선수가 2007년 12월11일 한체대 졸업을 앞두고 전 교수의 대학원 진학 요청을 뿌리치며 성남시청과 입단 계약을 체결한 후 전 교수의 견제가 시작됐다는 것이다.

- 2011년 러시아로 떠난 이유는 뭐였습니까.

“2003년 군면제를 받은 대신 2008년 시즌이 끝나면 4주 기초 군사훈련 받은 후 34개월간 빙상종목과 관련된 일을 하도록 돼 있었어요. 그게 2011년 초에 끝났는데, 소속팀인 성남시청도 없어지고 2008년에 입은 무릎부상 여파로 실력도 제대로 못 보여줘 힘든 시간을 보냈죠. 지원할 곳도, 저를 데려가고 싶어하는 팀도 없었어요. 당시 아버지가 이곳저곳을 알아보셨는데, 러시아가 가장 저를 믿고 원했어요. 제가 토리노 때 좋은 성적을 얻었더라도, 당시만 해도 부상당한 뒤 한물간 선수로 생각할 수 있음에도 아주 적극적이었어요.”

- 러시아 대표로 뛴다는 결정을 할 당시 한국 국적이 소멸되는 줄 몰랐다고 밝힌 것으로 알아요.

“이중국적을 갖고 뛰는 러시아 국가대표 선수들이 있어요. 크라프초프 회장님도 이중국적이 가능한 걸로 알고 제게 그렇게 말씀하셨고요. 저는 러시아의 제안을 받아들여 국적을 취득해 올림픽에 나가기로 합의했고, 당연히 이중국적이 가능한 줄 알았어요. 그러다 6~7월쯤 한국 국적이 자동소멸된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귀화신청은 8월17일에 했고요.”

- 한국 국적이 자동소멸된다는 걸 알았을 때 심경이 어땠나요.

“제가 부주의했지만 어쨌든 제가 선택한 것이고, 무엇보다 올림픽에서 뛰고 싶었기 때문에 러시아에서 잘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네 살인 딸, 한국서 교육받았으면
당장은 아니어도 국적 회복 고려

-한국 국적을 다시 회복하고 싶은 마음도 있나요.

“전혀 생각하지 못했는데 관련 기사를 보고서야 저의 국적회복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을 알았어요. 당장은 아니더라도 제가 한국에서 가족과 자리를 잡으려면 국적회복 문제도 생각해보는 게 맞는 것 같아요. 딸 제인(4)은 한국에서 교육받게 할 생각이에요. 제가 만약 베이징 올림픽까지 마친다면 제인이 딱 초등학교에 입학할 시기예요.”

안현수 선수와 부인 우나리씨가 딸 제인의 어린이집 가을 운동회에서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다.ㅣ우나리씨 제공

안현수 선수와 부인 우나리씨가 딸 제인의 어린이집 가을 운동회에서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다.ㅣ우나리씨 제공

- 전명규 교수와의 관계는 어떤가요. 한체대 대학원에 진학하라는 전 교수의 말을 거역하고 2008년 성남시청 빙상팀으로 가면서 사이가 틀어졌다는 이야기가 많이 돌았잖아요.

“저는 전 교수님과 사이가 나빴던 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2008년 한체대 대학원에도 입학해 한 한기 다녔고요. 성남시청 소속이 된 것은 같은 해 1월1일부터였는데, 보름 만에 부상을 당했어요. 전 교수님이 병원도 알아봐주시고 재활이나 훈련 여건이 한체대에서 하는 게 나으면 그렇게 하라고도 말씀하셨어요.”

- 그러면 전 교수와는 줄곧 연락을 주고받았던 건가요.

