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품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키즈스파에 가는 아이들을 단순히 어른들을 모방하려는 욕구로 볼 수 있을까요?
8세, 6세, 5세 세 딸을 키우는 이지희씨(36·가명)는 현재 육아휴직 중이라 화장을 거의 하지 않고 평소에도 화장을 많이 하는 편이 아니라고 합니다. “어디서 배워오는 건지 저도 의문이었는데 미디어나 또래집단에서 배워오더라고요. 부모가 안 한다고 해도 아이들이 고립된 생활을 하는게 아니니까요. TV에서 아이들이 예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화장품을 바르고 있고 어린이 프로그램 중간중간 광고에도 장난감을 광고하고 또 요즘 유튜버들 중 장난감 소개하는 성인 여성들이 화장 장난감을 바르는 모습을 보잖아요. 그 영상을 본 아이들이 어린이집에서 만나 또래집단을 통해 강화되는 것 같아요.” 아이들이 어린이집·유치원을 다니며 또래집단의 문화를 일찍 접하고 다른 한편 유튜브와 같은 미디어를 통해 다양한 영상을 접하면서 화장 문화에 일찍 노출되고 있습니다.
이씨는 화장 장난감이 두 가지 측면에서 불편하다고 얘기합니다.
“거부감을 느끼는 것은 크게 두 포인트예요. 첫번째로 (화장품은) 화학 성분이고 아직은 맨얼굴이 예쁠 나이인데 그런걸 바르는 게 건강하지 않는 느낌에서 싫고요. 두번째는 화장은 전형적인 여성성, 사회에서 여성적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이잖아요. 그런 것을 어릴 때부터 하는게 싫더라고요. 여자아이들도 축구도 하고 활달하게 컸으면 좋겠는데 벌써부터 다소곳한 여성, 화장을 한 여성으로 체화하는 게 불편해요.”
누구나 어릴 때는 어른을 모방하고 싶어하는 것 아닐까 의문도 듭니다. “우리도 어릴 때 엄마 화장품 바르다가 들켜서 혼난 적도 있죠. 그런데 이제는 그런 수준이 아니라 아예 아이를 타깃으로 한 화장 장난감이 많이 나오니까 실제 사서 애들이 해보는데 거리낌 없잖아요. 그게 연령층을 내리는 것 같고요. 초등학교 학생들이 하교하는 모습 보면 화장하고 나오는 고학년 언니들이 많아요. 저학년 애들도 보고 많이 따라할 것 같고요. 여자아이들이 화장을 하는 행위를 너무 일찍 배운다는 게 내키지가 않아요.”
물론 화장이 다 문제라는 생각인 것은 아닙니다. “주체적으로 꾸미는 것에 대해 자신감이 있고 ‘나는 나중에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되겠다’는 생각으로 하면 다르죠. 그런데 대부분의 애들은 ‘주변 애들이 하는데 여자는 저래야 예쁘다더라’ 그런 분위기에 휩쓸려서 하는 거잖아요. 결국에는 여성적이라고 사회가 강요하는 것에 애들이 너무 일찍 물드는 것이고요.”
■“‘핑크가 좋아’는 누구의 목소리인가” 미디어의 힘
6세, 3세 여자아이를 키우는 강미정씨(37·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는 아이들이 보는 뮤직비디오 ‘뽀로로 핑크송_루피앤프리센스’를 보고 기겁했습니다. 강씨 말을 들어봤습니다.
“오프닝 장면이 여자아이가 장난감 화장대에 앉아 아이섀도우를 하고 립스틱을 바르는 장면이에요. 이제 기저귀를 뗀 지 2년 정도 된 아이가 엄마 립스틱으로 엉터리 화장을 하는 게 아니라 풀 메이크업을 하고 있어요. 이게 말이 되나요? 기저귀 뗀 지 2년 만에 어른 세계에 진입한 거잖아요. ‘화장하고 싶어, 예뻐보이고 싶어’는 아이가 말했을지 몰라도 ‘외모가 곧 정체성’이라는 기호를 확대 재생산하고 아이의 미숙함을 이용하고 욕구를 조종한 것은 어른이고 기업의 욕망이예요. 기업이 어른을 대상으로 한 뷰티 산업이 포화되니 미개척지의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겠다는 전략을 펴는 거잖아요. 유아기를 막 벗어난 아이일지언정 자본의 입장에서는 새로운 소비자일 뿐이라는 뜻이죠. ‘핑크가 좋아’는 아이의 외침이 아니라 기업의 목소리 아닐까요?”
여자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들의 경우 ‘시크릿쥬쥬’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강씨는 “장난감에 대한 전반적 문제의식은 시크릿쥬쥬로부터 시작됐다”고 말합니다. 그의 말을 더 들어보겠습니다.
“큰 애가 다섯살 때 시크릿쥬쥬를 많이 봤는데 어느 날 만화 속 물건들이 장난감 매장에 모두 실물로 진열되어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한두 개가 아니었죠. 셀카폰부터 네일가방, 각종 악기까지. 만화를 다시 보니 인물과 사건보다 인물들이 사용하는 물건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될 때도 있는 거예요. 마법에 걸려 작아진 쥬쥬가 작은 몸 사이즈에 맞춰진 집을 필요로 하자 인형의 집이 나오고 한 회 내내 인형의 집이 수시로 비춰지는 식이예요. 그리고 역시나 매장에는 만화를 똑같이 구현한 인형의 집과 미니 사이즈의 페어리 쥬쥬들이 놓여 있고요. 만화 기획 순서가 전도된 것 같았습니다.”