“성남시청 소속일 때는 제 입장이 애매해 그렇게 하지 못했어요. 원래 친형제처럼 가까웠던 성남시청 손세원 감독님과 전 감독님 사이에 오해가 있었기 때문이에요. 그러다가 2013년 3월 헝가리에서 세계선수권대회가 열렸을 때 교수님이 오셨고, 아내와 같이 인사 드렸어요. 이후 한국에 올 때마다 교수님을 찾아뵀어요. 제가 러시아에 간 게 교수님 탓이 아닌데, 2014년 소치 올림픽에서 제가 3관왕에 오른 후 한국에서 교수님에 대한 원성이 쏟아지는 것을 보고 죄송스러웠어요.”

화제를 쇼트트랙계의 폭력·성폭행 파문으로 돌렸다.

- 올림픽이 끝날 때마다 파벌싸움, 짬짜미, 폭행 등으로 쇼트트랙계가 바람 잘날이 없어요. 이 모든 과정을 먼저 겪은 안 선수의 마음도 몹시 착잡할 것 같아요..

“돌이켜보면 선수들이 축하받고 스포츠라이트를 받아야 할 시기에 오히려 죄인처럼 지내야 하는 게 제일 힘들었던 것 같아요. 쇼트트랙 강국으로서 부끄러운 일이에요. 시대가 바뀌면 지도자의 인식과 태도도 달라져야죠. 힘든 운동을 선수들이 즐겁게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게 코치나 어른들의 역할이에요. 지금 안 좋은 얘기가 계속 나오니까 쇼트트랙에 대한 거부감과 기피하는 분위기가 커지고 있어 안타까워요.”

- 조재범 전 쇼트트랙 국가대표 코치의 심석희 선수에 대한 성폭행 혐의를 접하며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후… 하고 그는 깊게 숨을 내쉬었다) 성폭력 문제는 너무나 중대한 사건이고 당사자들만이 알 수 있는 내용이라 제가 말할 수 있는 부분이 없어요. 하지만 결코 일어나서는 안될 일이라 저도 많이 놀랐어요.”

- 성폭력이 실제 일어난 일이라면요.

“제가 석희의 마음을 다 헤아릴 수는 없지만 운동을 하면서 석희의 위치면 굉장히 외롭고 힘들 거라는 걸 알아요. 1위 자리에 있던 선수이고, 항상 도전자들로부터 자리를 지켜내야 하는 위치니까요. 운동을 하다보면 참 외로워요. 진짜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사람이 없어요. 저는 아내가 있지만 석희는 그렇지도 않잖아요. 그런데 그런 일까지 있었다고 생각하면, 석희가 얼마나 힘든 시간들을 보냈을지, 안타까워요. 그래도 운동하며 극복하려는 모습을 보면서 대단하고 멋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석희는 정말 운동을 좋아하고 열심히 했어요.”

올림픽 출전 위해 러 대표 재도전
심석희 안타깝고 대단하다 생각
합숙훈련 폐지만이 해결책 아닐 것
후배 선수들이 자기 목소리 냈으면

- 한국 쇼트트랙이 이 문제를 수습하고 앞으로 나아가려면 어떤 방책이 필요하다고 보나요.

“한국이 그동안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던 강점은 국가대표선발전에서 뽑힌 선수들이 합숙생활을 하면서 온전히 훈련에 집중하고 서로 독려와 경쟁을 하도록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지금 합숙생활을 없앤다는 얘기도 많은데, 저는 그게 해결책이 아니라고 봐요. 개인 팀에서 훈련하다가 시합을 앞두고 모이면 과연 예전과 같은 효과가 있을까요? 그게 선수들이나 학부모들이 원하는 것인지도 생각해봐야 해요.”

- 누구보다 힘들어할 후배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까.

“선수들이 나설 수 없는 구조이고 약자이고 이런 말들이 많지만 이제는 선수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주면 좋겠어요. 대신 자기 본분에 맞게, 어디에도 휘둘리지 말고, 꿋꿋이 자신이 목표한 바를 열심히 해주면 좋겠다는 바람이에요.”

어느덧 인터뷰한지 5시간가량이 지나 있었다. 그의 가족이 월세로 살고 있는 하남시 아파트의 거실 한쪽 진열장에는 그의 인생이라고 할 올림픽 등 국제대회 수상 메달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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