실제 시크릿쥬쥬는 완구회사 영실업이 제작한 만화입니다. 요즘 만화들은 완구 회사와 만화 제작사의 합작품인 경우가 많습니다. 장난감 회사에서 장난감을 기획하고 만화 스토리 속에 출시됐거나 출시될 상품을 집어넣기 위해 주인공의 손에 들려주거나 대사 속에서 장난감을 거론합니다.
강씨는 “시크릿쥬쥬는 만화 형식을 차용한 장난감 회사의 장편 광고라고 느껴서 불편했다”고 말했습니다. “완구 회사의 목적은 장난감을 많이 팔아 이윤을 남기는 거잖아요. 그 목적이 고스란히 노골적으로 만화에 반영됩니다. 이제 막 유아기를 벗어난 아이들의 주변은 온통 집요한 마케팅으로 포위되어 있었고 아이들은 소비자일 때만 환영받는다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이것은 광고인가, 만화인가
지난해 9월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대교 어린이TV’의 ‘재미사냥 게임쇼 헌터스’ 프로그램에 대해 법정제재인 ‘방송 프로그램 중지’와 ‘프로그램 관계자에 대한 징계’를 의결했습니다. 프로그램은 지난 7월 로봇 장난감을 이용해 게임을 하는 내용을 세 차례 방송하면서 협찬주의 상품명과 로고를 수차례 노출했고 자막과 음성으로 상품명까지 언급한 것으로 나타났는데요. 방통심의위는 당시 “사실상 장난감 광고를 방불케 하는 내용이 판단력이 약한 어린이들에게 구매 심리를 자극하고 있어 법정 제재가 불가피하다”고 밝혔습니다.
아이들이 자주 접하는 어린이 채널부터 교육방송(EBS), 유튜브까지 유아들에게 노출되는 미디어에는 장난감 광고가 넘쳐납니다. 만화인지 광고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만화부터 노골적으로 상품을 사용하라고 손짓하는 광고까지. 아이들이 이러한 광고를 비판적으로 인식해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현재 지상파 방송 광고는 기업에서 광고 대행사를 통해 광고를 만들면 한국방송협회에서 사전 심의를 받습니다. 기업들은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코바코)를 통해 광고를 방영할 수 있는 좋은 시간대를 삽니다. 예를 들어 아이들 프로그램이 연이어 방송하는 일요일 오전 9시 프로그램 전후에 광고를 하고 싶다면 기업은 그 시간대의 가격을 지불하고 광고를 내보내는 거죠. 정부의 모니터링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방송통신위원회에서는 사전적으로 형식 규제를 합니다. 한 시간에 5분으로 정해져 있는데 6~7분 내보내는 광고가 있다면 ‘위반 사항’에 대해 모니터링하는 방식입니다. 위반 사항이 있으면 방통위 전체회의에 올려서 제재 수위를 심의하게 됩니다.
어린이 프로그램 전후 광고에는 ‘광고 방송’이라는 자막도 표시해야 합니다. 방송법 시행령은 어린이를 주 시청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의 전후의 광고에서는 ‘광고 방송’이라는 자막을 표기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화면 크기의 64분의 1 크기로 ‘광고 방송’이라는 글씨를 내보내야 하고 어린이 대상의 가상 광고, 간접 광고는 금지돼 있습니다. 한 마디로 어른들 드라마에 나오는 간접광고(PPL)는 어린이 프로그램에서는 불가능하다는 얘기죠. 그럼 시크릿쥬쥬 같은 만화를 어떻게 봐야 할까요?
현실적으로 형식 규제로만은 어린이들에게 유해한 것을 다 걸러낼 수 없으므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는 광고 내용에 대해 상시적으로 모니터링을 합니다. 기준은 방송광고심의규정 제23조입니다.
“예뻐질거야”, “힘이 세질거야”와 같은 단순한 표현도 방송광고심의규정을 보면 가능하지 않다 볼 수 있습니다. 제23조 2항 ‘상품의 소유로 어린이의 능력이나 행동이 변할 것이라는 표현’에 해당할 수 있을텐데요. 유아들에게 제공하는 광고의 경우 어떤 표현까지 가능하다고 볼 수 있을까요? 화장 장난감 광고는 ‘어린이의 품성과 정서, 가치관을 해치는 표현(방송심의규정 제23조 1항)’을 하지 않는다고 볼 수 있을까요?
그나마 방송 광고는 이런 방법으로 모니터링이 되고 있습니다. 유튜브는 사각지대입니다. 방통위와 방통심의위에서 통신 영역으로 보고 들여다보고는 있지만 사실 모든 콘텐츠를 들여다보기는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방통위 관계자는 “인터넷 매체는 적용 규정이 미비한 상태”라고 말했습니다.
매체는 다양하게 늘어나고 기업들이 마케팅을 하려는 압력은 커지는데 아이들을 위한 규제는 부족합니다. 또 규제로 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도 없을 겁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아이들의 화장 문화에 대해 지나치게 심각하게 생각하는 걸까요? ‘4회. 유아들까지 시장으로 보는 자 누구입니까’로 이어집니다.